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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비혼주의자다. 나 스스로 어떤 대단한 결심을 하고 이 길을 택한 건 아닌데 어느 순간 남들이 그렇게 나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 또한 어디 가서 나를 그렇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이후 따라 올 수많은 무례한 질문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적의 아닌 적의를 품은 건 아마 원가족의 영향이 클 것이다. 내게 가족이란 인적 드문 터미널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고 싶은 더러운 속옷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주고 받은 상처가 비교적 적은 작은오빠를 빼고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오랜 세월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런 내게 결혼이라니? 새 가족이라니? 당치도 않은 얘기다. 

게다가 나이 스물에 삼풍백화점 참사로 아무런 서사도, 맥락도 없이 한순간에 사람들이 죽고 사는 걸 보았다. 그러니 누군가와 이마를 맞대고 진지하게 미래를 설계해 본 적 없다. 내일은 그야말로 와야 오는 것이니까. 

10대 후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후 나는 원가족과의 왕래를 거의 끊었다. 뭘 모르는 친척들은 이런 내 행동을 야멸차고 비정하다고 욕했지만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내 인생을 조용히 응원한다. 명절이나 생일에도 나는 혼자였다. 그 사실이 서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고 좋았다. 너무한가 싶을 땐 마지막 온정을 쥐어짜 작은오빠네 어린 조카들을 따로 불러 용돈을 주거나 맛있는 걸 사줬다. 더는 무리였다.

혼자 지내는 건 생각보다 할 만했다. 잘 안 맞는 타인에게 억지로 나를 맞추느니 더러 조금 외롭더라도 혼자 잠들고 혼자 깨는 날들이 뱃속 편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내 방식대로 오랜 세월 몸에 밴 생활의 규칙과 취향들을 남과 합의해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대신 혼자 사는데 필요한 이런저런 생의 기술들은 미리미리 습득해야 했다. 형광등을 갈거나 조립식 가구를 들이는 기술을 익히는 건 글로 적기에도 시시하다. 

대신 갑자기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먹고 싶다거나 병이 났을 때는 훨씬 힘들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어쩐지 식당에서 혼자 고기를 굽는 것(요즘은 배달 앱이 있어서 괜찮지만)과 혼자 온몸을 꼬부리고 걸어 다니며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처방전을 들고 약방을 다니고, 죽을 사서 집에 오는 일만은 힘에 부쳤다.

그럴 때 간혹 '아무래도 혼자 사는 건 무리지?' 싶다가도 기력을 회복하고 나면 금세 이런 마음은 떨칠 수 있었다. 내 삶은 혼자서도 굳건하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내 인생에 개가 끼어들기 전까지. 

나 없이는 공황발작 일으키는 강아지
 
자고 있는 복주
▲ 입양 직후 복주 모습 자고 있는 복주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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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숨 쉬는 존재라고는 원래 나밖에 없었는데, 하나가 더 있다. 그것만으로도 적응이 안 되는데 이 친구는 종일 나만 본다. 그도 그럴 게 개가 혼자 책을 보겠나 TV를 보겠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온종일 나만 쳐다볼 줄은 몰랐다.

물론 개 입장에선 나를 보는 게 매우 중요한 업무다. 내 손에서 밥이 나오고 나를 통해 집 밖으로 나가므로 개한테는 필사적인 문제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적응이 안 됐다.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CCTV 한 대가 설치된 것 같았다. 개가 집에 온 후로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개의 시선이 따라왔다. 그것이 무척 거슬렸다.

이런 이유에서 개를 구조자한테 도로 돌려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틈만 나면 돈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비난하면서, 뒤로는 나도 웃돈을 얹어주며 이 일을 무마하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였을까. 복주는 유독 혼자 남겨지는 걸 견디지 못했다. 내가 자기 눈에서 5분만 안 보여도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덕분에 나는 의도치 않은 옥살이를 하게 됐다. 쓰레기 하나 맘대로 버리러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애견 카페나 유치원에도 맡겨 봤는데 소용없었다. 장소를 바꾸면 바꿀수록 개의 불안증은 더해만 갔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스레 외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부득이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집으로 불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하필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출간 시기와 겹쳤다. 개가 집에 오기 전부터 외부 행사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까지 줄줄이 잡혀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개를 혼자 두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린 거였다.

