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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들이 지난 9일 오후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다.
 2023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들이 지난 9일 오후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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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목요일(11월 17일)은 드디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드디어'라는 말보다는 '마침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예년과는 다르게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은 내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기 때문에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의미에서 복잡한 기분이 든다. 속이 시원한 점도 있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면이 많아서인가 보다.

그런데 교실 분위기는 조용하고 잠잠하다. 수능에 올인하고 있거나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등교를 안 해서인지 수능이 다가와도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능이 다가와서 긴장하고 있는 건 우리 교사들이다.

수능 시험장 학교가 준비해야 할 일 

우리 학교도 수능 시험장이다. 우리 학교는 수능 시험을 보지 않는 학교였는데 2년 전부터는 수능을 보게 됐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시험실 당 인원이 28명에서 24명으로 줄면서 시험장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졌다는 것도 그 이유이다.

수능 시험장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실을 정리해야 한다. 평소 학생들의 책과 짐으로 가득 했던 교실과 사물함을 모두 비워야 한다. 책상과 의자가 삐그덕거리지 않는지 점검해야 하고, 각종 시험 안내문을 부착해야 한다. 당일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방송이나 시스템 전반에 대해 점검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런 모든 일들을 준비해야 하니 교사들, 특히 담당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감독관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다. 말로는 수능 감독관 위촉이라고 하지만 '차출'이나 '동원'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한 달 전쯤 교육청에선 필요한 수능 감독관 인원을 배정해서 각 학교에 통보하는데, 학교에선 그 숫자에 무조건 맞춰야 한다. 빠질 수 없는 건 아니다. 나이가 많거나 자녀가 수능을 보거나 아주 많이 몸이 불편하면 가능하다.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인원 수가 적은 경우에는 고3 담임도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 이유는 이유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하기 싫다고' 빠질 수는 없다.

중·고등학교 교사들 중 대다수가 아마 수능 감독을 하기 싫어할 것이다. 몇 년 전 한 교사단체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70%가 넘는 교사들이 부담감을 호소했고, 그 이유로는 심리적 부담과 신체적 부담을 1, 2위로 꼽았다. 당시 교사단체들이 연합해 2만 명이 넘는 교사들의 서명을 받아 수능 감독 개선 사항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서약서'가 '수능 감독 위촉 확인서'로 변했지만...
 
2023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을 열하루 앞둔 11월 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도선사를 찾은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 기도하는 신도들 2023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을 열하루 앞둔 11월 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도선사를 찾은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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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떨쳐 버리고 싶은 것은 막중한 책임감이다. 방송으로 통제하고 지시하지만 실제 교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다. 수능이 1년에 여러 번 치러지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점에서 그 부담감은 막대하다.

수능 감독관이 되면 전날 오후 내내 교육을 받고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지금은 이름이 '수능 감독 위촉 확인서'로 바뀌었지만,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임무에 충실할 것이며 모든 준수 사항을 잘 지키겠다, 만약 그렇지 못할 시에는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바뀐 확인서에서는 책임진다는 한 줄이 빠졌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모든 비난과 질책이 교실 내 감독관에게 돌아간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2년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4교시 종료령이 2분 일찍 울렸다가 집단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방송업무를 담당했던 교사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심리 상담까지 받아야 했다. 

어떻게 하면 해결이 될까. 무엇보다 수능이라는 시험이 절대적인 기회이면서도 딱 한 번밖에 없는 기회라는 점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거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 것이고, 학생이나 교사들이 인생을 걸고 시험을 보거나 감독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당장 그게 바뀔 수 없다면, 대학 입학 시험이니 대학 측에 책임을 분배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이외의 대입 면접이나 논술 고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인력 풀이 대학에도 존재한다. 충분한 교육이 이뤄진다면 가능한 일이다. 중고등학교 교사들 중 (진짜) 희망자를 받고, 대학교 내 전문 인력 풀을 활용한다면 지금과 같은 '강제 동원'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움직이는 소리조차 조심하라

두 번째는 신체적 어려움이다. 수능 일반 감독관의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반이다. 8시 10분부터 1교시 감독이 입실해 각종 소지품을 걷는 일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4교시 탐구영역의 시험이 끝나면 4시 37분이지만, 답안지에 이상이 없는지 모두 확인한 후 소지품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보통 5시가 다 돼 퇴근할 수 있다(그중 제2외국어를 보는 시험장은 5시 17분에 모든 시험이 종료된다).

1교시 시험은 80분, 2교시 시험은 100분, 3교시는 70분, 4교시는 한국사 포함해서 92분인데 일반 감독 교사들은 3개 시간에 투입된다. 운이 좋지 않아서인지(감독표를 짜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는 나이순이다) 나는 매번 1, 2, 4교시였다. 보통 1교시와 2교시가 가장 길고 힘든데 빠져본 적이 없다.

앞에서 말한 수능 감독 개선 사항 요구 사항에 4개 중 2개 교시 감독 배치, 키높이 의자 배치를 요구했지만 교사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여전히 3타임의 감독을 들어가게 돼 있고 교실 뒤쪽에 의자를 두 개 놓고 감독관이 돌아가면서 앉게 해놨다.

하지만 움직이는 소리조차도 조심해야 해서 교실 뒤쪽에 있는 의자에 앉기 위해 자주 교대할 수가 없다. 잠깐 앉는 것만으로도 좋아지는 건 맞지만, 계속 앉아있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너무 이른 시간에 나와야 해서 아이가 어릴 때는 그 한두 시간을 위해 누군가에게 아이를 부탁을 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지난 10월 1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습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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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루를 보내는데, 수당은 15만 원이다(서울은 14만 원이고, 제2외국어를 감독하는 경우 1만 원 추가). 누군가는 충분한 금액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거의 서 있어야 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며 한 권 분량에 달하는 유의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그러고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로 큰일 난다. 그러니 하루 종일 긴장할 수밖에 없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 기피하는 게 아니라 너도나도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다. 예산을 늘려 수당을 더 주면 하기 싫은 사람들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충분히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과 달리 인력을 더 확보해서 4교시 중 2교시만 감독하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 수능 감독 교사에 대한 처우의 부당함을 이렇게 길게 적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니 매년 교사들의 한탄과 문제 해결 목소리가 담긴 기사들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태그:#수능, #감독관, #책임감, #부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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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jey9595 사진은 우리집 양선생, 순이입니다. 저는 순이와 아들 산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40대 국어교사이고, 늘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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