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6 05:18최종 업데이트 22.10.06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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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지진으로 멕시코 중서부에 위치한 콜리마 주에서만 3500여 채의 가옥이 파손되었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지진이닷!"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대면 회의 중이던 동료들 중 몇 명이 화면 너머에서 벌떡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고, 동시에 상대방의 화면들이 흔들리는가 싶었는데, 나도 흔들리고 있었다.

연구실을 나서는 순간 책들이 쏟아져 내렸고 건물 입구를 빠져나갈 때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졌다. 건물 밖으로 나섬과 동시에 건물 옥상에서 엄청난 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어 대형 물탱크가 떨어졌다. 내 바로 옆으로.
 

지난 9월 19일 규모 7.7 강진에 이은 여진으로 멕시코 중서부 주 콜리마 주에서만 3500채의 가옥이 파손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집 문에 붙은 VIVIENDA CENSADA 스티커는 정부 감리 기관에 의해 진단이 완료된 가옥을 의미한다. 연방정부는 타격이 컸던 콜리마 주 전체를 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파손된 가옥에 대한 보수와 보상을 약속했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지진이다!... 강도 7.7

반사적으로 주차장 옆 집합점(Punto de Reunión)으로 뛰었다. 지진을 대비하여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그 여파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는 지점 바닥에 초록색으로 그려 놓은 표식이다. 동료들 서로가 이름을 불러가며 혹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바로 옆 주차장을 보니 차들이 서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고 있었고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나무 두 그루 역시 가까워졌다 멀어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흔들림도 인지하였다. 다만, 이 흔들림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비현실적이었다.
 

불의 고리 화산대에 위치한 멕시코의 경우 학교를 비롯한 각 기관 건물과 사설 건물에는 반드시 '집합점 Punto de reunion'을 표시하여 지진에 대비토록 하고 있다. 집합점이 표시되는 지점은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곳으로 정해진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강도 7.7의 지진은 도로 곳곳에 균열을 가져왔다. 그간 강진을 경험해본 사람들에 의하면 지진이 발생할 때 도로들이 파도처럼 요동을 쳐 앞 뒤 차들끼리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바로 앞에 있던 차가 순식간에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는 현상이 반복되기도 한다고 한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나중에 보니 2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그 순간은 두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눈앞에서 세상이 꺼질 것 같은 흔들림을 보면서 놀라움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들이 마구 뒤섞였다. 그 와중에 핸드폰을 들고 나오지 않는 것이 후회되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세상의 흔들림이 멎자 핸드폰을 들고 나온 동료들은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불통이었다. 전화도, 인터넷도, 전기도 모두 나가버린 상황이었다. 가족, 특히 어린 자녀와 노부모가 있는 동료들은 쉬지 않고 통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모든 통신이 불통이었다. 일부 동료들이 차를 가지고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하자 또 다른 동료들이 말리고 나섰다. 지금 나가봐야 도로가 아수라장일 것이고 신호등도 모두 점멸된 상황일 테니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일부 동료들은 걸어서 라도 노부모님이나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집합점에 모인 채 통신이 연결되길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전기가 들어오고 불완전하나마 인터넷 신호가 잡히면서 누군가 강도 7.7 규모의 지진이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곧 전화도 신호가 잡혔다.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책들이 쏟아져 엉망이었다. 다행히 책상 위 컴퓨터는 무사했다. 연구실 전원을 차단하고 간단한 소지품을 챙기고 벽에 걸린 액자들을 떼 책상 위에 엎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1985·2017년 대지진과 같은 날 7.7 강진 발생한 멕시코 9월 19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시민들이 지진 경보가 울리자 휴대전화 등으로 지진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멕시코는 1985년과 2017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9월 19일 매년 지진 훈련을 하는데, 이날 지진 대피 훈련 얼마 후 규모 7.7 강진이 발생했다. ⓒ EPA=연합뉴스

