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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엔 한류열풍이 어마어마합니다. 요즘엔 한류 없는 나라가 없다고도 하지만 베트남은 그중에서도 단연 손꼽힐만한 나라입니다. BTS로 대표되는 아이돌 그룹과 한국산 영화와 드라마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의 지도자로 꼽히는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베트남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박충서 사격대표팀 감독 등 베트남에서 제 소명을 다하는 한국인들도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과 해소되지 못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의 기록들, 심지어는 현 정부가 베트남 현지에서 민간인 학살 관련 소송을 우려해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강구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단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애정에 과분한 구석도 없지 않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어찌됐든 베트남은 한류의 적극적인 소비자입니다. 한국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한국 콘텐츠도 나오는 족족 인기를 끕니다. 이것이 선순환을 일으키며 한국의 희석소주와 막걸리가 상대적으로 질 좋은 베트남의 소주며 맥주를 이겨내는 진풍경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삼성은 베트남 내 최대 투자사 지위를 공고히 하고 CGV와 롯데시네마는 베트남 주요 거점을 휘어잡은 대표 극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저 문화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가 있겠습니다.
 
포스터
▲ 육사오 포스터
ⓒ 씨나몬(주)홈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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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서 인기몰이 <육사오>

현재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한국영화는 단연 <육사오>입니다. 현지 물가대비 영화 값이 비싼 데도 불구하고 <육사오>는 관객수 200만 명에 다가서는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역대 베트남 내 한국영화 흥행 1위 <반도>를 1주일 만에 넘어선 기록이죠. 현지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단 점을 고려하면 이 기록 역시 깨지는 건 시간문제일 듯합니다.

<육사오>의 흥행을 분석하는 많은 평가가 있지만 개중에서 설득력 있는 건 역시 한국에 대한 관심입니다.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저 신기함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교와 한자를 받아들이고 외세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다는 등의 유사성은 두 나라 사이에 좀 더 깊은 문화적 이해를 가능케 합니다.

<육사오>가 남북 군인들의 코믹한 소동을 다뤘다는 점에 비춰보면 불과 반세기 전 전쟁을 겪은 베트남인들에게 호소점이 작지 않을 테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D.P>가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 영상물이 좋은 평가만 듣는 건 아닙니다. <수리남> 사태로 한국 작품들이 극중에서 외국을 부적절하게 취급하는 게 문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는 베트남에 대해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그때마다 결코 작지 않은 반감을 낳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범죄도시 2>가 베트남 최대도시 호찌민시티를 관광객 납치와 살인이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그려 상영금지 처분을 받은 게 대표적입니다.
 
베트남 CGV에 내걸려 있는 한국영화 포스터
▲ 베트남 베트남 CGV에 내걸려 있는 한국영화 포스터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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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치안 좋은 나라인데"

지난달 뀌 년(Quy Nhơn)에서 만난 한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동남아를 배경으로 한 한국 블록버스터들이 현지를 너무 왜곡해 그린다며 분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해 봉준호, 박찬욱 감독 작품을 챙겨본다는 그는 <범죄도시 2>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베트남을 너무 무법지대로 그려 상영이 안 되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지요.

그는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국가 중 하나라며 밤 늦은 시각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지 않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베트남 역사를 공부하거나 여행해본 이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지만 세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 나라만큼 외부인에게 열려 있고 치안이 안정된 곳이 드문 건 사실이지요.

이에 앞서 2020년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도 태국을 인신매매며 장기밀매 조직이 득세하고 경찰이 부패한 나라로 그려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선 이와 관련한 합당한 자료가 전혀 제시되지 않아 태국인들의 분노를 돋우었죠. 이를 통해 보면 한국 영화계가 남미나 동남아시아 등지를 묘사하는데 있어 부정적 편견을 갖고 있다고 볼 여지가 적지 않습니다.
 
포스터
▲ 작은 아씨들 포스터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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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 20명을 죽였다" 어떻게 그런 대사를

얼마 전엔 더 심각한 문제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던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 인물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사를 한 것을 문제 삼아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퇴출된 것입니다.

드라마 8화에서 한 인물이 "한국 군인은 1인당 베트콩 20명을 죽였다", "한국 군인은 베트남전 영웅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영됐습니다. 극중 인물이 곧 작품과 그 작품의 의미를 말하지는 않는다 해도 불과 반세기 전 전쟁을 치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드라마에선 부적절한 장면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참전한 부적절한 개입이었단 점, 한국이 미국의 요청도 없는 상태에서 자원해 정예 전투부대를 파견했다는 점, 그로부터 5000명이 넘는 국군이 사망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군을 죽였다는 점, 여전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는 민간인 학살 의혹이 여러 건이라는 점, 현 행정부 아래 베트남 현지에서 민간인 학살 관련 법적 대응을 차단하려는 조치가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장면을 그대로 베트남에 방송하려 한 시도가 무참하기까지 합니다.

불과 7년 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버드맨> 한국 상영을 앞두고 영화를 보지 말자는 의견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문제가 된 장면은 엠마 스톤이 연기한 캐릭터가 동양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온통 OOO 김치냄새야(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가게의 주인이 한국인이란 언급도 없지만 김치를 통해 비하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김치를 부정적으로 언급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발언이 재활원에서 갓 나온 약물중독자 샘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사였을 뿐 아니라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서사와도 특별한 연관성이 없었는데도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에 혹평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수년을 이어가며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전쟁은 어떻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베트남, #작은 아씨들, #범죄도시 2, #육사오, #김작가 여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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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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