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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기자말]
골목에 들어 '힙(hip)하다'라는 말을 실감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추분(9월 23일)이 지난 계절, 어스름이 깔리자 골목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곳 특별메뉴인 노가리에 생맥주를 즐기려는 발길은 그렇게 늦은 밤까지 끊이지 않았다. 젊은이는 물론 중장년의 회사원들,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모든 연령층이 골목을 메우고 있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풍경이다.
 
을지OB베어가 있던 곳 앞이자, 뮌헨호프와 만선호프가 공유하는 골목의 밤 풍경. 맛과 멋으로 공간을 소비하려는 이들로 골목이 가득 차 있음.
▲ 밤 풍경 을지OB베어가 있던 곳 앞이자, 뮌헨호프와 만선호프가 공유하는 골목의 밤 풍경. 맛과 멋으로 공간을 소비하려는 이들로 골목이 가득 차 있음.
ⓒ 이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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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골목은 노란 간판의 '만선호프'가 점령한 모양새다. 가성비 좋단 말도 메아리처럼 들린다. 노가리를 제외한 안주 가격은 여느 생맥주 가게와 큰 차별성을 느낄 수 없었다.

더구나 골목은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쫓김을 당한 갈등 공간이었다. 맨 처음 자리 잡아 골목을 이뤄낸 '을지OB베어'는 철거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다른 가게가 차지했다. 상생을 외치며 벌이던 시민 연대의 문화행사도 멎었다. 생맥주를 즐기려는 발길은 여전하나, 뭔가 소중한 것을 앗긴 듯 밀려드는 허전함까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맛의 공간

음식으로 특화된 공간은 어느 도시든 찾아볼 수 있다. 신당동 떡볶이나 신림동 순대 등이 오랜 공간조직을 형성한 곳이고, 청진동 골목은 피맛골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 온 곳도 부지기수다. 을지로에는 골뱅이 골목과 노가리 골목이 있다.

이런 곳들은 유사한 형성 과정을 거친다. 맛집 하나가 생겨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이 퍼진다. 주변에 같은 업종이 모여든다. 장소기억이 만든 집적화다. 상도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율이 생겨난다. 장소기억은 매력이 커질수록 강한 구심력을 갖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골목은 늦은 밤까지 노가리와 생맥주를 즐기려는 발길이 이어짐.
▲ 늦은 밤 골목은 늦은 밤까지 노가리와 생맥주를 즐기려는 발길이 이어짐.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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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 대한 차별화가 경쟁으로 이어진다. 비법을 지키고 키워가려는 노력은 전쟁을 방불하나, 서로의 그것을 침해하는 행위를 범죄로 여긴다. 상생의 핵심이다. 아울러 맛 경쟁은 공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방어벽이기도 하다. 같은 업종이지만 획일화된 맛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본능처럼 터득하고 있다.

차별화 한 맛은 다양한 기호와 선호를 만족시키며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쌓여가는 시간과 함께 더 큰 명성을 얻어가는 바탕이다. 어느 한 가게의 명성과 노력이 시작일 수는 있으나, 절대적인 몫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어느 기능을 매개로 도시에 하나의 공간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일 뿐이다.

골목의 시작

노가리 골목도 을지OB베어 혼자 만든 곳은 아니다. 인쇄 골목 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어 낸 공간이다. 이 골목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을지OB베어의 생성과 성장, 변화도 순전히 이들 힘이었다. 납기에 허덕이며, 수십 년 이 공간이 숨 쉬게끔 발길을 보태준 노동자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가리 골목은 인쇄소 철커덕거리는 기계 소리와 노동자들의 땀이 함께여야 제맛이다.

1980년 OB맥주에서 프랜차이즈를 모집한다. 술과 안주를 표준·규격화하려는 시도다. 을지OB베어가 그해 12월 문을 연다. 하지만 주류회사는 술 이외 식품을 취급할 수 없었다. 을지OB베어는 부득이 안주류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최우선은 가격이었다. 당시 노가리는 가장 흔한 안주류 중 하나로 저렴한 가격에 소스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창업주는 술값 또한 저렴하게 책정하였다.
 
2022년 9월 현재, 다른 간판을 단 가게가 영업 중인 을지OB베어 자리.
▲ 을지OB베어 자리 2022년 9월 현재, 다른 간판을 단 가게가 영업 중인 을지OB베어 자리.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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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남짓 골목을 청소하며 인쇄 노동자들과 얼굴을 익힌다. 그들과 동질성을 보여주면서 눈높이를 맞춰간 것이다. 인쇄 노동자 발길이 이어졌다. 납기를 맞추느라 밤샘하고 퇴근 전 가볍게 생맥주와 노가리로 피로를 씻어낸다.

영업시간 또한 밤 10시를 넘기지 않았다. 다음날 근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다. 상생이 무엇인지 몸으로 실천한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를 이어가며 단골이 생겨났다. 20년 단골은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말이 회자했다. 그런 노력과 마음이 2대를 이어 42년 한자리를 지키게 만든 힘이었다.

1989년 을지OB베어 맞은 편에 '뮌헨호프'가 문을 연다. 개업 전, 을지OB베어에 가게를 열어도 되겠냐는 양해를 구한다. 골목은 이런 끈끈한 미덕을 가진 동질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이 골목이 유명하게 된 가장 근저에 깔린 정신은 배려와 동류의식, 주변 영세한 인쇄소와 공장, 상점과 공생하려는 마음이었다.

