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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와 대전시교육청은 지난 17일 오후 3시 교육행정협의회를 열어, 내년 3월부터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의 보호자에게 각각 매달 13만원, 9만원의 유아교육비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대전의 만 3~5세 유아는 총 2만6600여 명인데, 그중 공립유치원 유아 3300여 명을 제외한 2만3300여 명에게 269억 원의 유아교육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책 결정은 지난 9월 29일 가결된 '대전광역시 유아교육비 지원조례'에 따른 것이다. 사립유치원 유아 1만4800여 명이 받게 될 유아교육비 192억여원은 시와 교육청이 50%씩 분담하기로 했고, 어린이집 유아 8500여 명의 교육비 76억여 원은 대전시가 전액 부담할 예정이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며 유아교육 무상화를 공약한 바 있다.

한편, 대전광역시교육청은 차별 해소를 위해 대전 관내 공립유치원 104곳도 사립유치원과 같은 수준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립과 마찬가지로 매달 13만원의 예산을 지원하되,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하는 게 아니라 우회 지원한다는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13만원의 절반인 6만5000원은 (특성화 프로그램을 그만큼 운영하는 경우) 학부모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6만5000원은 시설 개선 및 차량 운행, 유치원 운영비 등으로 간접 지원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성화 프로그램은 방과 후에 외부강사가 운영하는 영어, 과학, 음악, 미술 등의 특별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공․사립유치원 격차의 주된 요인이다. 대전시교육청이 김민숙(더불어민주당, 비례) 교육위 소속 시의원에게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공립유치원은 교육당국의 엄격한 지침으로 하루 1개 이내로 운영하는 데 반해, 사립유치원은 현재 평균 3.8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부모 부담 교육비가 공립유치원은 평균 3만 원이지만, 사립유치원은 24만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에게만 교육비를 지원하면 사립유치원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공립유치원은 고사 위기로 내몰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대전교육청이 '우회 지원' 방식의 공립유치원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대전의 공립유치원 취원율이 18.6%로 전국 최하위이고 정원 충원율도 64.5%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서,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미흡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대전교육청의 이번 정책 결정은 전국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획기적인 의사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유아교육 무상화 취지로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사립유치원의 학부모 부담 교육비를 덜어주는 정책을 펼쳐왔으나, 대전처럼 공립유치원에도 같은 수준의 지원책을 마련한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충남은 만 3~5세 사립유치원 유아에게 19만3천원을, 인천은 만 5세 유아에게 20만7천원을 지급하고 있다. 학부모에게 유아교육비를 지원하면 일부 사립유치원에서 특성화 프로그램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이윤 추구에 나설 가능성이 크므로 결과적으로 사립유치원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그래서 충남교육청과 인천교육청은 '견제 장치'로 사립유치원에 각각 3만원, 7만원의 학부모 부담 교육비 상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공립유치원 학부모 교육비 경감까지는 이르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대전교육청이 고사 위기에 놓인 공립유치원의 활성화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기까지는 전교조대전지부의 역할이 컸다. 전교조대전지부는 조례 제정 움직임을 인지한 9월 19일을 시작으로 11월 17일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성명을 발표하였고, "유아교육 무상화 취지에는 공감하나 공립유치원 지원 대책도 같이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공립유치원 교사 결의대회도 열었고,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행정사무감사 질의도 요청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대전지역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바라는 공립유치원 학부모들은 18일 오전 대전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시와 대전교육청은 공사립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유아에게 차별 없이 교육비를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대전지역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바라는 공립유치원 학부모들은 18일 오전 대전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시와 대전교육청은 공사립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유아에게 차별 없이 교육비를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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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뿐만 아니라 공립유치원 학부모들도 전면에 나섰다. 대전지역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바라는 공립유치원 학부모들은 지난 10월 18일 오전 대전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시와 대전교육청은 공사립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유아에게 차별 없이 교육비를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학부모 기자회견의 파장은 컸다. 대전교육청은 차별 해소 및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

대전의 유아교육비 지원 정책은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공립유치원 학부모의 부담도 덜어주는 데 나름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출생으로 날이 갈수록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에서 지자체와 지방의회, 교육청, 교원노조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친 것만으로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태그:#대전 유아교육비, #공립유치원 활성화, #저출생 극복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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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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