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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청년들과 노동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청년들과 노동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민족통일애국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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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애국청년회(아래 민애청)는 올 한 해 2022모두의청년학교를 운영하며 청년들과 역사, 민주, 평화, 통일, 노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11월 4일에는 전태일 열사 기일에 즈음해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함께 청년노동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됐던 간담회를 인터뷰로 재구성했습니다. (진행자 : 정문식 공인노무사 겸 민애청 회장)

"여전히 산재현장에 가면 참혹함을 느낀다"

김미숙 : "모두의 힘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산재로 인한 죽음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법은 위헌 소송을 당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법이 '모호하다'라는 이유로 위헌 판결이 난 적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법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위헌이 논의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중대재해처벌법이 많이 후퇴한 채로 제정이 돼서 여전히 산재현장에 가면 참혹함을 많이 느낍니다. 벼랑에 몰린 청년들이 한 순간에 참사를 당한다는 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요. 그래서 평범한 주부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창시절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웃음)"

- 진행자 :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 사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김미숙 :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용균이는 하청회사 직원이었고요. 하청회사 이사는 용균이가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일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어요. '용균이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러나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장은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아 회사가 용균이의 잘못으로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분진과 낙탄가루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용균이는 발전소 9, 10호기에서 일했는데요. 평소에 용균이는 그곳이 최신 시설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런데 가서 직접 보니 레일이 평행한 레일이 아니라 나선형 레일이었고 그 나선형 회전체가 외부로 노출이 되어있더라고요. 용균이는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 그 회전체에 끼어 사고가 났습니다. 현장을 수시로 사진 찍어 원청에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몸을 회전체 내부로 집어넣다 사고가 난 거죠.

2인 1조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사고 발생 몇 시간이 지나서야 용균이는 동료들에게 발견됐습니다. 최근 법원에서 2인 1조로 일 을못 한다는 피의자(하청업체 측)에게 검사가 "그럼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피의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혼자 일해야 한다는 식의 망언을 하기도 했죠. 억장이 무너집니다."

- 진행자 : 그럼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나요?

김미숙 : "처음에는 다들 사과했어요. 그런데 재판장에서는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고 적반하장이에요. 공항 컨베이어벨트처럼 안전한 게 공장 현장이라면서... 위험한 외나무 다리를 만들어놓고 안전하게 건너라고 얘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이번 사건은 원청 사장까지 기소가 된 드문 사건이라 관심이 많았는데 1심에서는 원청 사장은 무죄가 됐습니다. 상황을 잘 몰랐다는 이유로. 용균이 죽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용균이 사건에는 여전히 구 산안법을 적용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청년들과 노동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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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자 :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위해 활동하고 계신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미숙 : "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많이 후퇴했어요. 국회 입법 10만국민동의청원도 달성됐지만 그 안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국민의힘은 몽니를 부리고 민주당은 결국 당론 채택도 하지 않았었죠. 대표적으로 후퇴한 부분이 5인미만 사업장이 법적용에서 빠진 부분이에요. 재해를 예방하는 법이면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5인 미만 사업장부터 해결해야 하는 게 상식인데 정치권은 안전보다는 기업의 비용만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산재 유족들은 가족이 죽었지만 애도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요. 형사가 된 것처럼 증거를 수집해야 하죠. 그래서 인과관계추정조항을 삽입하려 했어요. 산재가 일정 기간 일정 횟수 이상 발생하는 등 조건이 충족되면 회사가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게 말이죠. 그런데 이것도 빠졌어요. 마지막으로 공무원 처벌 조항인데요, 안전 검사와 조치를 할 공무원의 직무유기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빠졌습니다. 법이 제정된 건 기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 진행자 : "얼마 전 일하다 손목이 잘린 노동자 산재 상담을 하는데 이상한 점이 있더라고요. 회사에서 진행하는 안전교육 이수 서명용지를 봤는데 글씨체가 다 똑같은 거예요. 회사 임직원이 교육 이수를 조작한 거죠. 현장에는 이런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하시고픈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미숙 :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한다고 하는데, 삼성 백혈병 문제가 불거졌을 때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등을 제정해 기업에 제재를 해놓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제재가 많이 풀렸어요. 이 와중에 중처법까지 완화한다는 건 기업에 제재를 가할 안전장치를 아예 없애겠다는 것과 다름없어요. 안 그래도 노동자들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사회인데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몇 년 간 제가 느낀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노동자는 죽어도 시업은 살려야 한다는 정부. 이건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에요. 부모들은 자식을 잃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데.. 대통령이 부모의 마음으로 노동자들을 살피면 기를 쓰고 정부를 반대하지는 않을 거예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청년들과 노동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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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주변에도 많아요"

