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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네에 오래 살다 보면 친한 이웃들이 많이 생긴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일상을 나누기도 하고, 아이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며 서로 격하게 공감해 주기도 하고, 가끔 가족들 모두와 여행을 가기도 한다. 어쩌면 함께 사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더 잘 알아주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차곡차곡 정이 쌓이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돈독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이 여러 가지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못 참을 지경이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내 생각이 맞는지,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등등 너무 궁금해서 누군가와 말하고 싶을 때.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줄거리부터 대충 이야기를 해주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하는 것을 입이 아프도록 반복하게 되었다.

나에게 그 책은 여러 사람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기엔 몇 명의 사람에게 밖에 전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모임해보자는 사람은 1명도 없었지만
 
날씨가 좋은 날은 가끔 이렇게 야외에서도 모임을 갖는다
▲ 야외에서 책모임 날씨가 좋은 날은 가끔 이렇게 야외에서도 모임을 갖는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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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은 내가 오래도록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시도할 때마다 호응이 별로 없어서 의기소침하게 마음을 접곤 했었다. 마침, 내가 사는 '청소년수련관'에서 주최하는 강의를 함께 듣고 있는 이웃들이 있어서,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같이 모임 하나 만들어 볼까?"
"모임? 무슨 모임"
"책 모임 어때? 책 읽고 이야기하는 거"
"독서토론??"
"한 번 해보자~!"
"아... 그게... 좀..."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임을 해보자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왜 싫어?"
"너무 부담스러워. 책을 잘 읽을 자신도 없고, 말도 잘 못해!"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 책 읽고 그냥 이야기 나누는 거야. 우리가 수다 떠는 것하고 다르지 않아. 주제가 있는 수다라고 생각하면 돼~"
"나 이런 거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안해봐도 괜찮아. 우리 다 안 해봤잖아. 같이 해보자~"


이번에도 마음을 접으면 이제는 진짜 모임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작정하고 덤벼들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설득을 해서 무려 열 명이 모였고 무작정 모임을 시작했다. 말만 하고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유야무야 될 것 같아서 바로 날짜를 정하고 책도 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에 한 번 하고 싶었지만, 책을 읽는 게 쉬운 것 같아 보이면서도 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 달에 두 번 만나기로 했다. 시작을 하기까지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빠지는 사람이 없을 만큼 돈독한 모임이 되었다.

책을 잘 읽지 못한다고, 말도 잘 못한다고 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열심히 책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우리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공연이나 전시가 있을 때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열심히 읽은 책이 일 년이 지나니 20권이 넘었고, 이 년이 지나니 40권이 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모임을 잘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사이 다른 일이 생긴 사람들도 생기면서 모임에 소홀해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또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어서 모임 재정비를 하며 동네 독서 모임 2기를 시작한 게 올해 초이다.

이 모임 덕분에 책을 읽게 되었다는 한 이웃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읽은 책보다 모임을 하면서 읽은 책이 더 많다며 모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주 보여주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더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속마음을 다 이야기하니 스트레스가 없어서 행복해졌다고도 했다. 나 역시 혼자서 읽을 때와는 달리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대상이 생기니 책 읽기가 더 즐거워졌다.

그래서일까.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이대로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새로운 것을 통해 변화를 한 번쯤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가 읽었던 책들을 잘 정리해 두었는데, 그 자료들을 가지고 작은 전시회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동네에 전시할 곳을 찾아서, 우리가 그동안 어떤 책을 읽고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가족들과 이웃들이 와서 볼 수 있는 작은 전시회. 거창하거나 전문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함께 한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이야기를 꺼내니 처음 모임을 만들 때처럼 모두가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흔쾌히 해보자고 결정했다. 혹시 모르겠다. 그동안 꼭꼭 숨겨 두었던 재능을 이 기회에 다들 보여줄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마음만 모았을 뿐인데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게 우리는 지금 무척이나 설레고 기분이 좋다.

태그:#갱년기, #동네모임, #책읽기,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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