 
어렵게 이웃과 통화가 되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뒷마당에 세워 둔 가스통이었다. 흔들리거나 쓰러졌다면 연결된 배관에 균열이 생겼을 것이다. 마침 인근 도시에 나갔던 옆집 할아버지도 막 집으로 돌아오신 터였다. 오시던 중 타이어가 터진 것처럼 차가 한 쪽으로 쏠리더니 갑자기 길이 파도처럼 요동치고 앞에 달리던 차가 보였다 안보였다 반복하여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기다려 겨우 집으로 오시는 길이라 했다. 다행히 우리 집도 무너진 곳 없이 멀쩡하고 가스통도 잘 있다고 소식을 전해주셨다. 혹여 개가 놀랐을 것 같아 서둘러 빵을 한 덩어리 먹였다고도 하셨다. 사실, 그 때만 해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시설 파손이 심각한 편이다. 9월 19일 지진 발생 후 수업이 전면 중단됐다. 10월 3일 재개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보수가 진행 중이어서 정상 수업은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진과 함께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놀라 집을 뛰쳐나갔고 이후 집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우리 과에도 지진 이후 수많은 개들이 찾아와 눌러 앉았다. 사진에 있는 개도, 지진과 함께 흘러 들어온 개다. 하여 이름이 '지진'이다. ⓒ 림수진

 
여진, 또 여진

지진이 나고 두 시간 정도 지나면서 도로의 혼잡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 같아 귀가를 선택했다. 중간에 엄청난 혼잡이 있었지만 무사히 마을로 돌아왔고 집에 닿기 전 빵집에 들렀다. 혹시 여진이 계속된다면 당분간 빵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이른 시간인데도 빵집 진열대가 텅 비어 있었다. 혹시 지진으로 다 쏟아졌나 생각하는데, 지진이 나자마자 빵이 다 팔려버렸다고 했다.

아, 맞다. 멕시코 사람들은 크게 놀라면 일단 빵을 먹는다. 놀란 가슴에 무슨 맛이 있을까 마는, 욱여넣듯이 입으로 빵부터 밀어 넣는다. 놀라는 순간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들이 과하게 분비되고 혈당과 인슐린도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이 때 빵을 먹으면 날뛰던 수치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특히 혈당과 인슐린 조합에서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멕시코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로운 민간요법' 축에 충분히 들 만하다. 놀랐을 때 당장 빵을 먹지 않으면 당뇨에 걸리거나 시각장애가 발생한다는 믿음 또한 확고하다.

빵을 사지 못한 채 빵집을 나와 은행으로 갔다. 일단 조금이라도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은행 문이 닫혀 있었다. 통신과 전기가 원활치 않은 상황임이 다시 한 번 실감되었다. 마을 대부분 가게들이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집으로 올라와 쏟아진 물건들을 대충 정리하고 지진배낭을 꾸렸다.
 

9월 19일 지진으로 주정부 청사 건물도 많은 곳이 손상되었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마을 이웃들이 서로 모여 있는 것이 낫겠다고 소식을 전해와 저녁에 이웃집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모두가 지진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집이 흔들리면서 세탁 중이던 세탁기 안에서 비누 거품과 함께 물이 튀어나오고 화장실 변기 물도 바깥으로 쏟아졌다고 하니 그제야 우리 집 개 물통의 물이 확연히 줄어든 까닭이 이해가 되었다. 지진에 놀란 개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을 마신 줄 알았는데 땅이 흔들리면서 커다란 양동이 안에 있던 물이 출렁거리다 쏟아져 버린 것이다.

늦은 밤까지 서로 놀란 마음을 달래다 집으로 돌아와 여진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새벽녘 누군가 창을 심하게 두드리는 것 같아 잠에서 깼다. 다시, 집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창과 벽에서 콰르르륵~~ 자갈 굴러다니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창과 벽이 틀어지며 우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다. 6.9 규모의 여진이었다.
 

지진과 함께 고속도로에 수많은 바위들이 쏟아졌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병원이라고 지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진과 여진으로 병원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지진 당일 라디오 방송과 SNS를 통해 병원 환자들을 위한 천막 지원에 대한 요청이 쇄도했다. ⓒ Colima Digital 페이스북

 
이후로도 크고 작은 여진은 계속되었다. 하필, 제법 큰 규모의 여진들은 꼭 새벽에 찾아오는 통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분명히 불안하고 피곤한 상황이었으나, 이곳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작금의 상황들을 유쾌함과 해학으로 버무려 받아쳤다. 새벽녘 놀라 집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돌아오는 길엔 늘 깔깔거림이 있었다.

9.19마다 큰 지진이

사실, 멕시코 사람들은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강하다. 특히 1985년 지진은 멕시코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아픔으로 남아 있는데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만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강도 8.1의 지진은 수도 멕시코시티뿐 아니라 멕시코 중서부 전역을 흔들었다.

