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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 경계에는 우리가 한국지리 교과서에서 흔히들은 해발 696m의 죽령이 있다. 보통 조선시대 과거길 하면 문경새재를 떠올리는데, 죽령도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강유역과 경북 북부 지역을 오가던 통로여서 중요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는 중앙선이 놓이고, 2001년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이 개통되면서 죽령 옛길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영주시에서 옛길을 복원하고 2007년 명승 제30호로 지정되면서 옛 희방사역부터 5번 국도에 있는 죽령휴게소까지 가는 산행로로 거듭났다. 물론 문경새재처럼 화려한 성곽은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신라 군사들과 조선 선비들이 걸었던 폭 좁은 옛길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희방사역부터 죽령 정상까지도 편도로 1시간이라 봄과 가을에 생태탐방으로 오르고 내리기도 딱 좋다.

신라시대부터 오랜 세월 동안 영남 낙동강길과 남한강길을 이어준 죽령 옛길로 가보자.  

희방사역부터 옛길 올라가기까지

죽령 옛 길의 시작점인 희방사역도 역시 풍기 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에서 내려 우회전한 후 바로 다음에 좌회전하면 5번 국도길로 들어갈 수 있는데 오른쪽 단양 방면으로 가자. 쭉 가다 보면 편도 1차로로 줄어드는데, 희방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돌리면 희방사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희방사역. 옛 중앙선 철도에 있으며, 경상도 최북방에 위치해 있다. 1942년부터 2020년까지 78년 동안 기차가 운행하다가 중앙선이 신선으로 이설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 옛 승강장에서 벽돌 역사 사이에 놓인 철로 위에 놓인 자전거 두 대가 이젠 옛 중앙선의 추억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철도를 단양방향으로 보면 거대한 다리가 놓여 있는데 중앙고속도로 죽령교다. 죽령교 바로 다음이 개통 후부터 2012년까지 11년 동안 최장 도로터널이었던 죽령터널이다. 물론 희방사역 다음에 놓인 철도터널의 이름도 옛 죽령터널인데, 역시 개통 이래 30년 넘게 최장 터널을 유지했었다. 옛 고갯길은 터널로 진화했지만, 죽령 옛길과 고속도로와 옛 철도 터널의 출발 지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죽령 옛길의 출발점 희방사역. 철길 위 자전거는 기차역이 옛 추억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죽령 옛길의 출발점 희방사역. 철길 위 자전거는 기차역이 옛 추억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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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역 옛 철도에서 보이는 다리는 중앙고속도로의 죽령교다. 또한 철도 오른편은 죽령 옛길의 시작점인데, 예나 지금이나 죽령 옛길과 중앙고속도로와 옛 중앙선 죽령터널의 출발점이 같다는 게 흥미롭다.
 희방사역 옛 철도에서 보이는 다리는 중앙고속도로의 죽령교다. 또한 철도 오른편은 죽령 옛길의 시작점인데, 예나 지금이나 죽령 옛길과 중앙고속도로와 옛 중앙선 죽령터널의 출발점이 같다는 게 흥미롭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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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역 뒤로는 아기자기한 마을이 하나 보이는데, 이름이 무쇠달마을이다. 무쇠달은 무쇠다리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곳의 옛 지명인 수철교리(水鐵橋里, 오늘날은 수철리로 바뀌었다)의 우리말 이름이다.

무쇠다리의 유래는 마을 위 희방사를 창건한 두운과 연관이 있다. 두운이 산속 동굴에서 홀로 도를 닦고 있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괴로워하며 스님을 찾아왔다. 이유를 보니 은비녀 하나가 목에 걸려 있어 스님이 뽑아주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난 후 무슨 소리가 나서 밖으로 가보니 예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은 채로 있었다. 두운 스님은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고 회복시켜 누군지 물어보니, 계림의 호장 유석의 무남독녀라고 했다. 처녀는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했는데, 불이 번쩍 거릴 때 몸이 공중에 뜨며 정신을 잃었다고.

이후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난 다음 오늘날 경주로 데려가니, 유호장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무쇠로 수철교를 놓아 도를 닦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쇠달마을이 된 것. 

무쇠달마을과 중앙고속도로 교각을 지나니 푸른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들이 보인다. 곧 있으면 소백산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붉은 영주사과다.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 때문에 당도가 높아서 전국 어디서나 인기가 많다. 올해 수확이 무사히 되길 바라면서 길을 나섰다. 
 
죽령을 오르기 전 마지막 경상도 마을인 무쇠달마을. 희방사를 창건한 두운의 전설로 유명하다
 죽령을 오르기 전 마지막 경상도 마을인 무쇠달마을. 희방사를 창건한 두운의 전설로 유명하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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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옛길 위 사과 과수원. 영주 사과는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 때문에 당도가 높다.
 죽령 옛길 위 사과 과수원. 영주 사과는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 때문에 당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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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이야기

과수원을 지나니 오른쪽 편으로 죽령 옛길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 이후로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길이 이제는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길로 좁아진다. 말 그대로 신라시대 군인부터 조선시대 선비들이 경험했던 길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다.

죽령은 언제 개척했을까? 삼국사기 권 제2 신라본기 제2 아달라이사금 조에 간략한 기록이 나온다. 

五年, 春三月, 開竹嶺. (5년 봄(158) 3월에 죽령을 개척하였다.)

