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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부터 10월 16일까지 한국 청주 문화제조창(Culture Factory) 본관 3층 갤러리3에서 독일 오펜바흐 클링스포르 박물관의 소장품을 전시한다(직지문화제 포스터에는 '클링스포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외국어 표기 규정에 따라 이 글에서는 '클링스포르'로 쓰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 기자말). 직지문화제와 함께 시작한다.

독일 오펜바흐시가 지닌 서체 예술과 북아트의 역사, 문자조형예술 타이포그래피의 변천사를 살펴볼 기회다.  

클링스포르 활자주조소
 
직지문화제에서 독일 오펜바흐 클링스포르 박물관의 소장품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
 직지문화제에서 독일 오펜바흐 클링스포르 박물관의 소장품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
ⓒ 직지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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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스포르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1953년이지만, 그 시작은 1900년을 전후해서 오펜바흐에서 성장한 클링스포르 활자주조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2년에 카를 클링스포르(Carl Klingspor)가 루하르드셰 활자주조소를 인수하고 1902년에 클링스포르 형제 활자주조소로 이름을 변경했다.

클링스포르 박물관은 바로 이 활자주조소가 남긴 소장품 유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시의 한 축은 클링스포르 활자주조소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유겐트스틸 예술가 오토 에크만, 페터 베렌스, 발터 티만, 문자조형예술가 루돌프 코흐가 루하르드셰 활자주조소 혹은 클링스포르 활자주조소와 협업하며 서체디자인을 만들었다. 
 
에크만 서체
 에크만 서체
ⓒ Roger Koslowski CC B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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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부 들어서 새로운 주조기계가 늘고 신문과 잡지도 발달하던 시대에 인기 문예지 <팬>에 그래픽을 그리던 화가 에크만은 자신이 만든 에크만 서체를 통해 클링스포르 활자주조소에 경제적 성과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클링스포르 주조소
 클링스포르 주조소
ⓒ Foto: Klingspo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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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판작업
 조판작업
ⓒ Foto: Klingspo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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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북아트와 오펜바흐

전시의 다른 한 축은 오펜바흐에 관한 이야기다. 마인강변의 이 도시가 20세기 전반기 북아트와 서체 예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루돌프 코흐(1876-1934)와 루돌프 게르스팅, 두 사람의 루돌프가 공동으로 발간한 표현주의 정서가 풍겨나는 목판화, 그래픽이 있는 횔덜린의 '히페리온' 등 '루돌프 인쇄물'이 전시된다. 
 
작품을 무료로 쓰게 해 달라는 청을 받을 때면 루돌프 코흐(Rudolf Koch)가 즐겨 보냈다는 우편엽서
 작품을 무료로 쓰게 해 달라는 청을 받을 때면 루돌프 코흐(Rudolf Koch)가 즐겨 보냈다는 우편엽서
ⓒ gemeinf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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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코흐가 교수로 있던 오펜바흐 '예술 산업 학교'는 오늘날 명성있는 오펜바흐 조형미술대학 (HfG)으로 변모해 있다. 코흐가 교수로 있던 학교에 다닌 프리드리히 하인리히젠(1900-1980)은 1924년에서 1929년까지 코흐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그 후 하노버로 교수 초빙을 받는다. 하인리히젠이 만든 동화책 '장난감 병정'을 보면, 널찍한 외곽 여백에 텍스트와 삽화의 촘촘한 배열이 인상적이다. 호안 미로, 앙리 마티스 같은 거장들이 남긴 진귀한 아트북도 전시된다. 
 
프리드리히 하인리히젠(Friedrich Heinrichsen)의 아트북 '장난감병정'
 프리드리히 하인리히젠(Friedrich Heinrichsen)의 아트북 "장난감병정"
ⓒ Foto: Klingspo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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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인쇄술의 만남

클링스포르 박물관의 도로테에 아데르(Dorothee Ader) 관장은 기자와 주고 받은 메일 대화에서 박물관 소장품을 한국에서 전시할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생긴 것이 무척 기쁘다고 하며 클링스포르 박물관 소장품 전시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한다.    

"직지 축제를 여는 청주는 책과 인쇄의 역사에서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중 하나다. 세계 최초 활자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은 인류 문화 기술의 큰 궤적을 남겼다. 유럽에서는 몇 십 년 후에야 요한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그와 비슷한 기술이 자리를 잡으며 정신의 진정한 혁명을 이루었다. 우리 모두 수혜자들이다. 클링스포르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20세기와 21세기 예술가들과 조형미술가들이 인쇄술의 성과를 이용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전해준다."

오펜바흐 시장 펠릭스 슈벤케 박사(Dr. Felix Schwenke)는 전시 도록의 서문을 통해‚ 오펜바흐의 클링스포르 활자주조소에서 일어난 일은 '문자의 의미를 새롭게 한 개혁'이라고 한다. 당대의 시각예술가들이 만든 활자 서체는 문자를 '눈에 보이는 시처럼 드러나게' 하고 '단순한 의미 전달의 기호가 아닌 함축적인 형상'이 되어 "그 시대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1900년 전후를 풍미한 유겐트스틸이나 1920년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추구한 상업과 미학의 결합, 문자의 기능과 미학의 결합, 화려함과 불안의 혼재, 분출과 화석화의 오버랩 등에 대해 역사적 평가는 완결된 듯하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불안한 시대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어떤 서체, 어떤 아트북을 만들까? 로베르트 슈바르츠가 횔덜린의 미완성 비극 '엠페도클레스'로 아트북을 만든 것은 그런 질문에 대한 작은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로베르트 슈바르츠(Robert Schwarz)의 아트북 엠페도클래스(Empedokles)
 로베르트 슈바르츠(Robert Schwarz)의 아트북 엠페도클래스(Empedokles)
ⓒ Foto: Klingspo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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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불꽃

클링스포르 박물관은 올해 3월 12일부터 5월 29일까지 오펜바흐에 소재한 조형미술대학 학생들이 기획한 전시 "beyond the archive - 활자주조에서 클링스포르 서체 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를 열었다. 아카이브에서 쉬고 있는 그 서체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100년 된 이 유산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다.
beyond the archive
 beyond the archive
ⓒ Foto: Klingspo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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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청주 문화제조창에서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오펜바흐 클링스포르 박물관과 갖는 국제교류전은 관람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올해 직지문화제의 표제는 '직지-문명의 불꽃'이다.

먼 독일 오펜바흐 클링스포르 박물관에서 온 전시물 또한 하나의 소중한 불꽃이다. 청주의 직지심체요절이 고향으로 돌아올 날은 기약없지만 오펜바흐의 소장품은 고향을 떠나보는 것이 이번이 두 번째라 한다. 한번은 미국, 이번 한국 나들이는 두번째라 한다. 가을날의 대화가 무르익길 기대해 본다.  
beyond the archive
 beyond the archive
ⓒ Foto: Klingspo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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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클링스포르, #클링스포어, #직지문화제, #국제교류, #오펜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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