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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판. 3심제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재판은 과연 정확하고 공정한 걸까. 1심 판결이 2심(항소심)에서 뒤집히기도 하고, 2심 판결을 3심(대법원)이 깨기도 한다. 같은 사건의 재판이라도 판사마다, 시대마다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법원의 상반된 판단에 따라 당사자들은 울고 웃는다. '뒤집힌 판결'은 제대로 된 원심 판결을 왜곡한 걸까, 하급심의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재판의 불가피한 속성일까. 판결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 [기자말]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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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법률 지식? 사건을 꿰뚫어 보는 혜안? 시대정신? 도덕성이나 청렴성? 물론 모두 중요하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판사의 '현실 감각' 혹은 '현실을 보는 눈'을 꼽고 싶다. 뜬금없다고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법원으로 오는 다양한 사건들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법전 밖의 세상'을 잘 파악하는 능력은 필수다. 과연 그럴까, 의심이 간다면 여기 소개하는 사건의 판결을 보라.

약 3년 전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이 발단이 된 사건이다. 내막은 이렇다(다소 민망하지만, 정확한 판단을 위해 부득이하게 실제 표현 그대로를 인용한다). A씨는 일베 게시판에 피트니스 여성 모델 C씨의 수영복 차림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을 본 B씨는 게시물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6덕이네, 엉덩이 봐라;; 와...꼽고 싶다ㅜㅜ"

이 사실을 알게 된 C씨는 댓글을 단 B씨를 형사 고소했고, 검사는 모욕죄 혐의가 인정된다며 B씨를 재판에 넘겼다. 법원에 접수되는 여느 사건과 견줘보면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단순한 편에 속한다. B씨 나름의 항변이 있었지만, 결국 이 댓글을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B씨의 댓글은 형사 처벌 대상인가, 아니면 불쾌하지만 범죄로 보기까지는 어려운가. 1심은 후자라고 판결했다. B씨가 무죄라는 것이다. 왜일까?

1심의 모욕죄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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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서 쟁점이 된 표현 2가지가 있다. 바로 '육덕'과 '꼽고 싶다'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육덕'은 "몸에 살이 많아 덕스러운 모양"을 뜻한다. "그는 육덕이 크고 뱃심이 좋아 보였다"와 같은 용례에서 보듯 육덕은 남녀 모두에게 사용할 수 있다.

'꼽다'는 "수나 날짜를 세려고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다" 또는 "골라서 지목하다"는 의미이다. 일상생활에서 '꼽다'와 자주 혼동하지만 구별해야 할 단어로 '꽂다'("빠지지 않게 끼우다"는 의미)가 있다.

1심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 주목했다. 판결은 '육덕'에 대해 "성적 매력이 있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1심 재판부는 '꼽고 싶다'라는 표현을 "(C씨가) 피트니스 모델 중에 손에 꼽을 정도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B씨는) 서울 소재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꼽다'와 '꽂다'의 맞춤법을 혼동하였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B씨가 성관계의 의미로 '꼽고 싶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1심은 더 나아가 '꼽고 싶다'를 성관계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가정하더라도 B씨의 심리상태를 언급한 것에 불과하여 모욕죄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봤다.

1심 판결을 정리하면 이렇다. '육덕' 등의 표현은 당사자로서는 다소 불쾌할 수 있으나 모욕죄가 성립하기는 어렵고, 이른바 '인서울 대학'을 나온 사람이 '꼽고 싶다'와 '꽂고 싶다'를 혼동했을 리도 없다는 것이다.

2019년 1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되자 댓글의 출처인 일베 게시판엔 "육덕 꼽고싶다 게이야 축하한데이(feat. Solomon)", "판사님 존경합니다, 일게이 판결"과 같은 게시물이 한동안 줄을 이었다.

본문 중에는 "현명하신 솔로몬 판사님의 너그러운 판결", "하지만 지잡게이들은 조심해야 하는 건 함정"과 같은 내용도 있었다. 판결에 대한 찬사였을까, 조롱이었을까. 반면, 포털 사이트에는 이 판결을 비판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2심에서 유죄 인정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검사의 항소로 사건은 2심으로 올라갔다. 2심 재판부의 판단도 댓글에 대한 법적 평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같은 댓글을 놓고 1심과는 전혀 상반된 결론이 나왔다. 1심 판결이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했다고 2심은 판단했다. 문제의 댓글은 모욕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육덕, 꼽고 싶다' 등의 댓글을 게시한 행위는) C씨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치부함으로써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위험이 있는 모욕에 해당하므로 피해자를 공연하게 모욕한 사실은 충분히 인정된다."

2심은 "C씨의 몸매를 최고로 손꼽는다는 의도로 댓글을 게시하였다"는 B씨의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댓글의 전체 문맥이나 B씨가 선정성을 강조한 신체 부위, 미실현의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모티콘, 다른 이용자 댓글의 공통적 취지 등을 살펴보면 노골적인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폄하하는 내용으로 보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B씨는 2020년 2심에서 모욕죄가 유죄로 인정돼 벌금형 판결을 받았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판사의 현실 인식과 보통 사람의 눈높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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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심과 2심 판결 중 어느 결론이 더 타당한지를 단순하게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말이나 글이 모욕죄 형사처벌 대상인지 아닌지는 민감한 문제다. 특히 상대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특정 표현이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명예)를 떨어뜨리는 표현'인지, 아니면 그보다 수위가 낮은 '다소 무례한 표현'에 불과한지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사가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재판했는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법원의 최근 판결은 "사회 평균인의 입장", "일반적인 평균인의 경험칙과 사회통념"을 강조한다. 그 잣대로 보자면 1심 판결은 일반인의 인식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을 조금만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쉽사리 알 수 있다. '육덕'이란 단어는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을 때만 사용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서울 대학' 출신이건 해외유학파 출신이건 '꼽다'를 '꽂다'의 뜻으로 쓰는 사람은 온라인 세상에 널렸다는 것을. 더 나아가 여성을 대상으로 '꼽고 싶다'고 표현했다면 그것이 성관계하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을.

1심 판결을 두고 일베 회원들의 '조롱'이나, 네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진 까닭도 판결의 판단 근거가 된 판사의 현실 인식이 보통 사람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판사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판사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세상에는 법전이나 사전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사건도 있다는 것을. 더 나아가 때로는 사건기록의 행간 속에, 법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상식 속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법률 상식] 모욕죄 인정되려면

형법상 명예에 관한 죄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다. 판례에 따르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는 상태(공연성)에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표현을 사용하면 명예훼손 또는 모욕죄가 성립한다.

그중 모욕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것'을 말한다. 두 죄를 가르는 기준은 사실의 적시 여부이다.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으면 명예훼손이고, 사실의 적시 없이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면 모욕이다.

예를 들어 'A는 정신병자다', 'B는 ○같은 X'와 같은 욕설, 경멸적 표현 등을 온라인에서 댓글로 달았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사용했다면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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