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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 쉬듯 탁구와 산다. 거의 매일 세네 시간씩, 어쩔 때는 대낮부터 밤 11시까지 탁구를 친다. 탁구관장 김관장과 퇴근 후 술자리에서도 집에서 둘만의 시간에도 늘 탁구 얘기를 한다. 내 돈 주고 탁구 유니폼 한 번 산 적이 없는데 어느새 유니폼이 스무 벌쯤 생겼다.

가족 모임에도 회사 미팅에도 요즘에는 탁구 유니폼을 입고 가곤 한다. 예쁘기도 하고 언제라도 탁구를 치러 갈 수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다. 생일엔 탁구화를 선물받고 심심할 땐 탁구 치는 언니들과 만난다. 내 일상이 탁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딱히 바란 적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원하던 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얼마 전에는 승급이라는 것을 했다. 탁구에는 부수 제도가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고양시 여자는 탁구에 입문하면 5부부터 시작하고 1부까지 올라가면 그때는 선수 출신과 맞장 좀 뜰 수 있게 된다.

나는 코로나 이전에 본격적으로 탁구를 시작해서 올해 초에 4부로 첫 승급을 했다. 그리고 매년 이맘때면 고양시배 승급대회가 열린다. 이번에는 3부 승급을 노리고 특훈 중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

여전히 발은 느리고 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공이 높이 뜨기만 하면 회전이 있든 없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공이 도착할 곳에 발이 미리 가 있고 공을 끝까지 보고 있다가 정확한 타점에서 공을 때리고, 공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회전하는지 구질을 알게 되면 드디어 3부가 될 것이다.

내 승급 가능성이 거의 제로라는 것을 아는 영리한 김관장은 내가 3부가 된다는 데 200만 원의 상금을 걸었다. 어차피 받을 가능성도 없는데 마치 받을 돈을 떼인 것처럼 벌써부터 속이 쓰리다. 
 
주말에도 탁구 리그를 찾아다니며 참석한다. 나홍준탁구클럽 복식리그에서 3등!
 주말에도 탁구 리그를 찾아다니며 참석한다. 나홍준탁구클럽 복식리그에서 3등!
ⓒ 신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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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5부로 있다가 4부로 승급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연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상대가 있는 스포츠는 혼자만 잘한다고 절대 이길 수 없다. 이기려면 내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은 상대가 실수를 하는 것도 내가 이기는 또 다른 길이었다.

11점을 먼저 내면 이기는 탁구에서 9:9까지 접점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가장 강한 서브를 넣거나 서브 후에 나에게 돌아온 볼을 무조건 강하게 쳐버리는 식으로 얼른 게임을 이겨 버리려는 마음이 앞섰다.

그건 내가 실수를 하지 않을 때는 통할 수 있었지만 매치포인트에 다 왔을 때는 달랐다. 조급함, 무조건 이기겠다는 욕심이 더해져 열 번 중 아홉 번은 점수를 내주고 패배하곤 했다.

'연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임에서 나는 처음으로 승리를 맛봤다. 11점을 내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자기 암시를 끊임없이 했고, 끝까지 '연결'을 하려고 했다. 마침내 상대방이 참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이길 수 있었다.

끝까지 '연결'을 한 나는 4부로 승급했고, '연결'을 끝내려고 한 상대는 5부에 남게 되었다. 쩝쩝, 사실은 운이 좋았다. 5부에서 4부로 승급했을 때는 '연결'의 중요성을 깨달았는데, 이제 3부가 된다는 건 인생이 탁구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숟가락이 탁구 라켓이 되어 메추리알에 회전을 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거나 탁구를 치지 않는 사람과는 점점 할 말이 줄어드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 이제 3부가 되어가는 중인 것이다.

사실 그 하나에 인생 전체를 갈아넣고 몰입해야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어디 탁구뿐이랴.

태그:#김선철탁구클럽, #탁쳐라김관장, #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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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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