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8 05:12최종 업데이트 22.10.1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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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9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후보자 지명 소회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때 명성을 '날렸던' 이주호 장관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교육부 장관 및 교육부총리로 지명을 받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신자유주의자'에서 '정책 혁신가'(innovator)까지, 평가의 스펙트럼은 넓다. 모든 인물에게 공과가 있겠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그의 실패가 있다. 바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ational English Ability Test : NEAT)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시절 야심차게 추진했던 모든 교육 정책의 중심에는 항상 이주호 장관이 있었다. NEAT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은 독해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수능 영어에서도 독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 영어의 고질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영어 평가 영역을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로 확장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 NEAT였다.

쉽게 말해 한국형 토익이나 토플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궁극적으로 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를 NEAT 점수로 대체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한 바 있다.


컴퓨터 기반형 평가이니 시설과 환경에 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 사업에 국가 예산이 600억 원가량 투입되었으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 2013년 당시 응시자 목표를 2만 명으로 잡았는데 응시자가 한 해 5천 명도 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사업 폐기를 결정했다.

감사원에서 근무했던 채정관(2015)은 그의 논문에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정책이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는 NEAT 정책이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읽기 중심의 학교 영어교육에 변화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한 선행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 대입 반영의 시점을 너무 빨리 잡은 점, 정책 준비가 미흡했다는 점, 대입 제도와 유기적 결합이 되지 않아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이 나타난 점, 사교육 불안 요인이 확대된 점 등을 실패 요인으로 지적했다.

특히 정책 추진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지적되었으나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점도 실패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공교육에서 보장하는 제한된 영어교육 시수로 말하기·듣기·읽기·쓰기까지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습에 필요한 절대 시간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영어 시수만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영어 교육과정과 수업이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여러 제약 요인이 존재한다.

특히 평가에서 요구하는 수준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빈틈을 사교육이 재빠르게 채울 가능성이 크다. NEAT 출발엔 평가 방식을 건드려 교육과정과 수업을 바꾸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NEAT 평가를 통해 교육과정과 수업을 과감하고 빠르게 바꾸려고 했던 숨은 이상에 비해 현실의 간극과 괴리는 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NEAT 정책이 낳을 여러 문제점이라든지 대안 등이 추진 과정에서 계속 제시되었는데 귀를 닫았다는 점이다. 선한 의도를 갖지 않은 정책은 없지만, 그 의도대로 열매를 맺은 정책도 많지 않다. 정부 부처와 교육청은 수많은 정책과 사업을 개발하고 시행하지만 성공만을 부각할 뿐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NEAT 정책의 실패와 과오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NEAT 정책을 추진할 때 연구비·프로그램· 시스템 구축· 홍보· 연수· 문항 개발 등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교사들은 적지 않은 연수를 받았다. 하지만 전면 백지화되면서 매몰 비용만 커졌다. 가히 교육계의 4대강 사업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데 과연 누가 그 책임을 졌을까? 이주호 장관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일말의 책임 의식이 있을까?

경기도교육감의 IB 교육과정은 다를까

이러한 모습은 그가 추진했던 자사고 정책에도 나타났다. 그는 고교 평준화를 기점으로 관치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진단했다. 자율과 경쟁의 가치를 구현한 자사고가 공교육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자사고는 기존 명문학교의 가치와 철학을 그대로 이었을 뿐 교육과정에 과감한 실험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고교 생태계에 어려움을 가중했다.

자사고가 일반고에 얼마나 많은 자극을 주었을까? 오히려 일반고의 슬럼화 현상을 심화했을 뿐이다. 조건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실행되는 학교 간 경쟁이 공교육의 전체 변화에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일부 자사고에서 교육 과정과 프로그램에 의미있는 변화를 주었다고 해도 비교적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선발 효과를 가진 학교라는 점에서 그 실천의 노력과 의미를 일반고가 받아들이고 그것을 확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인수위원회에서 만든 백서를 보면 몇 가지 강조하는 키워드가 보인다. 첫째는 전임 교육감 흔적 지우기, 둘째는 미래교육과 AI, 에듀테크,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국제 바칼로레아, 1968년 비영리 교육재단인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에서 개발하여 운영하는 국제 표준 교육과정으로, 교과서 중심이 아닌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프로젝트 형식의 교육과정이다), 셋째는 기초·기본학력이다.

