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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내가 낳은 아들인데도 그 속을 모르겠어요. 저랑 달라도 너무 달라."
"엄마만 그런 줄 알아. 나도 그래. 답답해 죽겠어."


학업 문제로 상담실을 찾은 모자는 내내 티격태격했다. 그 당시 담당 상담자로서 무척 난감했다. 표면적인 학업 부진 이유는 집중력 부족이었지만, 심리 검사와 면담을 통해 이면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주요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차분하고, 계획적이며 느긋한 성격임에 반해 아이는 활발하고, 충동적이며 급한 성격이었다. 그러니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학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통상 학업 문제는 그 자체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깊이 들어가면 심리적인 부분이 더 큰 문제임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 당시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었다. 사람마다 당연히 다르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식으로 틈을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과서적인 조언을 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다시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그 차이로 인해서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헤아리는 노력을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차이를 인정하기
 
아이의 긍정적인면을 바라보고 지지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 아이의 긍정적인면을 바라보고 지지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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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조건 부모 말을 따르던 전과 달리 지금은 취향이 생겼다. 그건 나와 맞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면서도 한편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분신처럼 무척 따랐던 아이였는데.

얼마 전 실시한 심리 검사 결과에서도 첫째와 나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나는 사람과 관계하는 것을 좋아하고,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어떤 일이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절차대로 진행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첫째는 내성적이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사색과 공상을 즐겨하며 계획보다는 닥치면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처음엔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정말 모르겠다'라며 사소한 일에도 대립했었다(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그나마 이제는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아니깐 조심하고 피하면서 아슬한 줄타기 중이다.

분명 아내와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임이 분명할 텐데 이렇게나 다르다니. 예전에 상담실에서 만난 어머니의 속 터지는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인제 와서 다시 반품할 수도 없고. 유명 연예인의 대다수 헤어지는 이유가 '성격 차이'라는 점이 그렇게 공감될 수가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부모님과 성격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학창 시절 운동을 했고, 직업군인 생활까지 했던 아버지는 강인함의 전형이었다. 특히 남자는 배포도 넓고, 당당하며 소위 남자다워야 한다는 도식이 있었다.

반면 나는 활달했지만, 행동은 소심한 면이 많았다. 누나들 사이에 커서 책과 음악도 좋아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내가 더 남자답게 행동하길 바랐지만 그럴수록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노력도 해보았지만 타고난 심성이 그렇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를 멀리하는 내가 보였다.

물론 지방 근무로 집에 자주 오지 못한 아버지가 그 빈자리를 채우려 내가 더 강한 모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음을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마냥 잔소리 같고 불편하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뒤 아버지와 단 둘이 술자리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나고 보니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었으면 둘 사이의 관계가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라 그랬으리라.

서로를 긍정하기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첫째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두 달 전부터 매주 가기로 약속했건만 피곤해서, 축구를 봐야 해서, 귀찮아서 등등 여러 핑계를 대며 빼먹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한 시간 뒤라는 단소 조항을 달았지만, 순순히 따라왔다.

시원한 가을 바람에 걷는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첫째도 한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가올 기말고사까지 향했다. 암기과목이 약하니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서 차근히 준비하면 어떠냐는 내 말에 역시나 본인이 알아서 닥치면 한다며 받아쳤다. 순간 저 밑에서 어떤 감정 하나가 쑥하고 올라왔지만 좋은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누그러뜨렸다.

그때 눈앞으로 건물 불빛에 비춘 천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와 첫째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 장면을 담았다. 많은 부분 취향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부자는 사진 찍기라는 공통의 취미가 있었다.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누가 더 잘 찍었는지 옥신각신했다.

'씩' 하고 웃는 첫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면 어떨까.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지적하며 은연중에 나의 틀에 꿰어 맞추려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좋은 면, 잘하는 점을 찾으려 노력하면 언젠간 아이 안에 긍정의 싹이 자라 꽃을 피우리라고. 아이가 어렸을 때 무한 긍정으로 품어주던 그때의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지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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