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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야농원에 만발한 들국화 향기가 가을하늘과 잘 어우러지는 계절이다.
 국야농원에 만발한 들국화 향기가 가을하늘과 잘 어우러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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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검암동에 위치한 국야농원은 멀지 않았다. 나지막한 산 아래, 자연의 품에 자리잡은 듯 국야농원은 편안한 들국화 세상이었다.

한 사람의 노고와 의지로 이룬 경이로움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멋진 자연 속에서 피워낸 귀하고 예쁜 꽃을 지금만 볼 수 있다는 게 아쉬웠다. 그런 내게 국야농원 이재경 대표는 "봄꽃은 며칠만 지나도 꽃이 달라지지만 들국화는 한 달은 잘 볼 수 있다"며 꽃에 물을 주던 손을 놓고 반긴다.

"가을이면 국화 전시회가 곳곳에서 열려요. 나 보고도 자꾸 참여하길 원해서 가보면 다들 화려한 일반 국화 앞에선 인증 사진들을 찍더군요. 그리고 꽃은 여기 와서 찍어요. 야생 국화란 걸 아니까. 아이들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이것이 들국화란다' 하면서요. 여긴 화려한 게 없어요. 무엇보다도 우리의 토종 국화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이재경 대표는 들국화를 향한 마음으로 일생을 보낸 분이다. 국야(菊野)라는 이 대표의 호(號)답게 농원과 주변 야산에는 수백 종의 들국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취미로 시작했다가 이 땅의 토종 들국화 뿌리를 찾아보려는 집요함으로 시작된 육종이었다. 민간 육종가로서 직접 육성한 신품종만 수십 종으로 국내 최다 기록이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데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 속에서 피워낸 귀하디 귀한 들국화들이다.

들국화의 아름다움과 우리 환경에 맞는 품종을 새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는 활동을 인정받아 신지식임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난 들국화의 이름 앞엔 국야란 이름이 붙는다. 국야설화, 국야청해, 국야연가, 국야천사, 국야만추, 국야감태, 국야청파, 국야진주, 국야도원, 국야평강...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다.

꽃으로만 끝나지 않는 국화
 
인천 국야농원의 신지식임업인 이재경 대표의 국화 사랑은 끝이 없다.
 인천 국야농원의 신지식임업인 이재경 대표의 국화 사랑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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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추출물로 만들어낸 화장품은 자연의 산물이기에 자부심이 크다.
 화 추출물로 만들어낸 화장품은 자연의 산물이기에 자부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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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가 태어나기 위해 몇 년씩 인고의 시간을 거친다고 했다. 매일 꽃을 들여다보면서 사는 게 일이다. 머릿속에, 마음속에 꽃으로만 들어찬 삶이라니. 세상 찌푸릴 일 없을 것 같다.

일을 하는 실내로 들어가니 테이블 위에도 실험 관찰 중인 꽃가지와 꽃송이가 몇 개 올려져 있다. 연구의 산물인 구절초다. 요즘 말로 핫핑크 색감이다.

원하는 색깔을 내려면 기나긴 시간이 걸린다. 노랑도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빛깔의 다양한 색감을 만들어 낸다. "색깔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라고 했더니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자식처럼 꽃을 바라봤다.

"구절초가 보랏빛이잖아요. 우리나라 구절초도 지역에 따라 다 달라요. 그러나 특색이나 스토리가 하나도 없어요. 이런 핑크빛으로 나오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야생에는 향기가 있어서 이렇게 빚어온 신품종들과 복원 개량한 품종들이 화장품으로 연결되기도 했죠. 대기업을 통해 이 꽃으로 만든 국화향 향수 미스트는 전 세계 단 하나뿐입니다."

