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선운사 꽃무릇
 선운사 꽃무릇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대문을 타고 오르던 콩줄기마다 하얀 콩꽃이 화들짝 일었다. 꽃 진 자리마다 길죽한 콩까투리가 매달리며 가을 수확을 예고한다. 태풍 지나간 들녘도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풍년을 예고한다. 

군산 문해 참관 여행, 지송회 모임, 2박 3일 캠핑까지 연달아 잡혀 난감했다. 하지만 모두 제치고 먼저 예약한 캠핑을 선택했다.

지난 9월 23일 오전 9시 고창 선운사로 향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운명의 꽃, 꽃무릇의 오열을 놓칠 수 없어서이다.

가는 도중 함평 천지 휴게소에서 점심으로 몽글몽글한 순두부 찌개를 먹고 선운사로 향했다. 1시 무렵, 선운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중이라 사람들이 없을 거란 생각을 여지없이 깨듯 주차장엔 관광차 및 승용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운사 입구를 꽃무릇이 별리의 붉은 오열로 채색하고 있다.
 선운사 입구를 꽃무릇이 별리의 붉은 오열로 채색하고 있다.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선운사 산책로 벤치에 앉아 함께 합류할 고모를 기다렸다. 피크를 지나 시들어가거나 관광객들에 밟혀 누운 꽃무릇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햇살 밝은 곳에는 별리의 서러움 토하는 꽃무릇의 오열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일까. 가을 햇살 내린 선운사 진입로는 붉디붉은 꽃무릇으로 덧칠되어 오는 이의 시선과 발목을 잡았다.

2시 조금 지나서야 도착한 고모와 선운사로 향했다. 꽃무릇 별리의 붉음에 가슴 저미며 가는 길, 간간이 떨어져 짓뭉개진 은행의 구린내가 감흥을 흐트려 놓기도 했지만 늘 찾는 선운사의 숲길은 애잔함 속의 편안함이 함께 하여 좋았다.

선운사에 도착하니 대웅전 보수공사 중 그 앞에 우뚝 세워진 목조 건축물에 시선이 갔다. '저게 무엇일까? 보수하는 대웅전 일부를 제작해 옮겨가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가까이 가보니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 한국건축기술인 양성사업단이 직접 제작한 대웅전 5번 기둥이었다. 못 하나 박지 않고도 나무와 나무가 서로 어긋나게 물리는 걸 보여준다. 

오후 4시가 되자 선운사를 벗어나 예약한 부안 고사포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은 예상을 뒤엎듯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야영장 앞 고사포 해변
 야영장 앞 고사포 해변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부안고사포 야영지는 오토 캠핑장으로 바다를 앞에 두고 소나무가 우거져 야영객들이 선호하는 도립야영지다. 전기시설은 물론이고 샤워시설, 화장실 등이 잘 갖춰져 편리한 곳인데도 하루 전기사용료 포함하여 만구천 원으로 가격까지 저렴하여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저녁은 가까운 수산물 회센터에서 광어회와 마트에서 누름육을 사와 간단하게 먹었다. 캠핑의 진수 모닥불로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텐트가 아닌 개조한 캠핑카 안은 텐트와 달리 초가을이어서인지 전기장판은 켜지 않고도 훈훈했다.

뒷날 아침은 너구리 라면으로 해장하고 근처 내소사로 향했다.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곳은 우리나라 7대 숲길에 들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높이 솟은 전나무 숲길이 일주문에서 피안교에 이르기까지 600미터 길이로 700여 그루가 심어져 걷는 동안 말간 공기에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고목 단풍의 숨고르기가 애잔하다
 고목 단풍의 숨고르기가 애잔하다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아직 가을색이 들어서지 않은 단풍나무 길에서 만난 고목의 애잔함이 자꾸만 발길을 붙들었다. 아래 부분은 속이 텅 비어버렸는데도 위는 녹음이 우거진 것을 보며 우리도 저 나무처럼 인생 길의 숨고르기는 몇 번이었을까, 하는 회한에 잠기었다.
 
내소사 천년송 할머니 느티나무
 내소사 천년송 할머니 느티나무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천왕문을 지나 내소사로 들어서니 천년송인 할머니 나무와 관음조가 단청을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대웅보전이 반겼다. 채색되지 않은 목조 건물의 오랜 세월이 전해졌다. 새기듯 조각된 꽃살문의 정교함이 오랜 시간 발목을 붙잡았다.

해마다 정월 보름에는 할머니 당산나무 앞에서 내소사 스님들이 제물을 준비하고 독경을 하며 입암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해방 전까지는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로 당산나무에 옷을 입히기도 했으나 지금은 인줄만 쳐놓고 제를 지내는데 인줄에 매달린 하트에는 뭇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숨고르기 나무 사이 뭇사람의 기원들
 숨고르기 나무 사이 뭇사람의 기원들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이 외에도 몸 벌려 숨고르기 중인 나무 사이에 넣어둔 염주와 꼬마 불상, 담 위 수북하게 쌓인 돌탑들, 널바위의 꼬마불상 주변에 던져진 동전, 삼층 석탑을 돌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간절한 염원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담 위 염원하는 돌탑들!
 담 위 염원하는 돌탑들!
ⓒ 염정금

관련사진보기


이런 내소사를 둘러보고 다시 고사포 야영지로 돌아와 마트에서 사온 삼겹살을 구워 먹고 뒷날은 문해수업이 있는 날이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간단한 칼국수 라면을 먹고 해남으로 향했다. 가는 길, 고즈넉함보다 꽃무릇의 별리와 목조 건물의 우수성, 숨고르기로 사는 고목의 힘겨움과 뭇사람들의 애틋한 염원 가득한 사찰 여행에서 엿본 것들을 되새김하며.

태그:#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