어쩔 수 없이 출판사에 사정을 이야기해 양해를 구하고 거의 모든 행사에 개를 데리고 다녔다. 다행히 편집자가 개를 좋아했다(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외출해야 할 땐 당근마켓에서 급하게 구한 펫시터에게 개를 맡기고 다녔다.
 
함께 업무미팅을 다니던 복주
▲ 출판사에 간 복주 함께 업무미팅을 다니던 복주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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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펫시터와 약속이 절묘하게 어긋났다. 일정 조율 중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를 어째, 눈앞이 깜깜했다. 라디오 생방송에 개를 봐주던 편집자와 함께 출연해야 하는데 펫시터는 지방에 가있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집으로 부를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당장 달려와 줄 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딱 한 사람, 작은오빠를 제외하고.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오빠에게 전화해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오빠가 와서 개를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오빠는 흔쾌히 술자리를 박차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우리 집에 와줬다.

오빠가 온다는 소식에 안도하고 방송국으로 내달렸고 무사히 방송을 마쳤다. 그때 만일 오빠가 안 된다고 했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복주를 빈 집에 두고 그대로 외출했겠지? 그러면 녹음하는 내내 마음이 몇 번이나 무너졌겠지? 다행이었다.  

개를 입양한 이후의 내 인생이 좋다

복주의 불안증은 복주가 나이를 먹으며 차츰 좋아졌고 동생 해탈이가 생기고 나서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오빠 신세를 진다. 지방 일정이 있거나 외부 강연이 늦으면 개들은 전부 오빠네 보낸다. 돈을 주고 업체에 맡길 수 있지만, 나 역시 불안증을 앓아서 그런지 마음이 안 놓인다.

희한하지? 개들이 없을 땐 혼자 사는 일에 긴장을 훨씬 더 많이 했다. 매일매일 죽음을 염두하고 살았다고나 할까? 무슨 일이 있어도 팬티 바람으로 남의 눈에 발견되지 않겠다며 매일 파자마 단추를 턱 끝까지 채우고 잤다. 하지만 개가 온 뒤로는 되는대로 산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 니은서점에서의 복주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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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개들한테 종일 시달려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개 때문에 전보다 많은 사람들과 밀도 있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가 없을 땐 철저히 쇄국정책으로 유지하던 나라는 국가가 개 때문에, 아니 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개방정책으로 국가의 정책 기조를 바꿨다고나 할까.

게다가 개를 잘 돌보는 조카들은 은근히 힘이 된다. 조카가 개를 돌보는 걸 보고 있으면 '내가 없어도 개를 잘 키우겠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도 든다. 그 생각을 하다가 어른들이 왜 '사람은 혼자서 못 산다'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혼자 살 수 있다. 대신 조금 더 많은 걸 신경 쓰며 살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길을 혼자 걸으면 나 대신 주위를 살펴주는 눈이 없으므로.

이런 이유에서 혼자 사는 분들이 개를 키운다고 할 때 나는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주변에는 혼자서도 개를 훌륭하게 잘 키우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개가 주는 기쁨 뒤에 따라오는 노동의 크기를 간과하고 덜컥 개를 입양해 훗날 파양을 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유기동물의 개체수가 2022년 기준 10만 마리에 해당한다고 하니 이는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비록 비혼주의자이나 남에게 혼자 사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생의 기준을 내가 아니라 세상으로 돌릴 때 인간은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이 기회가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보다 훨씬 적게 주어진다. 

비록 나는 사람 대신 개를 지붕 밑에 들였지만 개가 없던 때보다 개와 함께 살게 된 이후의 생이 훨씬 좋다. 다른 거 다 떠나서 전보다 많이 걷고 전보다 많이 웃는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또 만약 우리 개들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많은 일들을 매일 같이 개를 통해 배운다. 그러니 어찌 개들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개가 좋다, 많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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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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