그 해 9월 19일 아침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모두가 출근 혹은 등교 준비로 분주할 때 그들의 온 세상이 흔들렸고 고층 건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묻혔다. 당시 멕시코는 지진을 대비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구조 또한 체계적일 수 없었다. 결국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구조했다. 대학교를 비롯한 모든 학교들이 전체 휴교령을 내리고 이웃 구조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해 지진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전 세계에서 구호품이 답지하였는데 대한민국에서 텐트가 도착했다고 마을 사람들 일부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스위스에선 노란치즈가 도착했는데 맛이 희한하여 먹기가 참 고약스러웠다고 하고 유럽 어느 나라에선 쿠키를 보냈다 하고 캐나다에선 사탕을 보냈다고도 하여 그 때 마을 사람들이 생전 처음 나라 밖에서 온 별 희한한 것들을 다 먹어 봤다는 집단 기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멕시코 연방정부 행정부 이하 관계부처가 주관한 2022년 9월 19일 전국 지진대피 모의훈련의 시나리오가 적힌 포스터다. 멕시코 관계부처는 이 포스터와 함께 시민들의 훈련 참여를 독려한다. 훈련을 위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간은 당일 9월 19일 오후 12시 19분, 지진 발생 장소는 멕시코 태평양 연안, 규모는 8.1의 강진. 공교롭게도 모의훈련이 끝난 직후 훈련 시나리오와 거의 같은 지역에서 당일 13시 05분 7.7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 멕시코 연방정부 행정부

 
다시 이곳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각인시킨 것은 2017년 지진이다. 공교롭게도 1985년 지진이 있었던 날과 같은 9월 19일이었고 마침 1985년 지진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지진대피 모의훈련을 한 직후였다. 지진경보가 울렸지만, 사람들은 모의훈련 경보의 오작동이라고 생각하여 대피가 늦었다. 고층건물이 많은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369명의 사망자 중 상당수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 2022년 9월 19일, 역시나 1985년과 2017년의 9월 19일 지진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지진대피 모의 훈련을 마친 직후 세상이 흔들렸다. 멕시코 역사상 가장 강했던 세 번의 지진이 모두 9월 19일에 발생했다. 그것도 지난 지진을 상기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대피 훈련을 한 후 불과 3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만한데, 의외로 쿨하다.
 

지진대피 모의훈련을 마친 직후 실제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 대피 모의 훈련에 기재된 진앙과 거의 같은 장소였다. ⓒ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지진연구소

 
4900회의 여진... 메멘토 모리

간 밤 여진이 있는 날이면 이른 아침 만나는 사람들마다 지난밤을 어찌 '즐기셨냐'고 안부를 묻는다. 대학교 이하 초중고등학교 건물들이 타격을 입으면서 수업이 중단되었지만 친목과 파티는 중단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소 옷장 깊이 아껴 둔 옷을 기꺼이 꺼내 입고 춤을 추고 가족 혹은 친구들을 만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땅이 마르는 건기를 기다리며 고이 보관했던 새 신을 여전한 우기 중의 진창길에 덜컥 꺼내 신기도 한다. 지금 잘 입고 잘 먹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이 웃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우리 마을 사람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다.

아, 이쯤 되면 혹시 단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와중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진은 그간 두루뭉술했던 죽음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상기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떨어지는 물탱크에 깔릴 뻔했던 순간, 요동치는 계단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차라리 죽으리라 망연했던 순간, 떨어져 있던 두 나무가 서로 엉겨 붙는 것을 보았던 순간, 파도처럼 출렁이는 아스팔트 위에서 내 맘대로 제어되지 않는 차에 갇혔던 순간들이 우리 코앞에 죽음을 바짝 들이밀었다.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았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삶은 좀 더 가벼워지고 유쾌해졌음이 분명하다.
 

지진과 여진이 이어지는 와중이나, 사람들은 더 많이 모이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즐긴다. 우리 마을에서도 연일 파티의 연속이다. 파티의 이유는, 지금 현재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 림수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죽음에 관한 이들 속마음의 슬픔 혹은 두려움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으나 그간 내가 생각하던 죽음과 분명 다르다. 영화 <코코>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죽음이 만연한 곳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2022년 9월 19일 규모 7.7도의 지진 후 보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4900회를 넘어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의 삶 역시 여전히 계속된다. 조금 더 많이 웃고, 조금 더 많이 만나고, 조금 더 많이 베풀면서. 시스템에 기대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기대하면서,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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