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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일본 고베 북쪽 단바사사야마시(丹波篠山市) 후쿠이 부린지(豊林寺) 절에 있는 징용공 무덤을 찾았습니다. 이 절이 있는 단바사사야마시 둘레 산에서 1913년 망간이나 규석이 발견되어 1987년까지 채굴이 계속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반도에서 강제로 동원된 징용공 노동자들이 200명을 넘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단바사사야마시 부린지 절에 있는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무덤입니다. 돌 앞쪽에는 나무아미타불, 돌 왼쪽에는 조선 광산 순직자 영혼을 위해서, 오른쪽에는 순직자 이름 다케다 삼동, 우에노 삼랑, 가네모토 용호 등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바사사야마시 부린지 절에 있는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무덤입니다. 돌 앞쪽에는 나무아미타불, 돌 왼쪽에는 조선 광산 순직자 영혼을 위해서, 오른쪽에는 순직자 이름 다케다 삼동, 우에노 삼랑, 가네모토 용호 등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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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출신 징용공들은 해방 이후 대부분 한반도로 돌아갔지만 일부 노동자들은 그곳에 남아서 채광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채광 작업 중 낙반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은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현지에서 묻혀 무덤에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 물자 생산과 보급, 전쟁 수행 등 일손이 부족하자 조선반도 노동자를 강제로 데려와 일을 시켰습니다. 모두 합한 숫자가 840만 명이라고 합니다('[한일 수교와 미국의 압력] <1> 연재를 시작하며' 이재봉 참고). 일제 강점기 조선반도 출신 강제 징용 노동자들은 일본 북쪽 사할린, 북해도에서 남쪽 끝 오키나와까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출신 징용공들이 캐내던 규석 암석 덩어리를 단바사사야마시 오쿠라(小倉,こくら) 마을 공민관 앞에 역사적 기념물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출신 징용공들이 캐내던 규석 암석 덩어리를 단바사사야마시 오쿠라(小倉,こくら) 마을 공민관 앞에 역사적 기념물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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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석이나 망간은 전쟁 무기나 물자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재료입니다. 규석은 내화벽돌이나 거푸집을 만들 때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망간은 대포 등 전쟁 무기를 만들 때 쇠의 유연성이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필수품입니다.

이들 광물은 지하 암반에 들어있기 때문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캐내어야 합니다.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입니다. 이런 일은 일제 강점기 강제로 징용된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단바사사야마에서 강제 징용공들이 규석이나 망간을 캐면서 얼마나 죽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 때 200명이 넘는 사람이 일했다는 말로 보아 더 많았을 수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덤에 이름을 남긴 사람 셋은 해방 이후 작업을 하다가 죽었고, 마을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무덤을 남겨놓았습니다.
 
부린지(豊林寺) 절 앞에 세워놓은 안내판입니다. 절 본당 아래에 규석이나 망간을 캐던 곳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부린지(豊林寺) 절 앞에 세워놓은 안내판입니다. 절 본당 아래에 규석이나 망간을 캐던 곳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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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바사사야마는 간사이 지역 가운데입니다. 오사카, 교토, 고베가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는 산악 지역입니다. 산들 사이로 강이 흐르고, 강 둘레에 논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나는 굵고 검은콩은 특산 농산물입니다. 검은콩을 가공해서 만든 반찬이나 과자가 유명합니다.

바닷가에 형성된 오사카시나 고베시가 해발 20미터 안팎이고 단바사사야마시는 평지라도 해발 300미터 이상이며 둘레에는 700~800미터 높이의 산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산 사이 계곡에 자리잡은 마을들은 농사일로 생계를 이어가기 때문에 마을은 대부분 고령자들 차지입니다.
 
절 아래 쪽 규석이나 망간을 캐던 갱도 입구 부근은 대나무나 삼나무 숲이 우거져 발을 디딜 수조차 없습니다.
 절 아래 쪽 규석이나 망간을 캐던 갱도 입구 부근은 대나무나 삼나무 숲이 우거져 발을 디딜 수조차 없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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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아 이렇게 한적하고 인적이 줄어 소박한 마을 둘레에서 규석이나 망간을 캐던 광산이 있었고, 징용공들이 몇백 명씩 살면서 일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참고누리집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 2022.9.10. 幸長由子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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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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