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빙하특급열차>의 한 장면.

<스위스 빙하특급열차>의 한 장면.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옅은 갈색 픙에 따뜻한 노란빛이 감도는 배경.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한 쌍의 커플이 마주 보거나 함께 앉아 있다. 눈 주변에 분홍빛이 흐르는 이 커플을 바라보고 있으면 몽글몽글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 번만 스쳐 지나가듯 보더라도 이 둘에게서 샘솟는 사랑은 기억에 남는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이게 바로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듯한 일러스트를 만드는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 퍼엉(Puuung)이다.
 
그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페이스북을 합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3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할 정도의 인기 작가다.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플랫폼 그라폴리오에 올린 작품이 900개가 넘는다. 일러스트는 엽서, 포스터, 그림 에세이, 모바일 게임, 컬러링북, 스마트폰 배경 화면 등에 담겨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퍼엉의 본명은 박다미(30). 2015년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했으니 이제 8년 차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로 불렸던 그가 이번에는 감독으로 처음 영화제에 섰다. 지난 22일 개막한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랜선비행 부문에 오른 애니메이션 < Wherever we go >(우리가 어딜 가든지)가 그의 작품. 유일한 극장 상영 날이었던 24일 GV에도 참석했다.

"감독으로 불리는 건 오늘이 처음"
 
 2022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 <Wherever we go>로 처음 감독으로 참가한 박다미(필명 퍼엉) 씨. " 한가지 꿈이 있다면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어서 OTT  서비스 등을 통해 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은 박 감독의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2022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 로 처음 감독으로 참가한 박다미(필명 퍼엉) 씨. " 한가지 꿈이 있다면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어서 OTT 서비스 등을 통해 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은 박 감독의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 김진수

 
GV가 끝난 후 박 감독은 "감독이라고 불리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며 "애니메이션을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마음이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던 시절부터 서울인디애니페스트를 관객으로 찾았던 그는 몇 번의 공모 끝에 작품을 영화제에 올렸다.
 
< Wherever we go >는 연인인 D와 M의 여행기다. 박 감독의 유튜브에 총 9편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 스위스 빙하특급열차, 모로코 쉐프샤오엔, 인도네시아 우붓 원숭이숲 세 편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세 에피소드를 합친 분량은 5분 가량. 산뜻한 배경음악과 구체적으로 묘사된 장소와 배경, 그 안에서 여행하는 커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팬데믹 때문에 사람과 사이의 만남도 줄어들고 여행 가는 건 꿈같은 일이 됐어요. 지쳐 있는 분들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드리고 싶어 작품을 기획하게 됐어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장소로 선정했다는 그는 "한국(전주 한옥마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보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대신 구글 지도를 보면서 배경을 익히고 캐릭터들이 걷는 속도 등을 계산할 정도로 꼼꼼하게 동선을 짰다. 좀 더 현지의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 리뷰도 참고했다.
 
캐릭터 D와 M은 예상대로 감독의 이니셜이다.

"캐릭터들이 저를 많이 닮아 있다고 늘 생각해요. 여자는 되게 좀 엉뚱한 모습이고 남자 캐릭터의 친근한 모습이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고양이 가필드의 게으른 모습조차 저랑 닮아 있어요."
 
일러스트만 하던 박 감독이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한 건 2017년이다. 박 감독은 "아직 많은 분이 제가 일러스트레이터인 것만 아시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걸 모른다"라며 "애니메이터로 아직 부족한 뜻이겠죠?"라고 했다. 이어 "제 유튜브 채널에 지속해서 영상을 올리고 있지만 1인 제작이라 매달 한두 개 밖에 업로드할 수밖에 없고 제 소재가 유행하고는 동떨어져 있긴 하다"며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계속 제작하는 이유는 제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감 시간 정해놓고 제작에 열중
 
 <모로코 쉐프샤오엔>의 한 장면

<모로코 쉐프샤오엔>의 한 장면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그는 구독자들에게 매달 15일마다 애니메이션을 올리겠다는 선언을 했을 정도로 스스로 마감 시간을 정해놓고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박 감독의 말처럼 그가 만든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사랑을 소재로 커플의 행복한 순간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 그래서 인지 "사람들이 힘들 때 힐링 하러 오는 채널이라고 한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그는 "살아가면서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고 제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따뜻한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D와 M 뿐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그의 팔로워 중 99% 외국인이라고 한다. 박 감독이 SNS에 자신의 작품 소개 글을 영어로 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15년 미국 크라우드펀딩업체 킥스타터에서 한 달 만에 13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으며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애초 목표액 1만 달러는 두 시간 만에 채웠다.

"댓글이나 메시지가 영어나 외국어로 주로 와요. 저 멀리 떨어져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고 좋은 말을 해 줄 때마다 감사해요."
 
그는 하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많다. 목표를 물었더니 여러 가지가 쏟아졌다. 그는 "내년에는 따뜻한 감성을 담은 쇼트 플랫폼(1분 이내 짧은 영상)을 제작해볼 계획"이라며 "작은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 요리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좀 더 먼 꿈은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어 OTT 서비스 등을 통해 선보이는 것이다. 
 
2분이 채 안 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주. 외주 등 주어진 업무까지 더하면 사실상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뭘 할 계획이냐는 말에 "집에 가서 일해야 한다"며 그는 자리를 떠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우리가 어딜 가든지 박다미 퍼엉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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