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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물
▲ 호찌민 전쟁 박물관 전시물
ⓒ 김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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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은 두 차례 전쟁을 치렀습니다. 하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며, 다른 하나는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죠. 한국전쟁이야 말할 것도 없이 큰 상처를 남긴 전쟁으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지만 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해선 아는 이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8년 동안의 참전, 확인된 국군 사망자만 5000여 명에 이르는 이 전쟁은 한국에선 다른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베트남전이 그것이죠.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한국에겐 상처뿐인 역사입니다. 전쟁을 촉발시킨 통킹만 사건(미해군 구축함에 대한 북베트남 어뢰정의 공격 사건)부터가 미국에 의해 조작된 자작극이란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당시에도 국제적으로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던 제국주의적 침탈전쟁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요청해 참전했다는 사실은 비판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심지어 국군 전쟁포로들에 대해 방관으로 일관해 적지 않은 수가 북송되도록 방치한 점, 1만 명에 이르는 부상자와 고엽제 피해자 등 참전용사들에 대해 국가적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일부 참전부대가 베트남 현지에서 민간인 학살 등 전범행위를 자행했다는 점 등은 결코 외면해선 안 되는 수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반면 참전으로 혹여 있을지 모를 주한미군 철수를 방지했다는 점, 이후 미군과의 군사동맹과 경제적 협력이 진전됐다는 점 등에선 분단국가이자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의 고충이 읽히기도 하지요. 미국이 여전히 한반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란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여파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역사적으로 깊이 연구하고 재평가해 시민들에게 널리 교육할 필요가 여기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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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찌민 전쟁 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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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시티 대표 관광지, 전쟁 박물관

'호찌민 전쟁 박물관'은 베트남 제1의 도시로 불리는 호찌민시티의 대표 관광지입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를, 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국을 연달아 격파하고 독립국을 세운 베트남의 저력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베트남은 스스로 그 역사에 자긍심을 갖고 있고, 이후 세워진 정부 역시 그 두 전쟁을 사실상 저들의 독립전쟁쯤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느 도시에서나 이 전쟁과 관련한 장소를 찾는 건 쉬운 일이지요.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이 바로 여기 호찌민 전쟁 박물관입니다. 호찌민시티 도심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적어도 2시간쯤은 들여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공간과 풍부한 전시물을 자랑합니다.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말 그대로 제국주의 침탈전입니다.

제국은 동남아시아 패권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침탈된 국가는 생존을 위해 그에 맞섰습니다. 북베트남의 리더 호찌민이 2차 대전 연합국 지도자들을 찾아 독립을 호소했고,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사실은 유명합니다. 그럼에도 프랑스와 맞서려는 베트남에게 손을 내밀고 무기를 댄 건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들이었죠. 베트남은 그렇게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침탈전이 거세질수록 베트남의 이념무장 역시 강해졌습니다. 베트남은 승전 뒤 공고한 공산국가가 됐고 쇄신이라 불리는 도이모이를 거쳐 오늘날까지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호찌민 전쟁 박물관은 자유주의 국가라 해서 도덕이지 않을 수 있음을, 공산주의 국가라 해서 비도덕적이거나 무능하기만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이념전쟁이 민중을 어떻게 핍박했는지, 당대 위정자들은 어떻게 이 야만적 전쟁을 이어갔는지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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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찌민 전쟁 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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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남긴 상흔, 아직도 진행형

전시는 전쟁으로 죽거나 장애를 입거나 가족을 잃은 이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글로 옮기기도 끔찍할 만한 사건도 여럿입니다. 미군이 사용한 네이팜탄이나 고엽제의 비인간성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네이팜탄이 터진 뒤 발가벗은 채 거리를 뛰던 아이들을 찍은 닉 우트의 사진은 당대에 얼마나 큰 충격을 던졌던가요. 그 벌거벗은 소녀 판티 낌푹은 환갑을 앞둔 올해에야 화상 치료를 마무리했다고 했습니다.

이 박물관에선 한국 역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날 수 있습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최대치 기준 5만 병력과 32만 명의 군수인력을 파견한 한국이 5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1만이 넘는 부상자 손실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습니다.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1968년 기준으로 미군의 약 10% 정도의 전력이라고 합니다.

참전한 고엽제 피해자가 운영하는 공인중개소 사진도 전시실 벽면에 붙어있습니다. 호찌민 전쟁 박물관엔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람객이 방문합니다. 우리 돈으로 2000원이 조금 넘는 4만동에 전시실 전체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전시실 안엔 사진과 각종 시각자료가 주를 이루고, 전시실 밖에선 전쟁 당시 쓰인 주요 무기며 장비들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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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찌민 전쟁 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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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가까운 나라, 우리는 얼마나 알까

베트남은 오늘에 이르러 한국의 대표적인 우방국입니다.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직접 하노이에 방문해 서민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략적 우호관계를 공고히 했고, 한국 역시 베트남을 경제적, 전략적 동반자로 삼아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베트남 내 최대 투자국의 위상을 갖게 됐고, 삼성과 CJ, 롯데 등의 기업도 진출한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베트남인들은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부터 한류스타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호감이 큽니다.

하지만 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해서만큼은 한국의 노력이 부족한 듯도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적이 있으나 그 이후 그 같은 표현이나 실제적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표현을 한 게 가장 사과에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보다 솔직한 사과의 뜻을 전하려는 의사도 있었으나 외교참모들의 반대로 위와 같은 표현에 그쳤다는 뉴스도 줄을 이었지요. 일본과의 관계에서 사과와 진상규명, 보상에 민감한 한국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이러한 관계를 생각하며 호찌민 전쟁 박물관을 둘러본다면 여러모로 깊은 생각들에 도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의 행복이 누군가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의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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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찌민 전쟁 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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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호찌민 전쟁 박물관, #베트남, #호찌민시티, #베트남전, #2차 인도차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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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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