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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 공부가 재미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클래식 음악의 작곡가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고, 곡의 배경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다. 그 공부는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의무로 하는 것도 아니라서 오로지 내 의지로 한 권 한 권 책을 사고 음반을 사게 된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면 욕심나는 것이 생기게 되는데, 그게 바로 공연이다. 유튜브로 많은 공연 실황들을 찾아보고 음반을 찾아듣고 있기는 하지만 뭔가 늘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공부를 할수록 이 음악을 연주자의 실황으로, 현장감 있게 듣고 싶은 욕구가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얼마 전 조성진 공연을 다녀오고 난 후로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들어 부쩍 공연 예매 창을 들락거리게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좋은 공연들은 이미 예매가 끝나있기 일쑤였다. 앗, 그런데 이미 예매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공연 중, 좋은 좌석의 취소표가 뜬 게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득템이!

바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첼리스트 문태국의 예술의 전당 공연이었다. K-클래식 팬덤의 창시자라 불리는 임동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관심 있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다. 그래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고, 프로그램을 보니 연주곡도 귀에 익은 어렵지 않은 공연이길래, 고민할 여지없이 클릭! 했다.

그렇게 가게 된 공연은 어쩌면 시기도 그렇게 안성맞춤이었는지, 늦은 오후의 예당은 단풍과 파란 하늘과 저녁 노을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가을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 데나 렌즈를 가져다 놓고 찍어도 걸작이 나올 것 같은 풍경만으로도 나는 이미 설레버렸다.
 
마치 아이돌 콘서트처럼 활기차고 즐거운 공연이었습니다.
▲ 이번에도 오른쪽 블럭의 내자리 마치 아이돌 콘서트처럼 활기차고 즐거운 공연이었습니다.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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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임동혁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러시아에서 유학한 임동혁의 러시안 피아니즘을 보여주는 공연이라고 했다. 연주할 곡도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이미 수많은 연주자가 연주했던 레퍼토리이고, 임동혁 자신도 수도 없이 연주한 곡이라 이번 공연을 끝으로 당분간 그의 연주 레퍼토리에서 빠질 곡이라고 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곡이기도 하다. 생애 전반에 걸쳐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 많은 고생을 한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발표한 <교향곡 1번>의 실패로 그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3년간 작곡활동을 포기하고 상심한 채 지내던 그가 3년 만에 내놓은 걸작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인 것이다.

새벽이 다가올수록 어둠은 깊다고 했던가. 라흐마니노프는 이 <피아노협주곡 2번>의 성공을 계기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라흐마니노프를 그토록 상심하게 했던 3년간의 시간 때문인지 그의 성공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연주자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된다.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울 수 없는 것이 인생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피아노 독주로 문을 여는 이 음악은 그 선율부터가 뭉클하다. 워낙 유명한 곡이고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했는데 연주자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임동혁의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워낙 많은 팬을 끌고 다니는 연주자이다 보니 공연장의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

뭐랄까, 익히 알고 있는 클래식 공연장의 분위기라기 보다 아이돌의 무대 같았다고 할까. 그뿐만 아니라 커튼콜 매너도 재치가 넘쳤고, 앙코르곡을 4곡이나 연주해 주는 모습에서도 공연을 즐기는 20주년 베테랑 연주자의 관록이 느껴졌다.

그렇게 화려한 공연이 끝나고 예술의 전당을 나오는데 문득 얼마 전 한 매체에서 보았던 김대진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말이 생각이 났다. 요즘 세계의 유수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연주자들의 우승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k-클래식 강국'이 된 것이 아니라 'K-콩쿠르 강국'이 되었다는 뼈 있는 말이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연주자들이 키워지고 있는 바람직한 환경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전문 연주자가 연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나라와 달리 관객이 무명 연주자의 무대를 찾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공연의 기회가 유명 연주자에게만 열려있다고.

그래서 무명 연주자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길을 겸할 수밖에 없는 것이 'K-클래식'의 현실이라는 지적이었다. 연주자가 전문 연주자로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세계 유수의 콩쿠르 입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했다.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이야기를 곱씹어 보니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많은 무명 연주자들이 무대를 갖는 것도 어렵지만, 그 무대를 유료 관객으로 모두 채우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니 말이다.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인지도 모르겠다. 무명 연주자들은 관객이 찾지 않으니 연주 연습보다는 교육자로서의 역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청중은 수준 높은 연주를 원하니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을 선호하게 되는 딜레마 같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런 좋은 공연을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을 즐기는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연주회는 표를 구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모르는 연주자의 연주회에 가자니 그 시간과 돈이라는 비용이 망설여지니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되풀이되는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예매 창을 열고 고민 중이다. 연주자의 인지도에 상관없이, 좋은 프로그램과 좋은 취지의 공연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세계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공연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당당히 K-클래식 애호가로 거듭나기 위한 나의 각오인데, 부디 이 작은 관심이 K-클래식의 발전에 밀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행히 연말이 다가와 그런지 좋은 공연이 참 많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살찌는 가을에 좋은 공연 보면서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살을 찌워봐야겠다.

태그:#예당, #임동혁, #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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