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2 20:01최종 업데이트 22.09.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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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직접 영향권에 든 5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안가에서 집채만 한 파도가 지나던 차량을 덮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오늘밤부터 충청권 전역이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충북) 옥천군은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각 실과소 및 읍면사무소 비상근무에 돌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오후 6시 기준 옥천군 평균 누적 강우량은 15.8mm로 옥천읍이 13mm, 동이면이 21mm, 청산면이 17mm..."
- 9월 5일 오후 6시 15분 옥천FM공동체라디오 재난방송 중


새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해 6월 말 갑작스레 쏟아진 비에 사무실 옆 금구천(옥천군 옥천읍을 지나는 하천)이 범람했을 때의 일이다. 시커먼 흙탕물이 매일 지나던 산책로를 삼키고 물에 잠긴 차량은 지붕만 내놓은 채 둥둥 떠 있는 장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물폭탄'이 쏟아진 지 두어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하천 범람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일상에서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같은 우리 동네 재난을 실시간으로 전해줄 창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체감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온라인 검색을 잘 활용하거나 조금 재빠른 이들이야 군청 홈페이지, 기상청 동네예보 등을 확인하며 재난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지만 실시간으로 이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어디 쉬운 일이냔 말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기후재난에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봐야 했던 때의 바람은 예상보다 빨리 실현됐다. 최근 역대급 태풍으로 보도되며 전국을 두려움에 떨게 한(현재까지 원상회복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한) '힌남노'가 충북 옥천을 지날 때, 옥천FM공동체라디오(이하 옥천FM)의 재난방송이 실시된 것이다.

불안한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개국한 옥천FM의 재난방송은 철저히 지역 중심이라는 점에서 그간의 재난방송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옥천군 평균 누적 강우량은 물론 각 읍면별 강우량 정보를 안내하고 태풍으로 인한 지역 학교의 원격수업‧단축수업 상황을 상세히 전달한다. 여기에 수확철을 앞둔 농작물의 피해 예방법까지 안내하고 옥천만의 5일 재난방송은 일단 마무리됐다.

다음 날(6일) 낮의 재난방송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옥천읍 죽향리를 지나던 차량이 강한 바람에 쓰러진 나무와 추돌하는 사고"와 "청산면 하서리 한 주택 마당의 감나무가 쓰러진 사고"를 전하며 "이 밖에 나무 쓰러짐 사고는 총 15건이 접수됐고 현재 옥천군은 이에 대한 안전조치를 모두 완료했다"는 설명이 흘러나온다. 옥천역에서 출발하는 대전행, 영동행 기차의 재개 여부에 관한 안내도 함께한다.

힌남노가 옥천을 지나간 후인 7일의 재난방송 역시 주민들의 불안과 궁금증을 해소한다. "동이면 금강 일대가 크게 범람한 것이 용담댐 방류 때문은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힌남노 상륙 전 용담댐 수위가 높지 않아 방류는 진행하지 않았고 현재 금강 범람은 태풍이 몰고 온 비의 영향"이라는 깔끔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2020년 8월 용담댐(전북 진안군에 있는 댐)의 갑작스런 방류로 옥천을 비롯한 충북 영동군, 충남 금산군, 전북 무주군 등이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아직 그 상흔이 남아있는 지역에서는 강물이 찰랑대는 것만 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 일반 주민들이 한국수자원공사나 관계기관에 일일이 문의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주민들의 불안과 궁금증까지 시원하게 해소하는 데 지역 재난방송이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가속화하는 기후위기에 자연재난이 빈번해지고, 건물이나 도로 붕괴‧교통사고‧감염병 확산 등 사회재난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 재난방송의 중요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지난 힌남노 당시 우리 동네 공동체라디오의 재난방송을 들으며 이를 더욱 실감한다. 만약 이런 정보 전달자가 없었다면, 세찬 바람에 덜컹대는 창문을 부여잡고 더없이 불안하게 그 밤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불안한 밤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말이다. 옥천처럼 풀뿌리 언론이 있는 지역에서는 실시간으로 동네 재난 상황이 전달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지역은 SNS의 해시태그로, 주변 지인과의 연락망 정도로만 이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전국언론, 중앙언론에서 지역의 재난은 거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다뤄질 뿐, 지역 상황 점검이나 예측, 대책을 논하는 건 찾아보기 어렵다('찾아볼 수 없다'고 쓰는 것이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마땅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지역 재난보도를 보면서 전국언론이 복무하는 곳은 '서울(뿐)'임을 다시금 자각한다.

재난의 시대, 제대로 된 재난방송이 필요하다
 

충북 옥천군 OBN 방송국 전경 ⓒ 월간 옥이네

 
대구 지하철 참사부터 세월호 참사, 강원도 산불이나 태풍 피해 등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수없이 거치는 동안 언론의 재난보도에 대한 반성 역시 잊을 만하면 반복됐다. 그 반복 속 나름 의미 있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재난보도준칙 마련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준칙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언론은 재난 발생 사실과 피해 및 구조상황 등 재난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최대한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해야 한다(제2장 제3조)"는 말은 서울에서만 통용되는 그들만의 약속일뿐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당장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에서 재난방송은 지금보다 훨씬 더 상시적이어야 한다. 서울에만 재난방송 관련 기구나 시설, 인력을 배치할 게 아니다. 각 지역마다 이를 수행할 기관과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재난의 시대, 각 지역 상황에 맞는 제대로 된 재난방송과 대책이 마련될 수 있다.

당장 코앞의 금구천 범람 피해를 예측하고 경고하는 것,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전달하는 것은 KBS도 JTBC도 네이버도 아닌, 바로 우리 동네의 <옥천신문>, <월간 옥이네>, 옥천FM이다. 이 같은 역할을 해낼 지역신문, 공동체라디오 등 풀뿌리 언론을 육성하는 것이 진짜 재난방송의 시작 아닐까.

물론 풀뿌리 언론의 안착과 확산을 위해서는 제도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공동체라디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실제 가청 범위는 최대로 잡아도 반경 7km에 그친다. 이는 현재 허가 출력이 3~10W에 불과하기 때문인데 이처럼 불합리한 제도가 수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국의 풀뿌리 언론이 때로는 비영리나 다름없는 상태로 어려운 상황에서 근근이 운영되는 것도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기후위기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을 태풍, 그리고 이를 전하는 재난방송 앞에서 진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 의무를 다하는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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