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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20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누가 불러내지 않으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벽배송도 잘 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했다. 걸음수를 체크해 봤더니 하루 종일 500걸음도 걷지 않은 날이 수두룩했다. 그렇게 생활해도 답답함이나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여행은 좋아했지만, 외출은 귀찮았다. 단기적으로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몸무게였다. 아무리 집밥을 해먹는다고는 해도 아웃풋 대비 인풋이 많아지니 남는 에너지가 몸에 차곡차곡 쌓였다. 늘어나는 몸무게를 보면서 '빼야지'라고만 생각했다. 마음만 먹고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들었다. 퇴사 후에도 사업과 육아 때문에 여전히 바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운동 할 시간을 따로 빼기 힘들었다. 집안일과 육아, 사업 등 당장 닥친 일을 수습하기에도 벅찼다.

의지 부족 인간이 선택한 운동
 
돈을 들여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돈을 들여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 dncerull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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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그적거리며 운동을 미루던 어느 날, 체중계를 보고 놀랐다. 70킬로그램이었다. 둘째 만삭 때 68킬로그램이었는데, 인생 최대치 몸무게를 넘어선 것이었다. 운동을 결심했다. 처음엔 회사에서 다닐 때처럼 30분 혹은 1시간씩 가볍게 걷기 운동을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몸무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홈트도 해봤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에 관한한 의지박약인 나에겐 맞지 않았다. 하루, 이틀 반짝 하다가 다른 바쁜 일이 몰아치면 우선순위가 밀렸다.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것은 안 한다는 말과 같았다.

이때 깨달은 점은 출퇴근이 생각보다 에너지가 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머리 쓰는 일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달랐다. 몸무게가 불어나니 여러 가지가 좋지 않았다.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더더욱 움직이기가 귀찮아졌다. 생각만 많아지니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몸무게는 여러 가지로 내 주변 생활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돈을 내고 운동하기로 했다. PT 10회를 끊은 것이다. PT가 나에게 잘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힘들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 소심하게 10회만 해보기로 했다. 20회, 30회 등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격은 저렴했지만, 스스로 확신이 부족했다. 스스로 확신이 부족할 땐, 가장 비싼 값이 가장 싸게 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운동 방법은 많으니, 여차하면 다른 운동으로 갈아탈 생각이었다.

그렇게 소심하게 시작한 PT가 40회로 연장되었다. 생각보다 PT는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었다. 좋은 트레이너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물론 소문처럼 무척 힘들었다. PT를 받고 온 날은 온몸이 뻐근해서 집에 와서 한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데 힘들지만 좋았다. 그 감각으로 10회, 20회 PT횟수를 늘려갔다.

처음엔 중량 10킬로그램도 힘들어서 쩔쩔매며 들었다.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트레이너가 자꾸 중량을 올렸다.

"중량을 얼마까지 늘려야 하는 거예요?"
"자기 몸무게만큼요."
"네? 말도 안돼요. 제가 70킬로그램인데, 그 무게를 든다고요?"
"말도 안 되는 걸 하시게 될 겁니다."


그때는 그 말이 좀 무서웠다. '아니 얼마나 더 고통스럽게 운동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PT를 받으며 점차 중량이 늘어 스쿼트 중량이 40킬로그램까지 늘었다. 인바디를 체크해보니 체중은 6킬로그램이 줄었는데, 대부분 체지방이 빠졌다.

골격근량은 일시적으로 빠졌다가 다시 늘었다. 덕분에 바디라인이 달라진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로 70킬로그램을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혹시라도 의지가 부족해질까 봐 인스타그램에 매일 운동 인증을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기록이었다. '#오운완', '#운동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로 기록을 했다. 같은 해시태그로 검색해보면 잘빠진 몸매, 멋진 몸매, 예쁜 몸매 등 세상 모든 운동선수들을 모아놓아 살짝 기죽었지만, 꾸준히 운동을 기록하기엔 좋았다.

인스타그램 인증을 하다가 '근테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뜻이 가슴에 콩 박혔다. 생각해보니 은퇴 후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치열하게 했지만, 어떻게 몸을 돌보며 살 것인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운동에 종종 관심을 가졌지만, 그건 당장의 몸무게를 빼는데 집중했을 뿐, 노년의 내 몸이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해서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죽는 날까지 걷는 자유를 위하여
 
죽는날까지 보행의 자유를 누리며 살다 가길 소망한다.
 죽는날까지 보행의 자유를 누리며 살다 가길 소망한다.
ⓒ philini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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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서 재테크와 운동은 꽤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로 종잣돈을 모아야 그 다음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의 종잣돈은 근육량이었다. 그래서 근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근육량을 늘려가는 것은 중요했다. 근육량이 있어야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고, 체력도 좋아졌다. 그냥 굶어서 살을 빼다보면 날씬해질 수는 있어도 근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두 번째로 종잣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유혹이 많았다. 종잣돈을 모으려면 한동안 소비하는 유혹을 멈추어야 한다. 운동효과를 누리려면 먹는 유혹을 멈추어야 한다.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된 식단을 먹어야 하고, 야채와 단백질 중심의 식단으로 바꾸어야 한다. 귀찮다고 대충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워서는 운동효과를 누릴 수 없었다.

세 번째로 생각보다 종잣돈은 쉽게 모이지 않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새 보답으로 되돌아온다. 첫 입사하고 나서 2년짜리 적금을 들 때는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언제 부자가 되나 싶었다. 그러나 꾸준히 모은 돈은 다른 돈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돈은 시간을 먹고 자라 집도 사고 노후 준비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근육도 마찬가지였다. 골격근량은 쉽게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 초반엔 근손실이 좀 있었다. 실망하지 않고 계속 하자 어느 순간 골격근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더불어 중량의 무게도 점점 늘어갔다. 중량이 늘면 근육은 다시 붙고, 그렇게 선순환의 반복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꿈이 하나 생겼다. 바로 복근 가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운동을 하기 전, 나는 노후에 생활비 걱정 없는 자유를 꿈꾸었다. 거기에 더불어 근육으로 다져진 몸은 나에게 건강한 자유를 주게 되지 않을까?

박완서 작가는 소설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죽는 날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걸 대라면 서슴지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이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삶과 죽음은 하늘의 뜻이라지만,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보행의 자유를 누리며 살다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립니다.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태그:#심신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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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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