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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측백나무가
반쯤 대머리가 된 회색 빛 건물 뒤편 변소 입구에서
사색하듯 말없이 서 있는 단촌역

붉은 색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대합실 나무 의자가 카바이트 불빛 아래서
힘이 다한 노인처럼 꾸벅 꾸벅 졸고 있던
경북 의성군 단촌역
(중략)
여름이면 붉은 사루비아가 홍운보다 더 짙던
그 역의 낡고 좁은 문을 통해
나는 안동 50리 길을
아니 청춘 수만 년의 미래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중학교 3년을 통학했지만
미안하게도 역장님 이름을 알지 못했네

-김용락 시 '단촌역' 중에서

 
참가 시인들의 시낭송 모습.
 참가 시인들의 시낭송 모습.
ⓒ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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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고추 주 생산지로 유명한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소재 중앙선 단촌역에서 지난 6일 오후 3시 지역주민들과 시인, 소설가 등 문화예술인, 군수, 면장, 군의원, 문화원장, 도서관장 등 각계인사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의성도서관 배롱나무 독서회 주관으로 '제4회 김용락 시인과 함께하는 단촌역 은행나무 문학광장'이 주민 축제로 성황리에 열렸다.

이 행사는 단촌면 출신의 김용락 시인의 시 '단촌역'을 비롯해 단촌 마늘 등을 주제로 쓴 시를 기념해서 자발적인 주민축제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백상애 시인의 사회로 권미경 배롱나무독서회 회장의 시낭송을 시작으로 오연실 회원의 유치환 시 '행복', 김봉임 시낭송가의 노천명 시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비롯해 김경자, 남정희, 고차옥, 회원이 차례로 시를 낭송했다.

우주연, 오효자, 이경숙, 최경희 회원이 김용락 시인의 시 '단촌역 은행나무' 등을 낭송하고, 뒤이어 난설문학 회원과 문화분권 회원인 장진명, 이광수, 권이부 시인이 각각 자작시를 낭송했다. 이어 의성출신 문인인 권영호, 이용섭, 김금숙, 장효식 시인의 시를 역시 배롱나무 독서회 회원인 최은영, 김계순, 박희정, 장효식 시인이 낭송해 깊어가는 가을을 수놓았다.

김봉임 연출가는 "농촌지역의 조그만 시골 폐역인 단촌역에서 시낭송을 비롯한 문학행사를 함으로써 지역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지방소멸 시대에 지역주민들의 정서함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이 행사를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김광철 단촌면장은 "단촌면에서 이런 문화행사를 하게 된 것은 단촌면민들의 문화저력이자 자부심이다. 오래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김주수 의성 군수는 "단촌역 은행나무 문학광장 행사는 단촌면뿐 아니라 의성군의 보배이다. 내년부터는 단촌역 일대의 환경을 정비하고 전국적인 문화행사로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고추축제와 연계해 더욱 활성화 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김용락 시인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시작한 이 문학행사가 지역고유의 문화콘텐츠로 발전하고, 오래 지속되길 기원한다. 그리고 저의 보잘 것 없는 졸시가 계기가 돼 주민축제가 벌어진 데 대해 지역주민들과 관계 기관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

김용락 시인은 단촌면 세촌1리 출신으로 1984년 <창작과 비평>으로 문단에 등단해 시집 <산수유나무>, 문학평론집 <지역, 현실, 인간 그리고 문학>을 비롯해 16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경북외국어대와 경운대 교수, 문체부 산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을 역임한 한국문단의 중견 시인이다.
 
김용락 시인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김용락 시인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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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단촌역, #김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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