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일산에 건물이 높은 게 북한 때문이래. 북한이 쳐들어오면 건물을 무너뜨려서 길을 막아서 진격을 늦추려고."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고양시 근처를 지나갈 때 들려준 이야기이다. 마침 도로명도 '자유로' '통일로' 같은 분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였고, 그 도로 한가운데 실제 북한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터널을 지나가던 상황이라 그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갑작스런 폭우로 반지하에서 결국 목숨을 잃은 이들의 소식, 그 안타까운 뉴스를 보며 예전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영화 기생충에서 봤듯 열악하고 취약한 주거 형태인 '반지하'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분단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덕분에 외신에까지 등장하게 된 한국의 'banjiha(반지하)'. 그런데 그 반지하의 출발점은, 애초에 안보 목적이었다는 걸 아는지. 1970년대 북한과의 시가전을 고려해 방공호와 비슷한 목적으로 일종의 참호 역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서울 도심의 폭발적 인구 증가로 인해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주거 형태, 이른바 '반지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부동산과 분단, 의외로 많은 연결고리가 있다
 
지난 8월 8일 밤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살던 모녀(47, 13)와 발달장애인(48) 세 식구가 숨졌다. 사진은 같은날 폭우로 사망자가 발생했던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반지하 주택.
 지난 8월 8일 밤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살던 모녀(47, 13)와 발달장애인(48) 세 식구가 숨졌다. 사진은 같은날 폭우로 사망자가 발생했던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반지하 주택.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
몇 해 전 집값 폭등은 또다시 '영끌'이라는 신조어 속에 많은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겨우 취직해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보다 집값 상승으로 하루아침에 번 돈이 몇 년을 일해서 모은 돈을 추월하는 마당에, 누가 부동산 광풍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저 직장 가까운 곳에 자기 집 있으면 좋겠다는 게 과연 큰 욕심일까? 이런 부동산 시스템과 서울 중심 사회는 어떻게, 누가 만들어온건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분단을 뽑는다. 대표적인 예가 의정부, 포천, 연천 등 경기 북부 지역의 문제이다. 경기 북부는 실제 직선 거리상으로는 서울과 멀지 않다. 즉 경기 남부와 마찬가지로 여러 신도시가 들어설 수 있는 여건이 좋다. 그러나 실상은 어떨까. 남북 분단, 대치로 인해 접경지역으로 분류되고, 개발제한에 묶여 낙후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물론 단순히 서울과의 거리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접경지역이 가지는 피해는 너무나 분명하며 경기북부 분리 이슈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현대전의 양상을 볼 때, 사실 접경지역과의 거리는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오히려 통일 이후를 대비한다면, 분단지역 개발이 외려 필요하다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내가 사는 김포(경기 김포시) 역시 마찬가지다. 김포는 서울과 가까울수록 인구가 집중되고 도시화가 진행되었지만 서울과 먼 접경지역은 5개 읍·면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김포 지하철도 5개 읍·면까지 가지 않는다.

과거 하성대교나 파주대교는 군사 지역이라는 개발 문제에 부딪혀 개발이 지연되었다. 김포 북부 지역은 북한에서 위성사진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글어스 클로즈업도 막아놓았다. 심지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온 목함지뢰가 도심지에 나오기도 한다. 이게 모두다 분단과 관련된 문제이다.

​몇 해 전 어느 기업이 서울 한전 부지를 매입하는데 큰 돈을 써서 화제가 되었다. 당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경쟁업체를 제치고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뉴스였다. 기업의 미래가치가 서울 부동산에 들어서는 걸 보며 기업이 부동산이라는 안정적인 가치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기업뿐이 아니다. 앞서 말한 청년들의 영끌 열풍뿐 아니라, 요즘 초등학생들의 미래 목표들 중 높은 순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그렇다. 이런 얘기를 하나하나 듣다 보면, 한국 사회 가치가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업도, 청년도, 어린이들마저... 한국 사회 가치와 욕망은 대부분 '부동산'으로 쏠려 투영되어 있다. 

분단을 뛰어넘어 상상해보자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10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는 모습.
▲ 남-북 정상, 군사분계선 사이에 두고 첫만남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10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는 모습.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고작 10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분단 이전에 조선인들의 삶의 주요 무대는 지금처럼 한반도, 그것도 서울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었다. 북간도-서간도-연해주에 이르는 압록강~두만강 북쪽과 사할린과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좁은 반도를 넘어 개발과 개척의 역사의 주인공에 당당히 있었다. 

100년 전 일이 멀다면 약 10여 년 전 이야기를 꺼내 볼 수도 있다. 바로 '광역두만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 GTI)'이다. GTI는 동북아 경제협력 국제기구로 초기에 남한,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이 창립 국가로 참여했으며 1992년에 UNDP(유엔개발계획)의 지원으로 두만강 개발계획(TRADP :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으로 출범했다.

이후 경제성, 필요성, 참가 동인 등 공감대가 창립 국가들 사이 확대되면서, 2005년 9월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공동기금을 설립하는 등 사업 전반을 확대·발전시키는 두만개발계획(GTI: Greater Tumen Initiative)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2009년 11월 북한이 탈퇴하면서 두만강 지역 개발 논의는 동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단 담론만 넘어서도 우리 상상력의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분단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 깊숙이 존재해왔다. 분단이라는 비정상이 익숙해진 탓에, 우리는 상상력을 제한당한 채 아등바등 서울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은 단순히 제재, 수요와 공급을 넘어 수도권 집중, 세대갈등, 교통 편중, 저출산·고령화까지 다양한 이슈가 섞여 있다.

그러나 광역두만개발계획이나 경기 북부 개발 등을 보더라도, 서울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존 분단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남북의 가치를 열어갈 때... 그때 바로 부동산 공화국의 상상을 넘은 새로운 '내 집 마련' 프레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노승명씨는 지스옥션 대표이사입니다(카드뉴스 제작 홍명근). 위 내용은 (사)한반도평화경제포럼 사이트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실련, 바꿈세상을바꾸는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그리고 지금은 한반도평화경제포럼 사무처장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