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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커피의 나라입니다.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도 어디서나 쉽게 카페며 커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커피가 한국에서와는 제법 다릅니다. 베트남이 저만의 방식으로 커피 문화를 발전시켜온 때문입니다. 베트남 젊은층의 서구브랜드 선호 경향에도 세계적 기업 스타벅스가 뿌리내리지 못한 건 상징적이기까지 합니다.

베트남 카페에선 베트남식 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핀(Phin)이라는 도구로 내린 커피는 카페인이 그대로 느껴지는 강렬한 쓴 맛이 특색입니다. 쓴 맛 덕분에 맛을 중화하는 기술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해 식품기업들이 앞다퉈 제품화한 연유커피, 코코넛커피, 달걀커피가 그 대표 주자입니다.

베트남 커피는 프랑스 식민시대를 거쳐 발달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식민지에서도 먹고 마시려 한 식민통치자들이 베트남에서 와인이며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한 탓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커피도, 와인도 제가 자란 토양을 반영하는 것인지라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던 맛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것이었죠.
 
베트남 한 카페에서 주문한 전통 커피.
▲ 베트남 베트남 한 카페에서 주문한 전통 커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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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우연에서 진화한 베트남 커피

커피에 연유와 코코넛, 달걀을 섞은 건 연구와 우연의 결과물입니다. 처음 프랑스인들은 베트남에서 자란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가 너무 쓰다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때문에 저들이 좋아하는 카페오레, 즉 우유를 타서 마시려 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기후가 더워 신선한 우유를 유통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래서 내놓은 답이 연유였습니다. 우유를 수분을 날리고 가공한 것입니다. 보존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고 수분도 적어 세균이 번식하기도 어렵습니다. 연유에 물을 더하면 제법 우유와 비슷해지니 아열대지방에서까지 우유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연유를 커피에 타 단 카페오레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그 결과물이 오늘의 카페쓰어다입니다. 카페(Caphe)는 커피, 쓰어(Sua)는 연유, 다(Da)는 얼음이지요.

좀 더 현지화한 무엇을 원했던 이들은 연유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유명한 과일, 그중에서도 수분이 많은 코코넛을 사용했습니다. 코코넛물을 넣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코코넛 속을 갈아 올리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 제법 특색 있는 맛이 나왔죠.

달걀커피도 우연히 개발되었습니다. 어느 호텔 바텐더가 카페쓰어다를 주문받았는데 연유가 없어 대신 달걀노른자를 넣은 것이죠. 이 커피가 대박을 친 덕분에 베트남 카페의 주요 메뉴가 또 하나 늘게 되었습니다.
 
사이공 달걀커피 카페쯩.
▲ 베트남 사이공 달걀커피 카페쯩.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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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

프랑스 식민지를 거치며 베트남은 대표적인 커피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생산량 기준 브라질에 이어 2위로, 전 세계 시장점유율 17% 정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베트남 커피는 남다른 친숙함이 있습니다. 흔히 마시는 믹스커피 원산지에서 베트남산 커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믹스커피 뒷면 원산지를 보면 '페루35%, 콜롬비아20%' 같은 식으로 적혀 있는데, 이런 경우 나머지 비율 대부분은 베트남산이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 베트남보다 남미 커피의 이미지가 좋은 탓에 베트남을 원산지로 따로 적지 않는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 따로 없습니다.

사실 베트남 커피가 한국에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데 이유가 없진 않습니다.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품종으로 나뉩니다. 이중 아라비카는 일조량이 많고 건조한 고지대에서, 로부스타는 어느 정도의 온도와 습도가 있는 땅이면 쉽게 자랍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트남은 북부 고산지대를 제외하곤 로부스타를 주로 재배합니다.

아라비카의 산미와 향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인식에 더해, 베트남의 로스팅방식까지 투박하다보니 아라비카는 고급, 로부스타는 저급이란 생각도 널리 퍼져있습니다. 실제로 베트남인들은 전통 방식으로 카페인 센 쓴 커피를 내린 뒤 단 것을 섞어 마시니, 에스프레소나 핸드드립커피로 본연의 맛을 즐기겠다는 이들이 만족할 리 없었습니다.
 
베트남 다낭 한 카페의 코코넛커피.
▲ 베트남 베트남 다낭 한 카페의 코코넛커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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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이 곧 개성으로, 베트남 커피의 진화

하지만 최근엔 베트남식 커피를 고급화한 카페들도 늘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며 품질관리에 신경을 쓰는 로부스타 농장이 생겨났고, 블렌딩 대신 싱글오리진 로부스타 커피를 파는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아라비카보다 못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제 나름의 특색을 충분히 강조하는 커피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 로부스타 특유의 구수한 풍미는 의외로 한국인들의 입맛과 어울리기도 하니 한 번 맛보고 다시 이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베트남인들의 고집도 한몫을 합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너덧 번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주문해보았지만 그중 절반쯤은 주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카페 사장은 몇 년 전 에스프레소 기계를 들여놨지만 사람들이 베트남식 커피만 주문하는 통에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지 않는 이상 베트남식 커피가 아닌 서구식 커피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베트남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커피문화가 살아남을 듯합니다. 커피는 이미 베트남의 국민 음료가 되었고, 그들은 서구식이 아닌 베트남식으로 커피를 즐깁니다. 이는 문화가 되어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들이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페를 마시도록 합니다. 카페쓰어다(연유커피), 카페쯩(달걀커피), 카페두아(코코넛커피)는 저가 커피가 아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커피는 그저 음료가 아닙니다. 어느 문화든 공들여 가꾸고 즐기다 보면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과연 멋진 일이 아닙니까?
 
베트남 하노이 한 카페에서 주문한 달걀커피.
▲ 베트남 베트남 하노이 한 카페에서 주문한 달걀커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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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베트남, #카페, #카페쑤어다, #카페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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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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