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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막내야, 이제 몸빼바지 그만 만들고 그 천 살 돈으로 예쁜 거 멀쩡한 거 하나 사!"

보다 못한 둘째 언니가 내게 팩폭('팩트 폭격'의 줄임말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로 상대에게 타격을 준다는 뜻)을 날렸다. 언니는 내가 천이나 뜨개실, 나무 쪼가리들을 사들일 때마다 가성비를 따지면서 쓸데없이 돈을 낭비한다고 못마땅해했다. 만들기는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놀이였지만, 들인 시간이나 비용에 따른 '발전'은 없었다.

차마 취미라고 말할 수 없는 뜨개질
 
면실로 짠 크로스 백과 수세미
 면실로 짠 크로스 백과 수세미
ⓒ 왕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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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단톡방에 뜨개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사진을 올린 A는 요즘 오랜만에 갖게 된 여유 시간을 뜨개질로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직접 뜬 거라면서 작고 앙증맞은 핼러윈 호박 모양의 크로셰 액세서리를 보여주었다.

처음 뜬 거라지만 마무리가 꽤 꼼꼼해 보였다. 나 역시 한동안 뜨개질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예쁘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니 왠지 내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뜬 핸드폰과 카드지갑 정도가 들어가는 면실 크로스백 사진을 올려주었다. 어쩐지 A에게는 내가 뜬 소품이 아직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우와, 뜨개질이 취미셨나 봐요? 잘 뜨셨네요. 저도 이렇게 실용적인 거 뜨고 싶어요."

A가 보기에는 내가 뜬 크로스백이 그럴듯해 보였나 보다. 하지만 이젠 나도 안다. A가 막 뜨개질을 시작한 참이기는 해도 뜨개 소품의 완성도를 알아보는 눈이 생기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을 말이다.

몇 해 전 송년 모임 때의 일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동네 지인들과의 송년 모임에서 손수 만든 작은 아크릴 수세미를 2장씩 선물한 적이 있다. 맛있는 식사와 더 맛깔난 수다를 다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예쁜 종이로 포장한 수세미 꾸러미를 크리스마스 선물 겸 하나씩 건넸다. 비록 한 가지 색상에 이렇다 할 무늬도 없는 어설픈 네모 모양의 수세미였지만, 즐겁게 받아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뿌듯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때 내게서 수세미를 건네받은 지인들의 카톡 대문이 하나 둘 수세미 사진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봐도 앙증맞고 귀여운, 설거지통에 담그기조차 아까울 만큼 예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뜨개질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떴다. 내가 건넨 무미건조한 수세미에 비하면 어디에 내다 팔아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이 정도는 한다고 뽐을 내는 듯했다.

그때 처음 내가 만든 뜨개 소품이 남에게 내보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알았다. 이후에도 간단한 숄이나 작은 가방 같은 걸 뜨기는 했지만, 어느 한 곳쯤은 뜨개 책의 그림과 살짝 다른 부분이 반드시 생기곤 했다. 그러다 보니 선뜻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선물로 주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간혹 누군가 내가 만든 뜨개 소품에 관심을 보일성싶으면 언니가 만들어 준 거라고 둘러댔다.

반복되는 데자뷰, 목공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혼 때부터 아이들 장난감 박스나 간단한 선반, 작은 책장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썼다. 신혼집이 13평짜리 다세대 주택이다 보니 공간이 워낙 좁아서 기성품은 자리를 너무 차지하는 불편함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지출을 줄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모양이 그럴듯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원하는 크기의 소품을 마음에 드는 재질의 소재로 꾸밀 수 있었기에 사용상의 편리성만큼은 만족도가 좋았다. 목공을 어디서 배운 적은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망치와 톱으로 작은 선반이며 앉은뱅이 의자, 10칸짜리 받아쓰기 공책 하나와 필통 하나가 겨우 올려지는 작은 책상 같은 걸 뚝딱뚝딱 만드시는 모습을 지켜봤을 뿐이다. 아버지에게 못과 망치를 건네드리거나 사포질을 시키면 신나게 문질러댄 것이 전부였지만, 눈으로 다 배웠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가끔 만나는 지인이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집들이 선물로 뭘 줄까 고민하다가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작은 찻상을 마음에 들어 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그 찻상과 똑같은 찻상을 하나 만들어 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멀바우로 만든 작은 찻상
 멀바우로 만든 작은 찻상
ⓒ 왕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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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이 부부만 사는 그이에게 딱 맞춤한, 찻잔 두 세트와 찻주전자 하나를 올릴만한 크기면 되었다. 재료로 나무 상판 한 개와 그 상판을 지탱해 줄 곡선이 예쁜 철제 다리 4개를 주문했다. 나무는 단단하고 무늬가 예쁜 멀바우(merbau)로 정했다. 마감 칠만 잘하면 제법 그럴듯한 찻상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주문한 곡선 모양의 철제 다리는 웬일인지 상판과 균형이 딱 맞지 않았다. 네 다리 중 다리 하나가 바닥에서 살짝 뜨는 바람에 찻상 위에 힘을 가할 때마다 절룩거렸다. 궁여지책으로 충격 방지용 데코 보드를 좀 더 짧은 다리 밑에 2장을 덧대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나머지 3개의 다리가 더 짧아지는 바람에 상은 여전히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괜찮다고 예쁘기만 하니 그냥 달라고 했다. 찻상을 받아든 지인은 직접 만든 정성이 어디냐며 "이 정도의 뒤뚱거림은 애교지" 하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카톡이 왔다.

"언니, 다리 볼트를 좀 더 조이니까 균형이 딱 맞아요. 이제는 안 흔들려! 언니가 만드는 거 보니까 나도 만들 수 있겠어."

그 뒤로 그이는 남편과 함께 본격적인 목공의 세계에 진입했다. 시작하자마자 만들어내는 그이의 소품들은 디자인과 마감의 완성도에서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상대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목공 소품의 볼품없음을 또 한 번 자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 시간이 좋은 걸
 
몇 년 째 즐겨 입는 원피스와 몸빼 바지
 몇 년 째 즐겨 입는 원피스와 몸빼 바지
ⓒ 왕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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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과 목공은 한동안 시들했지만, 변함없이 나의 손을 즐겁게 해주는 재봉틀이 있었다. 그런데 둘째 언니의 진심 어린 조언(이라고 썼지만, 내게는 구박으로 느껴지는)으로 잠깐 또 한 번의 현실 자각 타임이 오긴 왔었다.

언니 말처럼 그동안 사들인 천값이면, 내가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더 예쁘고 멀쩡한 것들을 사고도 남았으니까. 가성비로 따지면 쓸데없이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짓이 아니라고 우기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내가 재봉질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우연히 예쁜 소품이나 에코백을 발견했을 때 사서 지니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좀처럼 제어가 잘 안 된다. 직접 천을 사러 가지 못하면 인터넷으로라도 주문하게 되고, 소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몰입하고 있다.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만큼은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신이 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주문처럼 생각한다.

'좀 못하면 어때, 나 좋으면 그만이지!'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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