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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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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이다. 나도 수능을 봤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20여 년 전 그날, 안양의 한 고등학교 고사장 책상에 앉아 벌벌 떨고 있던 내가 생각난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지만 그날, 그때의 기억은 뚜렷하다.

수능 한파라고 했던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엄마는 혹시라도 밥 먹다가 체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소화 잘 되는 반찬으로 쌌으니까 도시락 천천히 먹어라, 꼭 국물까지 다 먹어라" 신신당부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시험 보느라 긴장되어서 그 도시락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까지는 기억이 없지만.

당시 고입도 본 나지만, 대학 입시를 결정짓는 수능에 임하는 마음 가짐은 남달랐던 것 같다(물론 지나고 보면 다 추억에 불과하다만). 중간/기말고사, 모의고사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거니까. 정말 제대로 잘해보고 싶었달까.

마음 졸이기는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잠긴 문 앞에서 기도하는 엄마들은 그때 수능에도, 그전 학력고사 때도, 그리고 지금 수능 시험장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니까. 부모로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투명하게 비치는 순간.

수능날 기도를 하는 이유 

이미 오래 전 수능을 치른 나지만 수능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아마도 아이를 낳고 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아이도 언젠가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마음이 더 생겼던 것 같다(다가올 나의 고3 학부모 생활이 두려운 것은 잠시 접어두고 싶다).

그래서 당장 내 아이가 시험을 보지는 않지만, 종교는 없어도 기도는 했다(집이 또 마침 고사장 근처다). 아침 밥상에서 짜증나는 일이 없길, 오전 8시 10분 입실 전까지 지각 없이 사고 없이 다들 무사히 고사장으로 가기를 기도한다. 이날만큼은 수험생 아이들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자연스레 생겼다. 

내가 이 비슷한 기분을 느낄 때가 또 있다.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바로 돌잔치다. 시끌벅적한 잔치를 뒤로 무대 조명이 전부 꺼지고 엄마 아빠가 공들여 만든 동영상을 감상할 시간이면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소리 없이 조용히, 가급적 티 안 나게 울곤 했다. 

출산 후 잠 못 자는 백일, 애가 다치고 열이 날 때마다 가슴 졸이며 꼬박 새운 밤들, 이유 없이 우는 날마다 함께 울었던, 언제나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와 그것을 외면할 수 없어 괴롭고 고단했던 육아기의 기억이 몸에 아직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 살짝 그때의 기억을 들추기라도 한 것처럼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그때의 기억과 동시에 이 부모들도 그렇게 힘들게 그렇지만 기쁘고 행복하게 아이를 키웠겠구나 싶어 그 자체만으로 감동적이라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엄마가 되고, 처음 아빠가 된 이들 부부의 부모 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려는 마음으로,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일부러 돌잔치에 가곤 했다.

생각해보니 십몇 년 전 돌잔치하던 그 아이들이 오늘 시험을 치는 셈이다. 그러니 어찌 대견하고 기특하지 않겠나. 걸음마 겨우 떼던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서 지치고 때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만 견디고 견뎌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수능을 보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겠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엔 모두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은 똑같다. 사회에 바로 진출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또 대학을 가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대견하다. 동시에 짠한 마음도 있다. 아이들이 보호자 품에 있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을 나는 아니까.

얼마 전 고2 아이의 주민등록증 발급(만 17세 이후) 통지서를 받은 선배 언니가 '뭔가 씁쓸하면서도, 대견하면서도 시간이 아쉬우면서도 복잡 미묘하다'는 말이 뭔지 나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수능이 인생에서 전부는 아니다' 같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구태한 조언 따윈 하지 않으련다. 다만 고사장 입실부터 퇴실까지 수능 하루 일정을 무사히 치르고 나온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믿고 묵묵히 지켜봐 온 부모님들에게는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모두 고생하셨고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그리고 오늘 저녁은 '무조건' 맛있는 거 먹고 푹 잘 주무시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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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2021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2017년 그림책 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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