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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시장 바로 위쪽의 창신동과 숭인동은 아직까지 개발을 거부하고 옛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창신동은 60년대 이후 동대문 시장의 최일선 생산기지로 시작하여 지금도 우리나라 봉제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다. 곳곳에 자리한 오래된 점포와 소상공인들이 모여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숭인동에는 정순왕후가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동망봉이 있으며 왕실과 양반가의 여인들이 출가하여 수행을 했던 삼각산청룡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채석장이 여전히 아픈 상처를 드리우고 있는 곳이다. 총독부 건물을 세우기 위한 돌을 캐면서 멀쩡한 산자락을 절개하였기에 멀리서도 흉물스런 외관이 보인다.
 
봉제 역사가 담긴 거리이며 정순왕후가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동망봉이 있다.
▲ 창신동 숭인동 산책길. 봉제 역사가 담긴 거리이며 정순왕후가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동망봉이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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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책코스는 동대문역에서 출발하여 백남준기념관을 둘러보고 안양암을 거쳐 돌산마을에 올라 동대문과 종로구 일대를 굽어본 뒤에, 창신역으로 내려와 청룡사를 구경하고 숭의공원을 휘휘둘러 동묘앞역에서 마무리하는 길이다. 옛 풍취가 드문드문 남아 있어 오밀조밀 구경하는 재미가 삼삼하다.

창신동 봉제거리가 박물관으로 변신

산책의 시작은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와 좌측길로 들어서면 SeMA 백남준기념관이 나온다. 서울시에서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으며 한 켠에는 자그마한 카페가 들어서있어 차를 한 잔 마실 수도 있다.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다.
▲ SeMA 백남준 기념관.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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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한옥 내부로 들어서면 백남준의 주요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1970년대의 책상과 걸상, 골동품으로 여겨지는 미싱, 네 발 달린 TV, 어린 시절의 백남준이 관심을 보였던 물건 등이 관람객을 반긴다.

기념관을 나와 창신골목시장길로 들어서 봉제거리를 둘러보다 우회전하여 언덕길을 오르면 안양암에 다다른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불교계의 대표적인 친일파 이태준이 주지를 지내며 창씨개명 접수 장소로 이용되었던 절이기도 하다. 암자 뒤편으로 돌아가면 채석장의 흔적이 땅굴로 남아있다. 부조로 새긴 부처상 윗쪽으로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굴이 나온다.

입구 좌측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구한말 때 일제의 스파이로 활동한 배정자(裵貞子, 다야마 사다코)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민씨 일가에 반대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흥선대원군 몰락과 함께 처형되고 어미는 충격으로 장님이 되었으며 연좌제에 따라 노비의 삶을 산다. 이후 기생과 여승으로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 등에게 의탁하였다고 전해진다.
 
▲ 종로구에서 이만한 풍경 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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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밀정으로 키워지게 되는데, 일본어 통역이란 명목으로 귀국하여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기밀 정보를 일본에 넘겼다. 배정자는 노천명과 함께 민족탄압에 앞장선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여러 독립투사를 밀고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안양암을 나와 동네 주민들만 알고 있을 것 같은, 겨우 한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지름길을 조금만 오르면 산마루놀이터와 돌산마을이 나온다. 제법 지대가 높으므로 동대문 일대를 굽어볼 수 있으며 1980년대의 거리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집 앞에 놓인 평상에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장기를 즐기고 있으며 단층집 옥상 위에는 곡식을 널어 말리고 있는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창신동 산마루놀이터에서 굽어본 동대문 일대 풍광.
▲ 창신동에서 바라본 봉제거리. 창신동 산마루놀이터에서 굽어본 동대문 일대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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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길을 오르면 창신숭인채석장 전망대에 이른다. 컨테이너 모양의 실내에서 간단한 음료를 팔고 있으며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지붕에 오르면 동대문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번 산책길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곳이다. 동쪽을 바라보면 돌을 캤던 숭인공원의 절벽이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정순왕후가 매일 올랐던 숭인공원 동망정

전망대를 내려와 종로종합사회복지관 옆길을 따라 내려오면 왼편으로 흉물스런 채석장 절개지가 숭인공원까지 이어진다. 창신역 3번 출구 오른쪽에 삼각사청룡사가 있다. 도선국사의 유언에 따라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사찰이다. 초대 주지 혜원(慧圓) 이래로 비구니만의 사찰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왕족과 양반가의 출가한 여인들이 수행했던 사찰.
▲ 삼각산청룡사. 왕족과 양반가의 출가한 여인들이 수행했던 사찰.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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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에 의해 왕실에서 쫓겨난 단종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가 현재의 청룡사 옆 작은 초가집(정업원 터)에서 시녀와 함께 지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이때의 나이가 18세이므로 82세로 죽기까지 60여 년을 넘는 세월을 인근 동망봉에 올라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원래 정업원은 고려시대 부터 왕실이 관리하던 사찰로 추정되고 있으며 왕족과 권문세가 출신의 비구니들이 살았던 절이다. 숭유억불의 정책에 따라 조선 건국 초기부터 정업원을 없애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 제기되었다. 세조가 왕권을 잡으면서 한동안 수그러들었는데 홀로 남은 여성들과 장애인을 머물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학자들의 반발이 거세어지면서 연산군 때에 철폐된다.

훗날 영조가 정순왕후를 기리기 위해 정업원 터라고 여겨지던 곳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친필 사액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실제의 정업원은 궁궐 내부에 있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후궁들과 은퇴한 상궁, 양반가의 홀로된 여인들이 말년을 보냈다고 적고 있다.
 
정순왕후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 동망정. 정순왕후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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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를 나와 숭인근린공원으로 가면 정순왕후를 추모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세운 숭인재가 있다. 매년 길일을 택해 동네 주민들과 함께 동망봉제례 봉행이 이루어지므로 때를 맞춰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숭인공원의 끝 자락에는 동망정이 서 있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쌓여 있어 살짝 풍광을 가리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조망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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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를 펴냈다. O|O.3EE5.E8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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