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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사람을 그리는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기자말]
전시 팸플릿에 <우주를 향하여>를 그렸다. ⓒ 오창환


문신(文信)은 1922년 1월 16일 일본 규슈의 탄광지대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올해 문신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를 개최한다. 전시는 지난 9월 1일부터 시작돼서 2023년 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다섯 살부터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에서 살던 문신은 1938년 열여섯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한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그는 마산에 터를 잡고 10여 차례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로서의 경력을 다져간다.

그런데 40에 가까운 나이인 1961년에 돌연 프랑스로 가서 약 20년간을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에 영구 귀국하여 마산에 정착하게 된다. (1965년에서 1967년까지 귀국하여 홍익대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파리의 토양과 공기 속에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길러진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미술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 파리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라브넬에서 약 3년간 고성(古城)을 수리하면서 목공, 석공, 미장 등의 일을 했다. 그리고 본인의 회화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이 무렵 그는 자연스럽게 추상의 세계로 진입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문신은 최소한의 조형 단위인 구(球) 또는 반구(半球)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 추상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 프랑스 남부 바르카레스 항구에서 열린 <국제 조각 심포지엄>에 출품한 13미터 높이의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은 문신이 조각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전시에 조각가로 초대받았고, 조각가로의 커리어를 쌓아나간다.

프랑스에 있는 <태양의 인간>은 우리가 보기 힘들지만, 그와 비슷하고도 더 큰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다. 잠실 올림픽 조각공원에는 191점의 조각 작품이 있는데, 그중에 문신의 작품 <올림픽 1988>이 있다. 높이 25미터, 무게 54톤의 거대한 작품으로 당시 금성전선 군포공장에서 40여 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100여 일에 걸쳐 제작한 대작이었다.

작가는 <태양의 인간>을 세울 때부터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작품을 구상했지만, 당시에는 통나무의 너비가 좁아 하나의 기둥으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18년이 지나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마침내 폭과 높이의 제한 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것이다.
 
전시장 전경. 현악기 모습의 조각과 뒤에 있는 문신 작가의 사진이 병치되니, 그라인더를 든 문신 작가가 마치 마에스트로처럼 보인다. ⓒ 오창환

대칭과 장인정신

문신 선생님이 파리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유럽지역이 앵포르멜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다. 우리의 짐작과 달리 추상미술은 삼각형, 사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성된 냉정하고도 이성적인 그림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보다 즉흥적이고 감정에 호소하는, 일정한 형태가 없는 추상 그림이 나타났는데, 그런 사조를 형태가 없다는 프랑스 말 '앵포르멜'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1960년대의 추상 미술운동도 앵포르멜 계열이다.

문신 작품은 자유로운 형태인 점에서 앵포르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대칭이다. 대칭은 앵포르멜과 달리 엄격한 계산에 의해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서 이성과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그의 대칭은 좌우 대칭일 뿐 아니라 앞뒤도 대칭이다. 대칭은 자연계에서 생명의 원리이기도 하다 곤충, 식물, 인체의 장기에서도 대칭이 나타나며 많은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에서 그런 것을 읽기도 한다.

문신은 스스로 고성 수리 과정에서 익힌 기술이 작품 제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는데, 목조각과 브론즈 그리고 스테인리스 조각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목조각을 할 때 본인이 직접 조각도를 들고 조각했음은 물론이고 브론즈 작품을 만들 때도 파리의 아틀리에에 소규모 제조 시설을 갖추고 장인의 도움을 받아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직접 참여해서 작품을 만들었으며 스테인리스 작품을 만들 때도 직접 그라인더로 표면을 갈아가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대형 조각을 만드는 경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조각가는 작은 모형만 만들고 실제 제작은 공장에 맞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신의 경우는 이례적인 것이고 그의 마감과 질감에 대한 집중은 대단한 것이다.

1992년 프랑스 정부는 세계 3대 조각 거장을 선정해서 전시를 했는데,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와 함께 문신을 선정한 것을 보면 세계 조각계에서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우주를 향하여

덕수궁의 가을은 아름답다. 지난 19일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으로 갔다. 이번 전시는 문신 탄생 백주년 기념전인 만큼 덕수궁 전관에 전시를 하고 있는데 작품의 양과 질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이다.

흔히 보기 힘든 문신의 회화 작품도 많이 있었는데, 화가로 활동을 하셨어도 좋은 작가가 되었을 듯하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초기 목조각 작품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전시 배치나 설명도 좋았지만 작품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좌우 대칭일 뿐 아니라 앞뒤도 대칭인데 과연 앞뒤를 어떻게 구별할까, 아니면 과연 앞뒤가 있기는 하는 걸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가님이 친절하게도 모든 작품에 오른쪽 다리 아래 서명을 남겨 놓으셨다. 이는 앞뒤가 확실히 있다는 뜻이고 큐레이터가 앞뒤 구분을 못해서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다.
 
미술관 계단에 앉아서 <우주를 향하여>(1985년 작)을 그렸다. 문신의 작품이야말로 우주에서 내려온 것 같다. ⓒ 오창환

이날 물감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전시장을 나오면서 보이는 문신 선생님의 작품 <우주를 향하여>를 보니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시 팸플릿을 펼쳐보니 파란 하늘과 흰 종이가 있는 면이 보이는데, 파란색은 우주를 향한 작가님의 염원이 담긴 것 같고 흰 종이는 우리의 현실인 것 같아서, 계단에 앉아서 전시 팜플릿에다 <우주를 향하여>를 만년필로 그렸다.

작품의 제목은 <우주를 향하여>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의 작품이야말로 우주에서 내려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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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신, #우주를향하여,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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