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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60대 어머니와 40대 딸 둘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세 모녀는 암과 희소병을 앓고 있었고 현관문엔 가스 검침원이 남겨둔 안내 메시지가 붙어있었다. 또한 외부 침입 흔적은 없다.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8년 사건에서 기시감이 든다.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도 세 모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는 빈곤층에 대한 대책을 주문했다. 그런데 같은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 선택 막을 근본적 방법은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자 지난 26일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정 사무국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발굴 못한 게 원인? 정부 책임 떠넘기기 좋은 말"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 정성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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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줬는데, 이 사건을 어떻게 보셨어요?

"정말 안타깝게 봤어요. 잘못된 진단만 계속되고 있어서 이런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때문에 굉장히 분노스럽고 저희가 성명을 발표할 때도 정말 많이 고민이 됐어요. 이게 벌써 8년이나 지난 송파 세 모녀와 더불어 그전에 있었던 가난 혹은 질병 장애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거든요."

- 그럼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닌가요?

"그렇죠. 가장 최근이라고 하면,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2020년에 방배동에서 발달장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씨가 당시에는 장애 등록 하지 않고 이수역에서 노숙하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알렸던 사건이 있었죠. 그때도 생활고로 인한 죽음이었거든요. 알려진 죽음들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죽음도 굉장히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왜 이게 반복되는 거죠?

"당연히 대안이나 대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보시면 제대로 발굴하지 못한 이유를 주소지가 실제 거주지와 달라서 찾지 못해서라고 얘기하거든요. 2014년에 송파 세 모녀가 돌아가시고 기초생활 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그리고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세 가지가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됐어요.

그중에 중요한 건 기초생활 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인데 당시에 송파 세 모녀가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에 집중하면서 발굴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에요. 그리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있는 제도도 이용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인 것처럼 얘기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동사무소를 찾아 신청하려고 했지만, 신청서조차 들어가지 않고 구두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추후에 방송에서 밝혀졌어요. 사실 발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복지 제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있거든요. 

지금 발굴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이런저런 체납 정보들을 모아서 어떤 것들을 몇 개월 체납했을 때 위기 가구로 선정되고 지자체에서 찾아가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요. 그럼 송파 세 모녀는 지금의 시스템이 있었다면 위기 가구로 발굴됐을까요? 송파 세 모녀는 당시에 건보료나 공과금 체납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게 절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거고, 발굴하지 못해서라고 이야기하는 건 정부에서 책임 떠넘기기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 그럼 근본적인 건 뭐라고 보세요?

"근본적인 대책은 제도들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선정 기준을 낮추고 보장 수준을 높여야죠. 지금의 복지 제도는 엄격한 자격 조건과 과도한 조사로 수급 신청 하는 과정에서 잦은 의심 받으며 가난함을 반복해 증명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게 작동하다 보니 복지 제도를 이용하는 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가난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 되죠. 그런 제도가 복지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차별과 낙인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용하려는 복지 제도가 나에게 차별과 낙인을 안겨주리라는 느낌이 든다면 신청을 주저할 수밖에 없죠. 한편으로는 제도가 너무 과도한 선정 기준을 갖고 있다 보니까 내 지금 상황에서 이 제도를 신청했을 때 어떤 급여를 받을 수 있을지, 또 얼마나 받을지 판단이 전혀 불가능하게 돼 있어요. 어느 정도는 판단이 서야 신청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의 엄격한 자격 조건은 정보 접근권과 신청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게 한두 개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기초생활 보장제도 안에서만 해도 소득 환산, 근로 능력 평가, 부양 의무자 기준 등 디테일한 나쁜 선정 기준들이 있는데 이것뿐만 아니라 긴급 복지 지원 제도로 넘어갔을 때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어요. 그래서 실제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접근 가능하게 하면서도 전반적인 사회보장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주소지는 화성인데 실제 거주는 수원이라서 파악을 못 했다는 이야기는 납득이 되시나요?

"주소지가 달라서 찾을 수 없었다는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주소지를 왜 달리할 수밖에 없었냐는 거죠. 물론 저희가 수원 세 모녀의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죠. 감히 생각해 보면 예를 들어 체납 관련된 빚 독촉 때문에 그러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해당 주소지의 주소를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약탈적 금융을 이용하고 체납 독촉을 계속 받는 상황이 될 때까지 공공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당사자가 필요로 하는 복지나 사회안전망이 부재하고, 있는 제도의 선정 기준이 너무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 문턱 낮춰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지난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지난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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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가구 발굴을 어떻게 하는지도 중요할 거 같은데 현재 발굴 시스템은 어떤가요?

"사실 저희는 사회복지 기관이나 전달 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알지 못해요. 다만 지금은 위기가구 발굴을 정보 수집 위주로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게 계속해서 더 많은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거든요. 심지어 체납 정보는 신용 정보까지 다 포함되는 것인데 이런 정보를 무작위로 수집해서 모아놓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질문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우리나라는 신청할 때 당사자가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잖아요. 때문에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거 같은데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제도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거나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게 만들어야겠죠. 그건 사회적 통념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과 같이 엄격한 자격 조건 하에서의 계속 가난을 증명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의심 받게 만드는 제도 전반의 선정 기준과 절차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도 설계를 바꾼다고 해도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운영돼 왔기 때문에 사회 통념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것부터 시작해야 '이 복지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나의 권리다. 그리고 내가 소득이나 소득이 삭감되거나 중단됐을 때 당연히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뭔가요?

"복지 제도와 관련된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에 대한 개선이죠. 이번에 정부에서도 경찰을 동원해서 찾아내겠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그것보다 일단 신청했을 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를 만드는 것 그리고 동사무소 찾았을 때 복지 제도 이용하는 것이 의심받는 경험이 아니라 환영받는 경험으로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을 개선해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극단적 상황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해요. 약탈적금융을 왜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죽음이 발생했을 때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소득이 감소하거나 중단됐던 이유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복지제도로 이야기되지만, 그 이면에 더 깊이 들어갔을 때 다른 사회 구조 속에 있는 정책들을 얘기하고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소리'에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정성철, #빈곤, #수원 세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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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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