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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코끼리를 닮은 기다란 주둥이에 입김만 불어도 죽은체 하는 곤충이 바구미다. 초식성이라서 각종 식물의 열매를 해하거나 저장된 곡물에 피해를 주는 종이다. 식성으로 인하여 어디서나 해충 취급을 받으며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코를 가졌지만 물거나 쏘지는 않는다. 

곤충 세상에서 제일 수가 많은 무리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8만 종이 알려져있다. FAO(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는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해충의 하나로 붉은야자바구미(Rhynchophorus ferrugineus)를 꼽고 있다. 몸 길이가 40mm 정도의 대형 바구미로서 동남아가 원산지인데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퍼져나가 여러 종의 야자나무를 해한다.
 
FAO에서 가장 파괴적인 곤충의 하나로 꼽는다.
▲ 붉은야자바구미(Rhynchophorus ferrugineus). FAO에서 가장 파괴적인 곤충의 하나로 꼽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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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은 약 200개의 알을 낳으며 깨어난 애벌레는 코코넛야자와 대추야자 등의 줄기를 파 먹는다. 피해를 입은 나무는 노랗게 시들어가며 심한 경우 말라죽기에 식량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작 원산지인 동남아에서는 진미로 여겨져 요리로 만들어 먹는데 대량 발생하면 작물을 황폐화 시키므로 유충 양식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식물에 암덩어리를 만드는 바구미

국내에 서식하는 몇몇 바구미도 저장 곡물에 상당한 피해를 준다. 연재 3화에서 소개한 쌀바구미와 팥바구미가 대표적인 놈들이며 농작물은 아니지만 여러 식물에 암을 유발하는 바구미에 대해 알아보자.

한복 저고리나 적삼 위에 덧입는 옷을 배자(褙子)라고 한다. 소매가 없기 때문에 구명조끼와 같은 모양이다. 배자바구미는 얼굴과 배는 흰색의 털로 덮혀있으나 가슴은 까만색이라 마치 배자를 입은 것처첨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몸 길이는 약 10mm 정도이며 언뜻 보면 방금 싸 놓은 새똥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천적의 눈길을 피하려는 목적이다.
 
칡넝쿨에 암(벌레혹)을 만들어 번식한다.
▲ 배자바구미 칡넝쿨에 암(벌레혹)을 만들어 번식한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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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이나 애벌레나 칡 넝쿨에 달라붙어 즙액을 빨아먹는다. 애벌레가 자라는 방식이 몹시 특이하다. 단단한 주둥이에 파먹힌 칡은 줄기가 갈변하며 점점 부풀어올라 벌레혹(gall)을 만든다. 이 혹 속에 여러 마리의 애벌레가 숨어서 세대를 이어간다. 한 마디로 말해 칡의 면역을 이용해 암덩어리 집을 만들어 살아가는 셈이다.

충영(벌레혹)을 열어보면 여러 개의 칸막이로 이루어져 있는 다세대주택임을 알 수 있다. 혹 속에 살므로 다리는 퇴화되어 흔적만 보이고 C자형으로 몸을 말고 있으며 털이 없이 매끈한 몸매다. 가을 무렵이면 성충으로 탈바꿈하여 칡즙을 먹다가 땅 속이나 나무 껍질 아래에서 겨울을 난다.

예로부터 민간요법으로 벌레혹을 달여 마시거나 말려서 가루를 내어 먹었다. 신장 기능을 강화시키고 통풍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개다래에 핀 벌레혹인데 지금도 술에 담궈서 복용하거나 건강 보조 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가죽나무 줄기를 파먹고 살아간다.
▲ 극동버들바구미. 가죽나무 줄기를 파먹고 살아간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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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버들바구미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따오기를 닮은 녀석으로서 봄부터 가을까지 활동한다. 배자바구미와 비슷한 몸매이지만 좀 더 호리호리하고 몸집이 크며 따오기처럼 긴 주둥이에 붉은점이 흩뿌려져 있다. 교미 후 암컷은 가죽나무(가중나무)에 알을 낳으며 부화한 애벌레는 나무 속을 파먹으며 자란다. 

드릴로 나무를 뚫으면 톱밥이 밀려나오듯이 짜장 면발 같은 하얀색의 똥을 싼다. 이 식흔(먹은 흔적)으로 애벌레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가죽나무는 '가짜 죽나무'의 준말이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말려서 소화기 계통의 질병을 다스리는 데 쓴다. 

황소 얼굴을 한 소바구미

소바구미는 허여멀건 낯짝이 소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컷의 양쪽 겹눈이 툭 튀어나와 있어 소뿔처럼 보인다. 희한하게 생긴 얼굴은 우리나라 곤충 중에서 한 손가락에 꼽는 종이다. 몸 길이는 약 5mm 정도이며 때죽나무와 쪽동백나무 열매 속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애벌레는 약 2주간 씨앗을 파먹으며 그대로 겨울을 난다.
 
때죽나무와 쪽동백나무를 파먹고 산다.
▲ 기묘하게 생긴 소바구미. 때죽나무와 쪽동백나무를 파먹고 산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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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는 옛날에 물고기를 잡는 독으로 쓰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열매를 찧어 냇물에 풀어놓으면 물고기가 '떼로 죽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가미 호흡을 마비시키는 독성 물질(egosaponin) 때문이다. 에고사포닌 성분은 기름때를 없애주는 역할을 하므로 과거에는 열매를 짓이긴 물로 빨래를 했으며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거나 머릿기름으로 바르기도 했다.

쪽동백나무는 과거에 여인네들이 머리를 쪽 지면서 발랐던 동백기름을 대신해 쓰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열매가 곤봉처럼 생겼기에 영어권에서는 눈종(snowbell) 이라고 부른다. 때죽나무와 자매지간이며 나뭇가지가 요상하게 생겼다.

가을에 보면 마치 화학식을 표기하는 것처럼 가지가 자라는데 흡사 육각형 벌집의 한 쪽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보인다. 초록은 동색이라 하였으니 기이한 나무에 괴상하게 생긴 소바구미가 꼬인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같이 등록됩니다.


태그:#소바구미, #극동버들바구미, #벌레혹, #배자바구미, #쪽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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