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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답하기 쉽지 않은 궁금증이 솟을 때가 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에 무얼 택할지, 사람의 본성은 선한지 악한지, 신은 과연 존재하는지... 일상의 어느 순간 이런 질문들을 맞닥뜨리면 잠시 고민해 보지만 명쾌한 답을 찾기란 요원하다. 이럴 때는 현자들의 지혜가 담긴 관련 책들을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문학계의 대가들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뛰어넘는 저명한 저작들을 연구하곤 했다.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싯 몸(1874~1965)도 그중 한 명이다. 10세 전에 부모를 잃고, 말 더듬는 버릇 때문에 어려서 자신감이 약했던 그는 삶과 예술에 관한 질문들에 일찍부터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문학은 물론 역사와 철학, 과학분야까지 온갖 책을 섭렵했고 오랜 시간 연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논지를 정리해 출간한 책이 바로 <서밍 업>이다.

<달과 6펜스> 작가의 회고록
 
<서밍 업>(절판)
 <서밍 업>(절판)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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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밍 업>은 서머싯 몸의 자전적 회고록으로 그의 주요 관심사에 따라 문장, 연극, 소설, 인생의 4파트로 나뉘어 있다. 네 분야 모두 수많은 대가들의 논리에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견주는 64세 저자의 완숙한 시점이 돋보인다. 또한 그의 희곡과 소설 속에서 암시하듯 지나갔던 아이디어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담겨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의 주요 논지들을 분야별로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문장'파트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좋겠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여겼던 저자는 문장과 문체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20세기 초 영국은 수식이 많은 화려한 문장이 유행이었는데, 서머싯 몸은 자신의 문체가 여러 면에서 빈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글을 잘 쓰기 위해 17~18세기 유명 문인들의 서적이나 성서를 필사하며 암기했고, 자기 문체의 장, 단점을 파악해 갔다.
 
"나는 서정성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어휘력이 부족하고 그것을 보강하려는 내 노력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비유의 능력도 없다. 독창적이면서도 멋진 비유가 떠오른 적이 거의 없다.... 반면에 나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녀서 남들이 놓치는 것들을 많이 포착한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명석한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나는 논리적인 감각을 갖고 있고, 어휘의 장려함과 기이함을 알아보는 감각은 없지만 그 소리에 대해서는 생생하게 알아본다."(45쪽)

유명 고전작가가 어휘가 부족하고 비유를 못해 고통스러웠다니! 그의 이런 솔직한 고백은 글쓰기에 자신 없는 독자들에게 공감이자 위로가 되며, 좋은 글을 향한 의지를 북돋울 수 있다. 자기 문체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서도 강점을 강화하여 개성을 살리겠다는 그의 태도가 유익한 참고가 된다.

그는 또한 문장이 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이 애매모호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의외로 분명하게 쓰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인데, 때로는 자기 생각을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구상해내지 못하는 작가의 지적능력 부족이나 게으름 때문이라고 한다.

또는 일부러 애매하게 표현하여 신비롭게 포장함으로써 누구나 그 의미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허세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글 쓰는 이에게 뜨끔한 일침이며 오늘날에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다.

매일 정해진 일정 시간 동안 글을 써내는 습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글쓰기 습관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타성에 젖는다 싶으면 언제든 글쓰기를 멈추고 과감하게 습관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글쓰기 습관의 중요성은 흔히 듣지만, 습관의 타성을 주의하는 경고는 신선해서 새겨듣게 되는 부분이다.

글쓰기 향한 서머싯 몸의 유익한 조언들

서머싯 몸은 생생한 대화체에 강해 희곡을 잘 쓰는 재주도 있었다. 그의 희곡들은 공연으로 다수 상영되며 그에게 충분한 재정적 여유를 안겨주었지만,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연극'편에는 이에 대한 그의 항변이 잘 드러나 있고, 결국 연출가와 뜻이 안 맞아 희곡을 접게 된 배경 설명 등도 담겨있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소설을 창작했는데, <인간의 굴레>나 <면도날> 같은 유명한 장편소설 외에도 총 90여 편의 단편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서밍 업>의 '소설'편에서는 다작을 한 작가로서 작가 직업의 장, 단점과 위험요소, 작가 개성의 중요성, 소설가의 다중적 면모 등 소설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소설'편에는 흥미롭게도 현대의 다른 소설가들이 떠오르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글쓰기는 만만해 보여서 누구든 어쩌다가 한 권은 쓸 수 있지만 두 번째는 대부분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은, 오래도록 링 위에 살아남는 자만이 진정한 작가라고 설파한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시킨다.

또한, 소설가는 내면을 괴롭히는 어떤 주제를 몸에서 제거하기 위해 창작을 하고 그 과정의 해방감에 만족한다는 부분은, 분명 김영하 산문집의 '자기 해방의 글쓰기'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 비슷한 아이디어들이 연결되는 재미가 있다.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한 '인생'편에는 저자가 무신론자가 된 경위에 이어 선함과 악함의 존재 이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 등을 다룬다. 고대부터 근 현대까지 철학과 사상을 꿰뚫은 후 다다르게 된 저자의 결론이 인상적이다. 인생의 본질적 문제들에 대해 그토록 깊이 매진했기에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공감을 얻으며 널리 읽히는 이유로 보인다.

<서밍 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책의 곳곳에 상당한 배경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셀 수 없이 인용하고 언급한 17세기~18세기 작가들과 칸트를 비롯한 유명 철학자들의 논리에 익숙할수록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배경지식이 좀 약해도 다행인 건 그때그때 번역자(이종인)의 자세한 주석이 저자의 논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다양한 경험에 지식과 사색의 통찰이 더해진 서머싯 몸의 생각들은 어렵게 취한 만큼 분명 뇌리에 오래 남는다.

예술과 인간의 본질에 호기심이 있는 독자라면 <서밍 업>을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힌트를 얻거나 지적 성장을 자극할 내용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서머싯 몸의 생애나 그의 작품들을 연구 중인 독자라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글쓰기에 관한 유익한 조언이 많으니 관련된 일을 하거나 잘 쓰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서밍 업>은 절판 도서(2022년 10월 기준)로 중고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태그:#서머싯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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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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