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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누군가가 알아듣기 쉽게 써야 한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공언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쉽게' 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 물음에 '외국인이 알아들을 정도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이 보도를 기획한다. 공공 기관에서 나온 각종 안내문을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며, 쉬운 우리말 찾기에 나선다.[기자말]
국립국어원이 2019년에 내놓은 중앙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 보고서에는 핵심 정보를 적절한 양으로 제공하는지, 각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거나 짧지 않고 적당한지, 글씨체와 크기, 여백이 적절하여 보기에 편리한지 등을 묻는 문항이 눈에 띈다. 이 기준들은 공공언어 생산자가 아니라 공공언어를 읽는 국민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어서 더욱 적절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 연구의 주거 분야 첫 번째 공문서 2022년 7월 행복주택 예비입주자 통합 정례 모집 사전 안내에 위의 평가 기준을 들이대면 썩 좋은 점수를 받을 순 없을 듯하다. 한눈에 정보를 담기에는 지나치게 긴 문장이 여럿 있어서다.
 
주거 분야 첫 번째 공문서 '2022년 7월 행복주택 예비입주자 통합 정례모집 사전 안내'.
 주거 분야 첫 번째 공문서 '2022년 7월 행복주택 예비입주자 통합 정례모집 사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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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예정되어 있는 LH 행복주택 예비 입주자 통합 정례 모집 관련 자격 및 모집단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사전 안내합니다'란 표현은 하나의 문장에 두 가지 내용을 억지로 붙여 넣어 읽기에 어색하다.

이런 경우 간결한 구조로 문장을 나눠 쓰면 자연스럽게 내용을 연결할 수 있다. 'LH 행복주택 예비 입주자 통합 정례 모집이 2022년 7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입주 자격 및 모집 단지에 대한 정보를 다음과 같이 안내합니다'라고 쓰면 훨씬 읽기가 편하다.

길게 쓰인 문장은 대부분 이중 수식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런 구조는 문장 성분 간의 호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읽을 때 어색하다. '대학생: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다음 학기에 입·복학 예정인 혼인 중이 아닌 무주택자'란 대목에서도 ~인이란 수식 구조를 없애고 연결 어미를 써서 각 내용을 잇는 것이 덜 낯설다.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다음 학기에 입학 또는 복학할 예정이면서 혼인 중이 아닌 무주택자'로 고치면 더 낫다는 얘기다.

중국 출신의 이영영씨는 "지나치게 긴 문장을 보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어려운데 이럴 때 쉼표가 있으면 훨씬 쉽다. 그런데 공문서에는 이런 문장 부호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주거 분야 두 번째 공문서 '내집 마련 디딤돌 대출'
 주거 분야 두 번째 공문서 '내집 마련 디딤돌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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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문장 부호를 꼭 써야 하는 표현을 주거 분야 두 번째 공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 안내문을 살펴보면 '국토교통부주택도시보증공사한국주택금육공사주택도시기금수탁은행'이란 부분이 눈을 어지럽힌다.

대출을 위해 찾아가야 하는 접수 기관을 소개하면서 4개 기관의 이름을 촘촘히 붙여둔 것인데, 매우 불친절한 중얼거림이다. 이를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기금 수탁 은행'으로 쉼표를 이용해 띄어 써 주면 이용자가 어디로 가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대출 실행 후 1개월 이내 전입, 1년 안 실거주-단, 타당한 사유 확인 시 2개월 연장 가능, 위반 시 기한의 이익 상실 처리'라는 표현에선 안내할 내용을 적절히 띄어 적었으나, 문장 성분 간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한 조사나 어미가 지나치게 생략됐다. 스리랑카인 수랑가씨는 "이런 문장은 번역기에 입력해도 각 단어의 의미만 나와서 문장 자체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렵다"며 울상을 지었다.

위 문장을 '대출을 받은 후 1개월 안에 전입해야 하고 1년 안에 실제로 살아야 한다. 단, 타당한 이유가 확인되면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대출금을 만기일보다 빨리 갚아야 한다'로 풀어 쓰면 더 또렷한 안내가 된다. 적절한 조사와 어미를 사용해 완전한 문장 형식으로 쓰는 정성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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