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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진돗개 누렁이
 진돗개 누렁이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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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기분과 의사를 존중해주니 훈련은 절로 됐다. 타고난 천성이 모든 권위에 질색하는 보호자라 나는 개에게도 절대복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나오는 수의사 설채현의 말대로 나는 서열 관계에 민감하게 굴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리 생활을 하는 개의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개에게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만 상기시켰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개를 이길 수 있으므로 가급적 개를 야단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내가 먼저 개를 배려하니 개 역시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했다(물론 전지적 인간 시점이다).

인간도 그렇지만 개 역시 상황의 동물이다. 평생 일 미터 목줄에 묶여 마당개나 밭지킴이로 살며 잔반 처리하는 개들은 종을 떠나 거의 대부분 사납다. 반대로 개를 자유롭게 해주고 개가 싫어하는 짓을 보호자가 안 하면 서로의 관계는 자연스레 정리된다.

산책 길에 들은 "재수없다"는 말
 
누렁이라 옷을 입혔다
 누렁이라 옷을 입혔다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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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여러 사람이 권했지만, 개 키우는 걸 오랜 시간 망설였던 건 나 혼자만의 공간을 다른 생명에게 내어주기 싫어서였다. 또 이제는 개가 주는 기쁨보다 개가 주는 삶의 피로와 슬픔을 아는 나이라 망설인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걱정은 실제로 개를 키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실외 배변을 선호하는 개랑 살다 보니 눈 뜨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미래의 일을 앞당겨 걱정하거나 과거의 실수를 되짚어 보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또 개랑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안 쓰던 몸을 쓰니 어찌나 매일매일 피곤하던지 약을 따로 먹지 않아도 눈만 감으면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골며 잤다. 개와 함께 사니까 전보다 확실히 웃을 일도 많아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선생님 말이 맞았다. 내겐 개가 필요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복주랑 함께 산책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런데 개하고 나를 번갈아 보더니 다짜고짜 "아침부터 재수 없게"라고 하는 거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살피니 역시나 아무도 없다. 저 혐오는 나와 복주를 향한 게 분명하다. 아니 왜?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복주가 그를 보고 짖기라도 했으면 내가 말을 안 한다. 우리는 그날 단지 그와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뿐이다.

복주가 자라면 자랄수록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복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동네 이웃은 내게 이런 조언도 했다. '뭐하러 이런 개 기르느라 고생이냐. 얼른 내다 버리고 요 밑에 가게 내려가서 작고 이쁜 놈 하나 사다 길러라. 얼마 안 한다.'

글쎄, 실제로 내가 실제로 유기견을 키우게 된 건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돈은 말하자면 핑계였다. 펫숍의 개들을 보는 내 마음이 언제부턴가 불편했기 때문에 유기견을 키우게 된 거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가인 알랭 드 보통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올바른 소비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그래서 난 개를 돈 주고 사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나는 동물원 수족관 동물체험 같은 세상의 모든 동물 산업에 반대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울에서 중·대형견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희한하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품종을 알 수 없는 누렁이가 산책하는 거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복주는 진도믹스견이다). 이런 인식 기저에는 지나치게 정상성에 집착하는 국민 정서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민족은 남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유독 불편하게 여긴다. 온 국민이 사시사철 동시에 같은 패션으로 바꿔 입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부에서 계절별 착장 가이드 북이라도 배포한 것처럼 다들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 가을엔 다 같이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겨울엔 모두 함께 검은색 롱 패딩을 입는다.

그러니 이런 문화가 반려 시장에도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다. 이른바 집에서 기르는 개는 마땅히 작고 하얗고 귀여워야 한다는 국민 정서 같은 것 말이다. 

반려견에게도 보편을 요구하는 사회
 
5개월 무렵의 복주
 5개월 무렵의 복주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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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를 키우며 그제야 '정상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하는 일부 시민의 민낯을 매일 복주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숨쉬는 자존감이라 불리던 나조차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동네 산책보다는 복주를 차에 태우고 멀리 다니게 됐다.

그러다 보니 틈나는 대로 서울 외곽으로 돌았다. 마음 불편한 것보다 몸 힘든 게 낫길래 지난 일 년간 열심히 개를 반기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애견 카페, 반려견 운동장, 인적 드문 야산 같은 곳들 말이다.

누렁이를 키우며 다양성에 대해서까지 생각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전에는 이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이들의 권리 주장에 대해 딱히 반대하지 않지만 지지도 안 하는 상태였다고 할까? 아니 어쩌면 이들 마음을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안 한 것 같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을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태도와 행동이 아니라 나 자체, 존재 자체에 대해 왜 이웃에게 증명해야 할까? 그러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찮고 억울할까. 그러니 어쩌면 내게 복주라는 누렁이는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고마운 길라잡이가 아닐까 싶다.

그날 복주랑 나한테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했던 아저씨 생각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안 된 양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만큼 살아보니까(나는 4학년 7반이다) 내 마음이 천국이면 누가 찾아와 욕을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내 마음이 지옥이면 어깨 위로 낙엽이 떨어져도 울고 싶더라. 사는 게 여유 있으면 누렁이가 아니라 누렁이 할아비를 봐도 화가 안 나겠지,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보다 서로에게 조금씩이라도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생판 모르는 타인이 오가며 혐오를 보태주지 않아도 벅찬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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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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