향수뿐만 아니라 식혜나 수정과와 같은 음식도 만들고 있다. 자생국화과 식물이 좋은 점은 80% 이상이 먹거리 아니면 약용이라는 점이다. 맛과 향이 있고 효능 또한 다양하다. 감국은 기억력 증진과 노화나 치매예방에도 좋다. 고들빼기, 곰취, 참치, 곤드레, 민들레, 코스모스 등이 모든 것들 또한 다 국화였다. 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세상 모든 이들을 유익하게 하나니, 그 이름 국화다.

이 대표의 소망 중에는 통일 구절초라는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있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구절초를 교배해 피워내려는 꽃이다. 백두산과 금강산을 여러 차례 갔다 왔고 한라산도 수차례 올랐다.

"사실은 이게 미친 짓이에요.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거든. 미래가 없고 확실치도 않잖아요. 그래도 뭐 차근차근 연구해 나가면서 인정받는 것이 있으니까요. 지난해 정원식물 품평회에서도 많은 상을 받았는데 우리 식물이 좋다는 걸 그렇게 인정받는 것, 점점 관심을 갖는다는 거잖아요."

힘들고 고독한 작업이어도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건 뿌듯한 일이다. 특히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의 전적인 지지를 받으며 매사 함께 하면서 행복을 가꾸어나가는 것 또한 행운이다. 두 사람의 여행 주제도 꽃이며 식물이다. 둘이 손잡고 우리나라 땅을 안 간데 없이 밟았고 식물여행으로 해외도 많이 돌아다녔다.

국야농원이 인천으로 오기까지
 
농원 주변의 산야에 펼쳐진 들국화의 향연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이뻐서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농원 주변의 산야에 펼쳐진 들국화의 향연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이뻐서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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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벌과 나비들의 날갯짓이 활발한 국야농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유난히 벌과 나비들의 날갯짓이 활발한 국야농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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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십 년 들국화와 함께 살았던 터전인 춘천을 떠나 이곳 인천으로 옮긴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검단의 산자락으로 석 달 걸려 국야농원이 대이동을 한 것이다.

이 대표의 고향은 인천이었다. 선산이 있는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려고 들국화와 함께 회귀(回歸)했다. 인천에서 가장 공기가 좋은 곳이라며 주변을 둘러본다. 처음에 땅이 안 좋아 고생이 많았다. 땅을 파면 돌덩이가 나오고 비 오면 질퍽거렸지만 이젠 그나마 이 정도라고 한다.

들국화를 향한 사랑 말고도 이 땅의 꽃을 향한 애틋함도 보여준다. 그는 지역별 특색의 꽃을 모방해 여기저기 굳이 심어서 보여주려고만 하지 말고 그 땅의 그 꽃을 보자고 했다. 유채꽃은 제주도에 가서 보고 메밀꽃은 봉평 가서 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이다. 오랫동안 그 땅의 분위기에 맞는 꽃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희미해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이 대표는 저 위에 올라가 보라고 손짓한다. 오랜 노거수가 숲을 이룬 나지막한 동산에 들국화가 소복소복 피어나 있었다. 구절초를 비롯해 감국, 해국, 쑥부쟁이, 미역취 등을 들여다보는 중에 쉴 사이 없이 벌과 나비가 날고 있었다. 

"벌이 멸종이 되면 지구 또한 멸종된다고 하잖아요. 날마다 풀과의 전쟁을 하지만 여기선 벌과 나비를 당연한 듯 보면서 살아요.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에 사계절 올 때마다 다른 꽃들이 보일 겁니다."

이 계절이 끝날 무렵 다시 힐링의 시간을 마주하고 싶을 때 들꽃을 보러 발걸음 해야겠다. 또 다른 꽃이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현숙 i-View 객원기자
 
이 대표가 등록한 품종들이 피어난 농원을 돌아보노라면 들국화의 매력에 절로 매료된다.
 이 대표가 등록한 품종들이 피어난 농원을 돌아보노라면 들국화의 매력에 절로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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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 주변의 산야에 펼쳐진 들국화의 향연
 농원 주변의 산야에 펼쳐진 들국화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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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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