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호랑가시나무의 빨강 열매.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로 디자인돼 쓰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빨강 열매.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로 디자인돼 쓰이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빨강 열매가 유난히 빛난다. 먼나무, 이나무, 호랑가시 등 감탕나무에 속하는 열매들이다. 울타리로 심어놓은 남천도 있다. 자연스레 '사랑의 열매'가 떠오른다.

지난 13일 호랑가시나무를 찾아갔다. 목적지는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상구마을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는 별나게 생겼다. 한쪽은 열매가 무성하게 달리는데, 다른 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두 얼굴의 나무다. 올해는 유난히 열매가 더디, 그것도 적게 달리고 있다.

400년 전 심은 나무, 희한하네
  
"햇빛이 많이 비치고 안 비치고 차이도 아니고, 흙이 다른 것도 아녀라. 암수 두 나무의 가지가 자연스럽게 붙었다고 합디다. 나무를 처음 심을 때, 암나무와 수나무를 붙여갖고 감아서 접목했다는 얘기도 있는디. 얘기를 듣고 본께, 그렇게 보입디다."

경운기를 타고 들판으로 나가던 마을 어르신의 말이다. 어르신의 말을 버무리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 한쪽은 열매가 무성한데, 다른 한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2021년 12월의 모습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 한쪽은 열매가 무성한데, 다른 한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2021년 12월의 모습이다.
ⓒ 최근영

관련사진보기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 연리목. 암수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 있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 연리목. 암수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호랑가시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은행나무처럼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맺힌다. 나무를 심은 옛사람도 암·수나무가 있어야 꽃가루받이가 이뤄지고, 열매도 맺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마을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살기를 바라는 속내도 담았을 것이다.

호랑가시나무는 400여 년 전 오득린(1564~1637)이 심었다고 전한다. 오득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이순신을 찾아갔다. 오득린은 이순신을 도와 큰 공을 세웠다.

오득린이 마을에 정착할 무렵의 얘기다. 마을의 서쪽은 숲으로 울창한데, 동쪽은 들판으로 휑-했다.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서 오른쪽이 약했다. 그가 동쪽에 나무를 심은 이유다. 약한 지세를 보완해주는 비보림(裨補林)이다.
  
상구마을 입구. 철 지난 천일홍과 메리골드, 그리고 코스모스가 줄지어 반겨준다.
 상구마을 입구. 철 지난 천일홍과 메리골드, 그리고 코스모스가 줄지어 반겨준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팽나무와 모정이 어우러진 상구마을. 모정 앞에 효자 오달주와 효열부 함양박씨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팽나무와 모정이 어우러진 상구마을. 모정 앞에 효자 오달주와 효열부 함양박씨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그때 심은 팽나무가 마을을 감싸고 숲을 이루고 있다. 숲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그믐날에 팽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내왔다.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나무 아래에도 묻었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빌었다.

한쪽에 있는 호랑가시나무도 애지중지했다. 가지를 하나라도 꺾으면 몸에 큰 병이 든다고 믿었다. 상여가 지날 때도 나무 앞을 지나지 못하도록 했다.

오득린은 1564년에 태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 때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이순신의 막하에서 여러 해전에 참전했다.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에도 참가했다.

호랑가시나무 앞에 오득린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선무원종일등공신 나주오씨득린기적비(宣武原從一等功臣 羅州吳氏得麟記蹟碑)'라고 새겨져 있다. 그를 기리는 경승재(景承齋)가 마을 앞 산자락에 있다. 경승재는 나주오씨의 모임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와 오득린 기적비. 상구마을의 상징이 됐다.
 호랑가시나무와 오득린 기적비. 상구마을의 상징이 됐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마을회관이 내부 공사만 하는 이유

철 지난 천일홍과 메리골드, 사루비아 그리고 코스모스가 줄지어 반겨주는 상구마을은 나주 오씨의 오랜 집성촌이다. 마을 입구에 나주 오씨 세장산이 있다. 팽나무 숲그늘에 효자 오달주와 효열부 함양박씨를 기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마을회관은 내부 개보수 공사로 어수선하다.

"꽃이 이쁘지요? 여름꽃인데, 아직껏 피었네요. 우리 주민들이 심은 겁니다. 집에 남아있는 꽃씨를 갖고 나와서 심었어요. 행정기관의 지원 없이. 우리 동네는 70년대에 새마을사업도 잘 했어요. 마을회관도 그때 하사금으로 지은 겁니다. 주민들이 울력을 해서. 우리 마을이 '대한늬우스'에도 나오고 그랬어요." 오병엽(70) 상구마을 이장의 자랑이다. 마을회관의 겉모습을 그대로 두고, 안에만 고치는 이유다.
   
상구마을의 팽나무숲. 400여 년 전 오득린이 마을의 약한 지세를 보완하려고 심었다고 전한다.
 상구마을의 팽나무숲. 400여 년 전 오득린이 마을의 약한 지세를 보완하려고 심었다고 전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호랑가시나무의 빨강 열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 외에, 다른 나무에는 열매가 무수히 달려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빨강 열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 외에, 다른 나무에는 열매가 무수히 달려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상구마을 호랑가시나무의 키가 5.5m, 가지는 허리 높이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사방으로 뻗었다. 둥그렇게 펼쳐져 소담스럽다. 밑동의 둘레는 1.7m, 두 팔을 벌려도 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천연기념물(제516호)로 지정됐다. 2015년엔 바로 옆의 축사를 없애고 주변 정비까지 말끔히 했다.

호랑가시나무는 언뜻 거칠게 보인다. 두꺼운 이파리의 끝에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다. 진녹색으로 윤기도 흐른다. 열매는 빨간색의 콩알만 한 크기로 무수히 달린다. 이파리와 열매의 빛깔이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속내는 다소곳하다. '행복'과 '평화'를 꽃말로 지니고 있다. 빨강 열매는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로 디자인돼 쓰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호랑이가 이파리에 돋아난 가시로 가려운 데를 긁었다고 이름 붙었다. '호랑이 등 긁기 나무'다. 가시가 호랑이 발톱처럼 매섭게 생겼다고 '호랑이 발톱나무'로도 불린다. 억세고 단단한 가시를 호랑이도 무서워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햇볕 다사로운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자생한다. 꽃은 봄에 피고, 향기가 짙다. 열매는 늦가을부터 겨울에 맺힌다.
  
상구마을회관 전경.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정부의 하사금과 주민의 울력으로 지었다. 지금은 내부 수리공사를 하고 있다.
 상구마을회관 전경.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정부의 하사금과 주민의 울력으로 지었다. 지금은 내부 수리공사를 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김장용 배추가 자라는 상구마을의 한낮 풍경. 상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김장용 배추가 자라는 상구마을의 한낮 풍경. 상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상구마을은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 1구에 속한다. 오래 전 삼포강을 사이에 두고 상리, 하리로 나뉘었다. 강을 따라 거북이 내려간 곳이 하리, 올라간 곳이 상리였다. 이후 두 마을이 합해지면서 '상구(上龜)'가 됐다. 지금은 40가구 60여 명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오순도순 살고 있다.

상방리 2구는 석해(石海), 3구는 백두(白頭), 4구는 복사초리(伏蛇草理)로 불린다. 복사초리는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전투를 한 곳이기도 하다.
 
호랑가시나무와 오득린 기적비. 나주 상구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호랑가시나무와 오득린 기적비. 나주 상구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