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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5월 12일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 '피니스테레'로

1.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입성하는 날

3월 22일에 출발해서 한 달 반을 걸었다. 추울 때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여름 날씨만큼 덥다. 이른 아침인데도 습도가 높아 땀이 쉴 새 없이 흐른다. 바르를 찾아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며 땀을 식히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다시 걷는다.

멀리 성당의 뾰족한 탑이 보이지만 앞으로 한 시간쯤은 더 걸어가야 한다. 목적지가 보이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미사에 참석하려면 열두 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 다행히 미사 전에 성당앞 광장에 도착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광장에 누웠다. 눈이 시릴 정도로 하늘이 파랬다. 잠시 후 열두 시 미사에 참석했다. 출발 전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정보를 보았을 때 향로 미사가 있다고 해서 기대했건만 묵중하고 장엄한 향로는 중앙에 저울추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는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어느덧 한 시간여에 걸친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 앞 광장에서 데이브와 엘런을 만났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데이브와 엘런이 우리를 만나려고 산티아고에서 기다린다는 소식을 그들과 연락이 되는 순례자에게 듣고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었다. 우린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리고 다양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취 후의 뿌듯함을 표현하는 데는 점핑 샷이 제격일 것 같아 점핑 샷도 찍었다.

그리고 축하주도 빠뜨릴 수 없었다. 광장 주변 바르에 모여 다 같이 축배를 들었다. 사는 곳이나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같은 성취를 얻어냈다는 것이 이렇게 뿌듯할 줄이야!
 
완주의 기쁨을 점핑 샷으로 나타냈다
▲ 산티아고 성당 완주의 기쁨을 점핑 샷으로 나타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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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후 인증 샷 찍는 인기 장소
▲ 산티아고 성당 완주 후 인증 샷 찍는 인기 장소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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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축하 기념은 완주자 인증서를 받는 것이다. 크레덴시알의 스탬프와 완주 인증서는 소중한 추억으로, 힘들고 외로운 어느 날 인증서를 보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크레덴시알에 빼곡히 직힌 스탬프와 까미노 완주 증명서
▲ 완주 인증서 크레덴시알에 빼곡히 직힌 스탬프와 까미노 완주 증명서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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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서 받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순례자에게 주는 인증서는 예전에는 줄을 서고 한참을 기다려서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홈피에서 신청하고 사무실에 가서 받으면 된다고 엘런이 알려주었다. 엘런의 도움으로 성당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신청한 후 사무실로 찾아가서 완주했다는 인증서를 받고 나서도 얼떨떨했다.

42일간의 여정이 한편의 영화필름처럼 흘러갔다. 편리한 교통수단을 두고 굳이 한 달 반 동안이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이 기나긴 길을 왜 걸었을까!

걷는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길이 있기에 걸었다. 걸을 수 있어서 걸었을 뿐이다. 그리고 걷는 동안 마음은 편안해졌다. 해 뜨면 걷고 저녁이 되면 기절하듯이 잠들고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오늘만 잘 지내면 되었다. 아주 단순한 생활이었다. 단순함이 주는 행복을 깨달았다. 걷는 동안의 고생보다는 자유로움이 좋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걷는 순간에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아내, 딸, 여자 어떤 지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인 OOO일 뿐이었다. 홀가분했다. 이렇게 오롯이 오랜시간을 나에게만 집중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성당 앞 광장으로 나갔다. 여기저기에서 축하 공연들이 있었고 우리는 광장에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다시 가져보기 어려울 시간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기특한 자신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산티아고 성당 주변에서 열리는 공연드
▲ 공연 산티아고 성당 주변에서 열리는 공연드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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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더 오래 산티아고의 밤을 즐기고 싶었지만, 다음날 바로 '피니스테레'까지 사흘을 더 걸어갈 일정이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2. 유럽대륙의 땅끝마을에 서다
 
피니스테레 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마을 '쎄'
▲ 쎄 피니스테레 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마을 '쎄'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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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와 신발을 설치해놓은 조형물
▲ 순례자의 상징 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와 신발을 설치해놓은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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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로 향하는 순례길은 걷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무거운 배낭을 그대로 메고 걷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등에 멘 배낭이 작고 가벼워 보였다.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까지는 길도 아름답고 거리도 짧기 때문에(89km 정도) 사나흘의 휴가를 이용해서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산티아고'까지 걸어왔던 길에는 주로 중장년이 많고 조용했다면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까지 걷는 구간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모였다. 젊은이들이 많아서인지 알베르게는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 '올베이로아'에서 출발할 땐 깊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길옆으로는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길손을 반겨준다.

순례길 시작할 때 스페인 남쪽에서 봤던 꽃들이 한달 반이 지난 지금 같은 꽃이 다시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는 봄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따라 올라온다고 말한다. 네 시간쯤 걸었을 때 바다가 보였다. '쎄'라 불리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마치 그림 속에나 나올법한 알록달록한 색깔의 집들이 보인다. 동네도 예쁘고 바다도 에메랄드빛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충분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걷기 시작해서 드디어 '피니스테레' 등대에 도착했다. 

드디어 순례가 끝났다. 46일간의 걷기가 이렇게 끝났다. 은퇴 후  4년 동안 기다려왔던 순례길 걷기, 제일 길고, 그래서 사람이 적다는 '은의 길' 걷기는 무사히 완주했다.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를 이루어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완주하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지만,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반신반의 상태였다. 그래서 매일 아침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발가락 사이마다 정성스럽게 바셀린을 바르고, 서둘러서 남들보다 앞서 가려 하지 않고, 배낭 짐을 꾸리는 데에도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다행히 다치지 않고 발에 물집 하나 잡히지 않고 아주 건강하게 마쳤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노력만은 아닐 것이다. 운이 좋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같이 걷던 일행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걷는 것이 체질인가 봐요. 처음 걷는 순례길을 너무 쉽게 걸은 것 아닌가요?"
"그렇게 보이나요?"


어쨌거나 나도 모르던 나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내가 이렇게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나? 더할 수 없는 나만의 멋진 프로젝트였다.
 
예전엔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신발을 태웠다지만 지금은 금지된 곳이어서 기념사진으로만 남긴다.
▲ 피니스테레 등대 예전엔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신발을 태웠다지만 지금은 금지된 곳이어서 기념사진으로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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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좋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 나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현재가 좋다.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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