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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김용균들>은 권미정, 림보, 희음 세 명의 글쓴이가 함께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삶이 달라진”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 책 <김용균, 김용균들>(오월의 봄) 표지 <김용균, 김용균들>은 권미정, 림보, 희음 세 명의 글쓴이가 함께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삶이 달라진”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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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산업재해)로 사망하고, 10만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합니다."  - 8쪽
 
노동건강연대는 책 <2146, 529>(온다프레스)에서 2021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이 2,146명이라고 추정했다(10쪽). 각종 자료에 발표된 부고와 기사를 찾은 숫자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망 노동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가 828명이라고 발표했다(2022년 3월 15일 ''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 발표' 보도자료). 그 흔한 한 줄 애도와 추모의 말도 없이 숫자로 가득 찬 보도자료 첫 줄에는 '산재보험 적용 노동자 수' 대비 '산재 사망 노동자' 비율이 "역대 최저"라고 굵게 표시돼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3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산업 재해 사망자가 828명이라고 발표했다.
▲ 고용노동부 "2021년 산재 사망 현황 발표" 보도자료 고용노동부는 2022년 3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산업 재해 사망자가 828명이라고 발표했다.
ⓒ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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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사용한 언어를 보면, "산재는 …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구조와 권한의 문제"(책, 10쪽)라는 권미정 작가의 말이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산재'를 대하는 정부와 권력 기관의 태도, '사망한 노동자'를 단지 숫자로만 바라보는 비인간적이고 무례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김용균, 김용균들>에는 세 사람의 이야기와 삶이 담겨 있다. 김용균의 주검을 처음 찾아낸 발전 노동자 이인구씨,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김용균의 죽음을 알린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씨.
  
10월 19일 강릉에 있는 여러 노동 시민 사회 단체들이 함께 자리를 만든 작가 초청 ‘김용균, 김용균들, 강릉 책 이야기’ 모임이 열렸다. 50 여 명이 이야기를 나눴다.
▲ "김용균, 김용균들, 강릉 책 이야기" 모임 안내문 10월 19일 강릉에 있는 여러 노동 시민 사회 단체들이 함께 자리를 만든 작가 초청 ‘김용균, 김용균들, 강릉 책 이야기’ 모임이 열렸다. 50 여 명이 이야기를 나눴다.
ⓒ "김용균, 김용균들, 강릉 책 이야기"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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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 데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10월 19일 강릉에 있는 여러 노동 시민사회 단체들이 함께 자리를 만든 작가 초청 '김용균, 김용균들, 강릉 책 이야기' 때까지는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허사였다. 3부로 이루어진 책 가운데 1부도 채 끝내지 못하고 글쓴이들을 마주했다.

'강릉 책 이야기' 자리에서 사회자가 했던 "세월호를 다룬 책을 읽는 것처럼 힘들었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자꾸 외면하고 싶은 책이었다. 책을 쓴 사람들도 있는데, '김용균들'에서 '들'을 없애기 위해 고통을 안고 삶을 '싸움'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를 달래며 겨우 읽었다.
 
"[한국발전기술] 소장이 석탄 주머니, 톤백에 시신을 담아서 내리라고 했어요. 다른 직원들도 그 얘기 듣고 화가 많이 났죠. … 그래도 사람인데 어떻게 우리 동료를 석탄 주머니에 담아서 내리나요. 죽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야지, 어떻게 그래요." - 35쪽
 
동료 노동자 김용균의 주검을 새벽에 처음 찾아낸 발전 노동자 이인구씨의 말이다. 그는 산재 사망 사건을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이며, 동료를 잃은 노동자다.
"인구 씨처럼 산재사고로 동료를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 동료를 잃었다는 사실보다 '어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구조 과정에 더 큰 충격을 받는 이들이 많다." - 36쪽

회사는 사람보다 공장과 돈 걱정을 하고, 수사 기관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은 사람보다 행정 처리를 우선했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편안하고,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아직도 자책한다.
 
"인구 씨는 늘 김용균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왔고, 이 죽음의 원인을 밝힐 때까지 싸워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다잡아왔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 70쪽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까지 하는 이들이 있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자식의 차가운 주검을 확인한 후 "울다 지쳐 젖은 솜 같아진 몸을 간신히 이끌고" 온 김용균씨 부모에게 "하청회사 이사와 또 다른 한 사람이, 쓰러지기 직전인 미숙 씨와 용균 아버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책, 89쪽).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당시엔 흘려들었지만, 한 자 한 자 기억해 토해 낸 말이다.
 
"용균이는 착실하고 일도 잘하고 그러긴 했는데, 가지 말라는 데를 가고 하지 말라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사고가 났습니다." - 89쪽
 
김미숙씨는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는 데도 온 힘을 다했지만, 또 다른 김용균이 나타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는 데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의 삶은 아들의 죽음 이전과 이후 많이 달라졌다.

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은 글쓴이 희음이 '달라진 삶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라는 물음에 대한 김미숙씨의 대답이다.
 
"그때는 삶에 대한 나름의 믿음이 있고 꿈이 있었고, 저는 한눈 안 팔고 그 시간을 열심히, 나름대로 살았거든요. 용균이가 가고 없는 지금, 당시의 꿈들이 사라졌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삶도 큰 의미가 있고요. 발 벗고 나서서 누군가를 돕는 데 뜻이 있기는 있었거든요. 그때도……. 근데 그걸 돌아볼 시간이나 체력이 없어갖고 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거든요, 예전에는요. 지금은 그걸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전과 이후를 딱 저울에 올려놓고 그렇게 따지기는 좀…… 그렇죠. 다 각각 의미가 있으니까." - 129~130쪽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씨는 김용균씨의 죽음을 세상에 온몸으로 알린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라는 2018년 12월 11일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김용균의 죽음을 전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전 오늘 동료를 잃었습니다.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끼어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다섯 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죽은 시간도 알 수 없습니다. … 저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더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런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 … 하청 노동자, 우리도 국민입니다.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 …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제발 귀 기울여주실……." - 165쪽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리는 형사 재판 1심 선고가 올해 2월 10일 있었다. 원청과 하청 회사는 각각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까지 벌금형이 내려졌다. 하청 업체 대표이사를 비롯한 기소된 원청과 하청 책임자 13명은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는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책, 234~236쪽).

1심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이태성씨는 "누가 일터에서 죽고 싶겠습니까. 그러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거 아닙니까. 유가족과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라고 울부짖었다(책 237쪽).

정부는 툭하면 '좋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 씨는 "어떤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인지 묻고 싶어요. 대기업이 좋은 직장일까요? 월급 많이 주는 곳이 좋은 직장일까요?"라고 묻는다(책, 246쪽).

'좋은 일자리'는 '일하면서 차별받지 않고, 일하다 다치지 않고, 일하다 죽지 않는'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일자리'는 늘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여야 한다.

오늘도 여러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 제발 더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회를 그냥 두지 말아야 한다.

김용균, 김용균들 -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권미정, 림보, 희음 (지은이),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오월의봄(2022)


태그:#김용균, 김용균들, #권미정, #림보, #희음,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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