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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두번째 반려견 2개월 해탈이
 두번째 반려견 2개월 해탈이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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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사고였다. 진심이다. 난 정말 이 친구까지 키울 생각 없었다. 굳이 이 일에 대한 죄를 찾자면 깊이 사유하지 않은 거라 할 수 있겠다. 맞다. 당시에 나는 '순간'에만 집중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생각이 짧은 거다. 지난여름 나는 사진 속의 개를 데려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봄 집에 놀러 온 조카가 복주를 보고 본격 '나만 개 없어'라면서 '개앓이'를 시작했다. 고모로서, 아니 어른으로서 애가 마음을 쓰는 걸 보는 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덜컥 조카에게 "그럼 우리 강아지 임보(임시보호)를 할까?" 소리를 했다("떡볶이를 먹을까?"도 아니고 "임보를 할까"라니. 그것도 대형견을).

현실적으로 오빠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개를 키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빠네 부부는 이미 중·고생을 둘 키우는 것만으로도 숨차다. 한데 내가 여기에 개 한 마리를 더 보탠 거다. 처음엔 조카한테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작은 개를 권했다.

하지만 조카 녀석이 복주를 통해 이미 큰 개가 주는 큰 기쁨을 알아버린지라 소형견은 싫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김포의 한 공장에 나타났다는 이 친구를 데려오게 됐다(이 친구 역시 반려동물 입양 플랫폼인 '포인핸드'를 통해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모네 다녀온다던 딸이 갑자기 낯선 개 한 마리를 안고 현관에 나타났을 때 오빠네 부부 심정은 어땠을까? 물론 조카한테 해탈이를 들려 보내며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개 키우는 걸 반대하면 우리는 이 개 못 키운다, 명심해라, 단단히 일렀다. 그런데 조카 왈 "만약에 집에서 해탈이를 내쫓으면 저도 함께 나올 거예요"란다. 뭐??? 그제야 나는 일이 뭔가 꼬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개는 오빠네 집에 궁둥이를 붙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작 그 집에 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나름 조카 녀석은 해탈이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장차 대형견이 될 개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에 여러모로 무리였다.

그 덕에 해탈이는 오빠네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조카와 세트로 우리 집에 와 많은 날을 보냈다. 그러더니 올해 초 조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고모, 아무래도 제가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없어서요. 해탈이는 그냥 고모네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음...... 응??? 이렇게 나는 예정에 없이 복주 동생으로 시베리안 허스키(믹스견)를 한 마리 더 키우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삶이 권태롭게 느껴지거든 아들을 낳아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아들보다 허스키 한 마리를 먼저 키워보라 하고 싶다. 해탈이 보다 6개월 언니인 복주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먹으면 먹을수록 매력 있는 평양냉면 같은데 이 친구는 맵기의 강도를 최고로 올린 마라샹궈 같다.

눈물 나게 맵고 짜다. 세상의 모든 허스키가 다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친구는 대단하다. 뭔 놈의 개가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사고를 치는지, 거의 반년 동안 난 한시도 이 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복주는 진돗개 특유의 영민함으로 뭐든 한 번 가르쳐 주면 두 번도 필요 없이 척척 해냈다. 복주 하나 키울 땐 '생각보다 개 키우는 게 쉽구나' 하는 착각을 했다. 반면 이 친구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전에는 옆집에서도 내가 개 키우는 걸 몰랐다. 복주도 나도 조용히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탈이는 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짖고 하울링 했다. 또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어느새 먹으면 안 되는 걸 입에 물고 있었다. 놀라서 뺏으려 하면 이 녀석은 잽싸게 세탁기 뒤나 침대 밑으로 튀었다.

그러면 나는 이성을 잃고 "아니야, 나와, 아니야, 먹지 마, 먹지 마, 하지 마, 뱉어, 뱉으라고오오오" 하며 배에 힘을 꽉 주고 소리치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두번째 반려견 3개월 해탈이
 두번째 반려견 3개월 해탈이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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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닥치는 대로 집어먹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휴대폰 충전 줄, 합성섬유로 된 카펫, 벽지, 바닥재, 베란다 나무 몰딩, 플라스틱 슬리퍼, 비닐우산 일부, 문짝 모서리, 수세미 등 입에 닿는 건 뭐든 뜯어먹었다.

배변 훈련도 힘들었다.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되는대로 아무 데나 쌌다. 배변판은 지독히도 우연히 한두 번 사용한 게 전부다. 그 때문에 매일 같이 이불 홑청을 뜯어 빨고 무거운 카펫을 이고 지고 빨래 방을 오갔고 날이 갈수록 내 시름은 깊어져 갔다.

어느 날은 작정하고 대체 문제가 뭔지 깊이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이 친구는 복주를 자기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무시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녀석에게 나는 아무리 봐도 그냥 함께 사는 덩치 큰 친구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니 좀처럼 훈련이 안 되는 거라. 

게다가 복주는 이 친구의 배변 활동에 별 관심 없다. 그러니 어째. 답답한 내가 직접 우물을 팔 수밖에. 그 후로 나는 녀석이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말로 하는 대신 개처럼 낮은 자세를 하고 이빨을 보여주며 으르렁거렸다(나도 젊어서는 내가 마흔을 훌쩍 넘겨 이러고 살 줄 몰랐다).

결론적으로 이 방법은 통했다. 그제야 해탈이는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이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매일 조금씩 나아졌고, 이제 더는 실내에 실수를 잘(?) 안 한다.

이런 연유로 얼결에 개 두 마리를 키우게 된 거다, 그것도 큰 개 두 마리를. 지금도 가끔 그날 김포에서 녀석을 덜컥 데려온 순간을 떠올리면 그때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평소에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녀석 없는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니 어쩌면 누구 말마따나 운명이란, 운명의 실수까지도 운명인 게 아닐까 한다.

그렇게 일 년을 꼬박 함께 살고 보니 녀석의 효용성이 의외로 있었다. 먼저 녀석은 사춘기 조카의 구멍난 마음을 따뜻하게 메꿔 주었고, 예민한 개 복주 언니에게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마지막으로 내게도 억지로라도 여러 사람과 인사하고 얘기할 거리를 만들어 줬다.
 
두 번째 반려견 6개월 해탈이
 두 번째 반려견 6개월 해탈이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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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친구를 보면 나는 이렇게나 엉망인 세상이 그래도 제법 굴러가는 가는 게 누군가는 굶어 죽으라고 젖도 못 뗀 개들을 의도적으로 버려도 누군가는 개들을 끝끝내 찾아내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살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니 다른 게 기적일까. 우리 모두 이 험한 세상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함께 사는 게 기적이지, 싶다. 이런 연유에서 나는 이 친구를 '기적의 해탈'이라 부른다.

태그:#유기견, #우울증환자, #반려견, #사지말고입양하세요, #진도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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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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