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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해외여행 붐'이 일고 있다. 혹시 오랜만의 해외여행을 앞두고 어떤 여행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학자 김종엽 교수가 출간한 <타오르는 시간>을 읽어봄직하다.

그간 이 사회에 대한 유의미한 글을 써왔던 김종엽이 쓴 이 여행기는 일단 독특하다. 여행에 관해 지적으로 여행하는 책이라고 할까? 온갖 철학과 사회학과 문화와 역사를 가져와 여행과 시간과 장소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온갖 지식인과 온갖 책, 온갖 예술작품을 통해 보고, 이동하고, 머무르는 행위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게 만든다. 이 사회학자가 아낌없이 차려놓은 지적 만찬을 즐기다 보면 결국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타오르는 시간> 표지 이미지
 <타오르는 시간> 표지 이미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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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행의 목적이란 다 다르다. 여행이란 게 유명 관광지나 보고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나, SNS에 올릴 몇 장의 사진이 여행의 목적인 사람이라면 <타오르는 시간>은 지겹고 무용할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세계를 확장하고, 현상을 다르게 보고, 여행지의 모든 장소에서 풍부한 의미를 구하고 싶다면 이 책은 분명히 어떤 힌트를 줄 것이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계를 담는다. 김종엽이 구축한 이 사유의 세계는 크고 방대하고 깊다. 한 걸음씩 천천히 걷다 보면 우리 앞에 놓인 각자의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완성해야 할지 조금 알게 될지 모른다.

관련해서 지난 10월 28일 <타오르는 시간>의 저자 김종엽을 만났다.
   
김종엽 프로필 사진
 김종엽 프로필 사진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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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르는 시간>을 읽어보면 여행기라가 보다 여행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책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쓰게 된 것인가요?
"처음엔 한 달 넘게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일반적인 여행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행기를 쓰다 보니 여행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20년 전, 학교에서 '관광의 사회학'이라는 과목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그즈음에 우연찮게 학생들 졸업여행을 따라가게 되었는데 일정 짜놓은 걸 보면서 학생들이 문화적으로 빈곤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계기로 졸업여행 프로그램 짜는 걸 리포트로 내는 수업을 개설했던 거죠.

그런데 여행이나 관광을 대하는 태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관광과 여행을 통찰하는 책'을 써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타오르는 시간>이고요."
 
파리파사주에서 아내와 딸
 파리파사주에서 아내와 딸
ⓒ 김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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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아주 독특합니다. 행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간 첫날까지의 이야기만 담겨 있어요. 대신 여행을 주제로 온갖 지적 향연이 펼쳐집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행과 관광을 통찰하기 위해 하이데거가 나오고, 벤야민을 말하고, 짐멜의 에세이를 가져옵니다. 그 외에도 제임스 티소, 자코메티, 고흐 등등 수많은 철학자와 역사학자와 예술가들이 등장하니까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여행은 결국 장소를 체험하러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목표는 '장소를 체험하는 여행'을 둘러싸고 있는 근대적 장치와 제도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여행은 물론이고, 장소 체험에도 더 충실해질 수 있다고 봐요.

원래 이번 작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는데 <타오르는 시간>은 그 1부 격입니다. 1부를 통해 여행을 통찰하고, 앞으로 나올 2부에서 본격적인 여행기가 펼쳐질 텐데요. 두 권을 함께 보면 좀 더 조화로운 그림이 될 것 같습니다. <타오르는 시간>만 놓고 보니 되게 특이한 여행책이 되었는데요. 하지만 여행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한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누구는 쉼이고, 누구는 충전이고, 또 누구는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과시이기도 하죠.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서 여행을 두고 '삶의 연속성을 끊어내서 한때를 만들어 낸다'고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타오르는 시간'이라고도 정의했고요. 어떤 의미일까요?
"삶이란 시간적인 연속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 연속성은 삶에서 감지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시간의 마디를 만들어 냅니다. 하루, 한 달, 한 해 같은 것들이죠. 이런 객관적인 형태가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시간의 마디가 생겨나는 걸 생각해 보면 연속성에서 벗어나 도드라진 시간으로 자리 잡았던 경우가 많아요.

그런 맥락에서 여행만큼 보편적이고 간결하게 시간의 마디를 이룩하는 게 없죠. 시작과 끝을 가지고, 집을 떠나 낯선 환경을 접하고, 낯선 언어를 듣잖아요. 우리가 지난 날을 떠올릴 때도 어떤 도드라진 시간을 기억하지 평범한 매일매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죠.

이를테면 5일 전에 뭘 먹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먹었던 특별한 음식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여행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킬링타임의 반대 개념이라고 봅니다. 아주 농밀한 체험이고, 장작이 불꽃에 타올랐다 꺼지는 것처럼 여행도 그렇게 시간이 타올랐다 꺼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여행을 말할 때 공간, 혹은 장소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타오르는 시간>에서 장소의 향유를 돌봄과 짝지은 것은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한편으론 사람들이 열망하는 장소가 가진 운명적 비극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관광지가 된다는 건 사람들의 문화적인 실천의 결과물입니다. 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일수록 사람들로 우글거리죠. 설악산에 단풍을 보러 갔더니 정작 본 건 앞서 걸어가는 등산객의 엉덩이뿐이었다는 농담처럼 말입니다. 유명한 장소일수록 그 장소가 생태적인 측면에서 훼손되고, 문화적인 잠재력이 고갈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결국 장소는 명성과 의미가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수록 황폐해질 수밖에 없고, 모든 장소는 그곳을 돌보는 노동 없이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관광객이나 관광객을 맞이하는 사람이나 함께 유념하고 또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관광객을 '휴일의 군주'라고 표현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련해서 좀 말씀해주신다면?
"어떻게 보면 관광지를 체험한다는 건 그 옛날 군주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참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관광객은 군주와 군주를 둘러싼 문명을 보는 것을 넘어 관광하는 행위를 통해 그 세계를 바꾸는 측면이 있어요. 예전에 황제나 군주가 순행하면서 교화하는 과정과도 비슷한데, 오늘날에는 관광객이 세상을 휩쓸고 다니죠. 관광이 주요한 산업인 지역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스페인에 가서 플라멩고를 보면서 즐기고 좋아하는데 이게 스페인의 문화를 대변하는 것인가요? 어쩌면 관광적인 행태로 팔리는 것 아닐까요? 관광객인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만 보고 오는 여행을 진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을 고려하는 여행과 그렇지 않은 여행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조금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말이죠."
 
몬세라트 성당
 몬세라트 성당
ⓒ 김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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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요즘 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서 여행이나 관광에 있어서도 기후변화 얘기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할 것 같아요. 가끔 혼자 디스토피아적이면서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만약 생태적인 문제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해외여행을 일생에 딱 3달씩만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면 우리는 모두 어떤 여행을 할까요? 지금보다는 여행이라는 행위에 대해 훨씬 더 고민하고, 일정도 정말 고심해서 의미 있게 짜지 않을까요?

물론 현재의 우리는 여러 여건이 허락하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죠.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특별한 경험인 만큼 이왕이면 좀 더 풍성한 여행, 타오르는 시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여행이 되면 좋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 독특하고 이상한 여행책이 여러분의 여행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오르는 시간 - 여행자의 인문학

김종엽 (지은이), 창비(2022)


태그:#타오르는시간, #김종엽, #여행, #여행기, #스페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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