- 현장 질의, 고니(34) :  제가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요?

김미숙 : "요즘은 노동재해와 시민재해가 함께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광주에서 아파트가 붕괴되어 노동자뿐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들도 피해를 입었죠. 그래서 산재가 꼭 노동자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저는 길가다가 건설현장 근로조건 위반된 것 있으면 가는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요. 그러면 관리자가 바로 나와 '당신 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인권 문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밝혀요. 

그러고 나면 자기들끼리 막 움직이고, 안전모 쓰라고 하고 안전수칙 점검합니다. 혼자 일하고 있는 사람 보면 혼자 일하지 말고 2인 1조로 일하라고 이야기도 해주고요. 다음날 가면 '우리 사업장은 안전수칙을 잘 지킵니다' 플래카드도 걸어놓더라고요. 사실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주변에도 많아요."

- 현장 질의, 김태중(34) : "이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미숙 : "매년 2400명씩 산재로 사망한다는 것이 제가 계속 활동하는 이유예요. 처음 용균이가 죽었을 때 다른 유족들을 원망도 했어요. 그들이 미리 나섰으면 용균이가 안 죽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래서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국회가 신중하게 법을 만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는 것, 죽음을 노동자들의 잘못으로 모는 것, 그리고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 된 청년들이 제대로 된 안전 교육도 못 받고 죽는 것이 용납이 안 됩니다." 

- 현장 질의, 손수빈(27)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외에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변해야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미숙 : "일단 벌금이 몇 푼 안 되기 때문에... 사람 한 명 당 평균 400만 원의 목숨값으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이 문제에요. 또 그 사람이 죽으면 가족에게 일하러 나오라고도 해요. 이것도 매뉴얼이에요. 사람을 기계 부속품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원하청으로 나뉘어져 있으면 제일 문제인 점이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거예요. 현장의 위험신호를 원청에서 무시하기 일쑤거든요. 원청은 몰랐다며 사고 책임도 회피하기 쉽죠."

- 진행자 :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김미숙 : "아닌 걸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해요. 내가 부당한 처우를 당할 것 같아서 참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옳은 이야기를 하면 그 목소리에 힘을 실어줘야 해요. 용기가 필요한 사회예요. 그리고 취업 못하고 자존감이 바닥이 되어 있을 청년들, '이생망'이라고까지 하는 청년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면 저런 말까지 할까 싶어 어른으로서 참담하고 미안합니다. 그치만 자존감을 높이는 것도 자기 자신이에요. 그리고 꼭 행복해야 합니다. 용균이는 열심히만 살려다 그렇게 사고를 당했어요. 행복이 제일 중요해요."

- 진행자 :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 기억이 나면서도, 간담회를 통해 그 사소한 행복도 실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용기내어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청년들과 노동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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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민애청은 ‘민족통일애국청년단’이란 이름으로 1987년 10월 27일 창립되었습니다. 이후 민애청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청년들의 노력이 필요한 곳에 언제나 함께해 왔습니다 https://mac615.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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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뜨거운 숨과 피를 토해내던 시절, 민애청은 ‘민족통일애국청년단’이란 이름으로 1987년 10월 27일 창립되었습니다. 이후 민애청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청년들의 노력이 필요한 곳에 언제나 함께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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