생맥주 열풍을 타고 골목에 그만그만한 가게들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을지OB베어와 뮌헨호프의 존재는 여러 생맥주 가게를 이 골목으로 끌어들인 힘이었다. 서울 중구청은 옥외 영업이 가능하도록 관련 조례까지 만들어 가며, 길에서 좌판을 벌여 영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노가리와 생맥주 골목은 입소문을 타고 대낮은 물론 늦은 밤까지 환히 불 밝힐 수 있었다.

다툼과 철거

2022년 4월 21일 새벽. 을지OB베어는 법원의 강제집행에 철거되고 만다. 가게를 비워달라는 소송에서 패소한 후 시도된 마지막 기습 철거였다. 2배의 임차료를 내겠다는 제안도, 새 임차인이 제시한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도 거부되었다.
 
하나의 간판이 두루 지배하고 있는 듯한 골목의 낮 풍경.
▲ 골목 단면 하나의 간판이 두루 지배하고 있는 듯한 골목의 낮 풍경.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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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노가리 골목에 입성한 만선호프는, 여러 가게를 차례로 인수해 나가며 그렇게 10여 곳으로 확장하였다. 올해 1월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가 입점한 건물 지분 62%를 확보한다.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한 시기다.

최초 명도소송은 2018년 9월 제기된다. 건물주가 건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싶다며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했던 을지OB베어가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에 선정된 직후다. 하지만 정부가 지정한 이런 보존 가치도, 임대차 관계는 물론 법적 소구(訴求)에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을지OB베어 2대 사장 부부께서 시민 연대와 함께 '골목 상생'을 외치며, 이곳을 찾는 분들께 올린 호소문. 계속 장사하면서 공간 및 고객과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절실함.
▲ 호소문 을지OB베어 2대 사장 부부께서 시민 연대와 함께 "골목 상생"을 외치며, 이곳을 찾는 분들께 올린 호소문. 계속 장사하면서 공간 및 고객과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절실함.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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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는 1, 2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가게를 비워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물론 협상도 있었으나, 그다지 실효적이지 못했다. 임차인의 비애다. 현재 을지OB베어가 있던 자리엔 새로운 가게가 입점해 있다. 상생하자며 시민 연대로 벌인 문화행사 흔적은 주변 건물 벽에 붙은 벽보로 남아, 이곳을 찾는 사람을 쓸쓸히 맞는다.

이 골목에서 다양한 맛의 노가리와 생맥주를 경험하고 싶다. 만선호프도 을지OB베어도, 또 다른 가게의 그 맛도 경험해보고 싶다. 이게 생맥주를 즐기는 사람의 기본 심리다. 하나의 간판이 골목을 석권한다면 과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고유 색깔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 골목에서 상생하자며 시민들이 들었던 문구에 답이 있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

맛과 장소기억

맛은 기억이다.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 또는 같이 한 사람을 자연스레 연상한다. 맛은 또한 장소이며 멋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만 음미할 수 있는 분위기와 맛은 자연스럽게 그 공간과 거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백 년 넘게 여전한 맛을 지키고 있는 '이문설렁탕'은 이런 장소기억의 대표적 사례다.

소위 '힙지로'로 떠오른 골목은 맛과 멋, 공간을 소비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좋은 현상이다.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는 징조다. 같은 업종은 가급 한 곳으로 모여야 한다. 모인 수만큼 맛은 각자의 개성과 비법을 갖춰야 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래야 더 건강하고 활기찬 공간구조로 커갈 수 있다.

골목을 떠나야만 했던 을지OB베어를 비롯한 여러 가게 맛은 이제 없다. 뮌헨호프마저 명보사거리 인근으로 이전 할 예정이다. 만선호프가 제공하는 천편일률적인 맛으론 절대 더 나은 장소기억을 생성해 낼 수 없다. 그 누가 맛과 멋으로 이 골목을 기억할 수 있을까.
 
골목 상생을 외치며 을지OB베어를 지켜내려 했던 시민 연대가 외친 흔적이, 골목 한쪽 건물 벽에 쓸쓸하게 남아 있음.
▲ 외침의 흔적 골목 상생을 외치며 을지OB베어를 지켜내려 했던 시민 연대가 외친 흔적이, 골목 한쪽 건물 벽에 쓸쓸하게 남아 있음.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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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가로수 길에서 내쫓김당한 소상공인을 생각한다. 백년가게이자 서울미래유산인 을지OB베어를 생각한다. 정부는 유무형으로 지키고 가꿔가야 할 가게라 지정하고서도, 알량하고 가혹한 상가 임대차법에 어떤 보호장치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바람에 소상공인의 손발이 이 순간에도 무수히 잘려 나가고 있다.

을지OB베어가 이럴진대 어느 임차인이 이 굴레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현실을 바꿔내지 못한다면, 백 년을 이어갈 가게는 허상이고 꿈일 수밖에 없다. 아니 당장 길거리에 내몰린다 해도 손쓸 방법이 없다. 아버지 손잡고 찾았던 오래된 가게는, 그래서 이젠 기억에서 지워버리거나 찾아갈 생각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황폐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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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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