무려 1860년이 넘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옛길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이어서 두 국가 모두의 군사 요충지였다. 6세기 중반 진흥왕의 영토 확장 이후에는 신라 입장에서 낙동강 유역에서 한강 유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길이었는데, 이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삼국통일을 시작하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우로에 속했지만, 과거를 보러 가는 수험자들에게 외면당했던 안타까운 역사가 있다. 그 이유가 죽령을 건너면 죽죽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그래서 조선시대 과거길은 문경새재에 내줬지만, 퇴계 이황을 비롯한 영주, 안동 양반들과 보부상들은 여전히 이 길을 이용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의 물소리가 상당히 요란하고 빗물이 내 신발 위를 흐르고 있다. 길을 계속 가다 보니 오히려 푸른 나무가 가득한 생태탐방로처럼 보인다. 문경새재에서 볼 수 있는 성문과 누각도 전혀 없는 순수한 자연이라고 해야 할까나. 하지만 고갯길 이름과는 달리 대나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왜 고갯길 이름이 대나무로 되었는지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정확한 건 모른다.
 
죽령 옛길. 넓은 신작로로 이뤄진 문경새재와 달리 옛 선비가 오고 간 산길 그대로다.
 죽령 옛길. 넓은 신작로로 이뤄진 문경새재와 달리 옛 선비가 오고 간 산길 그대로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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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나무들과 시원한 물소리가 일품인 죽령 옛길. 하지만 대나무는 없다. 어느 도승이 고개를 넘을 때 사용한 대나무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살아났다는 설 등이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수많은 나무들과 시원한 물소리가 일품인 죽령 옛길. 하지만 대나무는 없다. 어느 도승이 고개를 넘을 때 사용한 대나무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살아났다는 설 등이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 최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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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치안이 안정되어 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숲이 우거졌던 곳에는 선비와 보부상의 노잣돈을 노린 산적들로 가득했는데, 죽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자구 할머니'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자구 할머니는 죽령 일대에서 산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나라에서 죽령 도적을 토벌하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나서서 자기가 도적 굴에 들어가서 잠이 안 들면 '더자구야'라고 하고, 잠이 들면 '다자구야'라고 할 테니, '다자구야' 하면 쳐들어오라고 했다고. 

할머니가 적굴에 들어가서 '더자구야, 다자구야' 외치자, 도적 두목이 의심하여 물어보니 할머니는 자기 아들들을 찾느라고 이름을 부르는 거라고 했다. 다행히 도적 두목은 의심을 거둬 할머니가 그대로 머물 수 있었다. 마침 도적들이 두목 생일을 축하하느라고 잔치를 벌이다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을 때, 할머니가 "다자구야"라고 외쳤다.

그래서 관군이 습격해서 토벌에 성공한 후, 큰 도움을 준 할머니를 찾았는데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그제야 관군이 할머니가 산신령임을 알고 해마다 '다자구 할머니'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오늘날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생태탐방로지만, 옛날에는 산적들로 가득했다. 복잡한 나뭇가지들과 어두운 그늘이 '다자구 할머니' 전설이 내려오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오늘날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생태탐방로지만, 옛날에는 산적들로 가득했다. 복잡한 나뭇가지들과 어두운 그늘이 "다자구 할머니" 전설이 내려오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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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 습해서 윗옷이 다 젖어가고 있을 무렵, 평상들로 가득한 쉼터가 하나 보인다. 쉼터를 보니 옛 보부상과 선비들을 위한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옛 보부상들은 싱그러운 푸른빛과 계곡물소리와 함께 꿀맛 같은 휴식을 즐겼을 터.

주막에서 좀 더 올라가니, 수많은 계단들이 보인다. 헉헉대며 끝까지 올라가니 최근에 지은 누각이 보이는데, 죽령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 왔구나. 누각을 통과하니 왕복 2차선으로 포장된 5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길에 들어서니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곳부터 온달장군이 영토를 회복하려고 했던 죽령 이북 땅과 한강유역으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이제는 평상들만 남은 죽령 옛길 주막. 중앙선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왁자지껄했다.
 이제는 평상들만 남은 죽령 옛길 주막. 중앙선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왁자지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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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발 죽령 옛길의 도착점 죽령루. 2010년에 영주시에서 세웠으며. 5번 국도 죽령구간과 만나는 곳이다.
 영주발 죽령 옛길의 도착점 죽령루. 2010년에 영주시에서 세웠으며. 5번 국도 죽령구간과 만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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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역사가 있는 옛길 죽령. 중앙선과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죽령 옛길은 이제는 나무만 가득한 생태탐방로로 변했다. 그리고 옛날에 있었던 주막들은 이제는 5번 국도와 중앙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휴게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희방사역 주변이 죽령옛길, 중앙고속도로, 옛 중앙선의 출발지인 것을 보면, 신라시대 길을 개척한 이의 혜안을 볼 수가 있다. 이제는 중앙고속도로 아래 KTX-이음이 서울과 안동을 오가는데, 몇 년 있으면 부산 부전역까지 가게 된다.

말 그대로 영남좌로의 경부고속선과 영남우로의 준고속 중앙선 철도로 진화하는 셈이다. 길 개척을 처음 지시한 아달라 이사금이 하늘에서 KTX-이음을 볼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발 696m 죽령.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해발 696m 죽령.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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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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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테마 중앙선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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