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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교단에 누워 수업 중인 교사를 촬영하는듯한 영상이 SNS에 게시돼 논란이다.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교단에 누워 수업 중인 교사를 촬영하는듯한 영상이 SNS에 게시돼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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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학교도 저럽니까?"

얼마 전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접한 주변 지인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내 답변을 듣기도 전에 자문자답하듯 관련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의 내용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며 혀를 끌끌 찬다. '말세'라는 그들의 한탄에 죄인인 양 자꾸만 움츠러들게 된다.

늘 그래왔듯, 여론의 뭇매는 되바라진 아이들과 그들을 방치하는 교사를 향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가 아니라, 둘 다 문제라는 손쉬운 양비론이다. 결국 언론은 공교육 붕괴와 교권의 추락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어김없이 꺼내 들고 교육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부추긴다. 뉴스만 보면, 내일이라도 당장 교육이 무너질 것만 같다.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영악하고, 게으르고, 기본적인 예의범절도 모른다며 손가락질해댄다. 그들을 '사람'으로 길러내야 할 교사들이 학생 인권 운운하며 방임하는 통에 아이들의 '막장' 행태는 도를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그렇듯 망가진 교육의 중심에 전교조가 있다며 책임을 전가한다. 

교육의 희망을 자처하던 전교조는 어느새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아이들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앞장선 이들이 전교조라는 이야기다. 학생인권조례를 보호막 삼아 아이들이 활개를 친다는 황당한 논리다. 덩달아 인권의 의미와 가치조차 조롱당하는 처지가 됐다.

오랫동안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는 그것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며 사실로 믿게 된다. 대개 '굴뚝의 연기'는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부터 비롯된 게 태반이고,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가세하면서 어느새 '상식'으로 굳어진다. 

'버릇없는' 아이들은 언제나 있었다 

"열에 아홉은 학교의 교칙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착하고, 나머지 한 명도 아직 철이 덜 들어 되바라진 행동을 할 뿐, 소위 '막장'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이런 답변이 100% 솔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문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건 온당치 않다. '막장'이라 낙인찍기보다 사회는 성숙한 시민이 될 때까지 그들을 믿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학교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배움의 과정에 있다. 

아이들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은 과거에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영 버릇이 없다'는 기록은 수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에도 등장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에게도 버릇없이 대든다며 소크라테스가 한탄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가 살던 때 역시 기원전이다.

아이들의 무례한 행동을 욕하고 전교조를 탓해 봐야 잠시 속이 후련해질진 몰라도 달라질 건 없다. 넘쳐나는 댓글의 주장대로 '전교조를 박멸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숫제 교권 침해는 물론, 학교폭력과 성적 조작 등 쏟아지는 모든 교육계 비리가 죄다 전교조 탓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흡사 중세의 마녀사냥을 방불케 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론의 호들갑에 부화뇌동하는 건 우리의 눈과 귀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바보 같은 짓이다. 우리 언론의 주특기지만,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과 영상일수록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여론을 엉뚱하게 이끌기 일쑤다. 차분하게 지금의 교실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눈먼 분노를 넘어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수업 도중 교단 위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아이와 그를 무시하고 강의에만 열중하는 교사. 국민적 분노를 들끓게 한 영상 속 교실 풍경이다. 간과하고 있지만, 누락이 된 게 하나 더 있다. 수업 시간에 대놓고 스마트폰으로 해당 장면을 촬영하고, SNS에 실시간으로 올린 아이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상 속 장면을 다시 '미분'해야 상황이 정확히 읽힌다.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는 것과 해당 교사는 재계약을 염두에 둬야 하는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여느 학교의 일반적인 교실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단언컨대, 스마트폰은 학교급과 교과를 막론하고 교실 수업과 어울리는 도구가 아니다. 스마트폰 활용 수업이 대세라며 조만간 스마트폰이 칠판과 교과서를 대체하게 될 거라는 등의 장밋빛 예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속도보다 아이들이 저질 콘텐츠의 해악에 길들어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학년 초 인터넷 강의 수강을 이유로 일과 중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사용을 허용했더니 아이들은 얼마 못 가서 죄다 게임과 유튜브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소수였지만 점점 숫자가 많아지더니 교실은 시나브로 'PC방'이 되어갔다. 결국 교사들은 물론, 아이들 스스로 일과 중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을 정도가 됐다. 

스마트폰이 교실에 미치는 악영향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혹자는 교사의 내실 있는 수업만이 해법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아이들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재미를 능가하는 수업이란 없다. 점심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야 정상인 교실이 조용하다면,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어서다. 

학생인권조례에도 수업권 보장 차원에서 소지와 사용을 제한하는 조항이 삽입돼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일과 중 일괄적으로 걷어서 보관하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담임교사마다 골머리가 썩는다. 수행평가와 부모와의 연락 등을 이유로 개별적으로 분출하고 수합하는 게 또 하나의 업무가 됐다.

담임교사가 보관 중에 분실하기라도 할라치면 더욱 난감해진다. 고스란히 변상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등굣길에 집에 두고 오도록 훈화하지만, 스마트폰을 분신처럼 여기는 아이들에게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배도 고프지 않다고 말할 정도인데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교실 안 아이들 모두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상태에서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애초 만무하다. 해당 교사도 처음엔 수업 중 스마트폰을 끄라고 수도 없이 강조했을 터다. 물론, 아이들은 귓등으로 들었을 테고, 게임과 SNS를 즐기며 시간을 죽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통제하기도 버겁다. 그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아야 할' 기간제 교사였다. 

기간제 교사의 임면권은 온전히 학교장에게 있고, 아이들과 학부모는 물론, 동료 교사와의 사소한 갈등에도 재계약이 불투명해진다. 되바라진 아이들을 훈육하는 건 교사의 당연한 책무임에도, 그로 인해 민원이라도 제기되면 긁어 부스럼 꼴이 되고 만다. 이럴진대, 기간제 교사의 합리적 선택은 '강의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교권이 실추됐다는 진단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언론과 정부에서 제시하는 대책은 늘 두루뭉술하다.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 이미 학교마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고, 교권 침해 사례의 경우 학교폭력보다 훨씬 더 큰 징벌이 내려진다. 제도적인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교사라면 대부분 공감할 테지만, 요즘 아이들의 되바라진 행동의 원천은 스마트폰이다. 이번 일도 수업 도중 아이들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생긴 사달이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게 스마트폰이 방전되는 거라며 스스럼없이 답변하는 아이들에게, 배터리 충전을 위해 '교단 위에 드러눕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요컨대,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 머지않아 유튜브가 교과서를 대체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적어도 학교 교육에선 스마트폰이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100개가 있다 한들 아이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콘텐츠 하나에 상대가 되지 못한다. 

공교육 붕괴 운운하며 교사의 무능을 질타하는 학부모들과 언론에도 한마디 덧붙인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스마트폰에 길들여놓고서, 이제 와 학교 수업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건 온당치 않다. 오보로 판명됐지만, 스마트폰으로 여교사를 성희롱했다는 식으로 보도한 언론도 반성이 절실하다. 정녕 우리 아이들을 '막장'으로 몰아가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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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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