새로 당선된 교육감일수록 전임 교육감 흔적 지우기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예컨대, 임태희 경기교육감에게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 민주시민교육 등은 금기시된다. 그러면서 정책 취지상으로는 전임 진보 교육감들의 정책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IB 프로그램만 강조한다. 모순적이고 자기편의적이다.

정원미(2020)의 연구를 보면 IB 교육과정과 혁신학교의 지향점과 실천 양상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교육과정의 자유도와 평가의 타당도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기제 등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가 IB를 참고할 수 있지만 그것의 전면화와 일반화는 한국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IB는 논·서술형 체제로 이루어지는데 상대평가를 바탕으로 변별력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우리 풍토와 상황에서는 그 접목이 쉽지 않다.

당장 논·서술형 평가나 수행평가, 과정평가를 강화하려고 해도 그 결과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강하게 '클레임'을 걸기 시작한다면 일선의 교사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무한대의 감정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학생 간 변별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5지 선다형 지필고사 비중을 높이게 만든다.

그러니 국외 대학 진출을 목적으로는 IB 활성화가 가능할지 몰라도, 수능 중심의 대입 체제에서는 그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IB 시범학교에서 의미있는 실천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일반학교로 확산되기는 매우 어렵다. IB 프로그램은 특별식이지 우리의 주식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한 연수에 참여하고, 교육의 정체성 논란을 감수하면서 IB 도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일부 연구시범학교 수준에서 IB 프로그램을 참고하고 연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 너무 열광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모든 교육청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교육감이 속해있는 전체 지역 모든 학교의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질 제고이다. 이러한 노력이 그동안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혁신교육의 핵심 목표는 질 높은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실현이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10년간 혁신교육의 이름으로 교육과정·수업·평가에 관한 담론과 실천이 풍성했다.

이러한 노력을 더 깊고 풍성하게 진행한다면 IB를 우리나라 교사들이 넘어서지 못할까? 교육과정·수업·평가에 관한 그동안의 담론과 실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교사와 학교 간 편차의 문제를 해소하고 질적 고도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향점이 같다면 조건과 기제가 다른 외국의 사례를 무조건 따라하기보다 우리의 현실과 조건에서 발전시켜온 길에 답이 있지 않을까?

제2, 제3의 NEAT 실패 

교육청에 필요한 것은 특정 정책의 성과와 과제에 대한 진단과 평가이다. 이를 바탕으로 장점은 계승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확장·유지·수정·폐지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의 과정을 거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각 교육청을 보면 이러한 과정이 거의 없다. 전임 교육감이 했거나 이념 노선이 다른 교육감의 정책이라면 우선 폐기 대상으로 분류한다. 모든 것을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임 교육감 흔적 지우기가 교육감의 정책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위험성에 대해서 여러 단위에서 지적하고 있으나 일부 교육감에는 쇠귀에 경 읽기이다. NEAT 정책의 우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적했으나 귀담지 않아 실패로 이어졌던 선례를 교육감들이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모든 교육감들이 말하는 미래교육은 무엇인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충분한 학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청마다 '미래교육'을 언급한다. 각 교육감직인수위 백서에 나타난 맥락을 보면 AI라든지 에듀테크를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미래교육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며 무엇보다 AI 만능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AI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기술의 도구적 활용 이면에 나타난 불평등의 심화, 일자리의 상실, 정보 격차, 거짓 정보의 남용, 빅브라더에 의한 정보 통제 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7.6 xanadu@yna.co.kr ⓒ 연합뉴스

 
여기에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생태 전환의 삶과 관점과 태도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변혁적 시민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는 민주시민교육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은 민주시민교육을 진보 진영의 언어로 규정하고 그 용어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AI를 우선 적용해야 할 영역은 교육청의 아날로그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정체계이다. 조직은 비대해지고 있는데 학교와 지역에서 체감하는 행정 서비스의 질은 예전의 관료주의 체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의 인사·조직·행정·감사 시스템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교육의 난제와 과제에 눈감으면서 미래교육과 AI, IB로 퉁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현 추세로 가면 제2, 제3의 NEAT 사태가 교육청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 필자 소개: 김성천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학습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공저), <소환된 미래교육>(공저), <교육자치시대의 인사제도혁신>(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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