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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가을이 끝나간다. 길가 나무엔 우수수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다. 쌀쌀한 날씨에 절로 옷깃을 여민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찾아오겠지. 예측 불가한 세상 속에서도 계절만큼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요즘 계절만큼이나 첫째의 변화가 놀랍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빠, 수고했어"란 살가운 말도 건네고, 시간 되면 옆에 앉아 입에 침까지 튀기며 축구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봄날의 햇살처럼 생기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 속 명장면이 떠올랐다. 검은 슈트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터미네이터가 경찰관에게 했던 말 'I'll be back' 최근엔 진로이즈백이 더 유명하지만.

드디어 길고 길었던 사춘기의 터널이 끝나고 다시 예전의 사랑스러운 아이로 돌아오는 것인가.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언제 다시 송곳 같은 말과 행동으로 마음속을 후벼팔지 모를 일이니까. 어디 '사춘기 종료' 설문지라도 있다면 해보겠지만 없으니 개별 테스트를 해보는 수밖에. 마침 아버지께서 주말에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자고 했다. 추석 때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나셨는가 보다.
 
할아버지 산소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늠름한 아들
▲ 할아버지 산소 할아버지 산소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늠름한 아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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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장 하기 싫어하는 대표적인 일이 밖에 나가서 사람 만나는 일이었다. 더구나 게임 하기 가장 좋은 황금 같은 주말이었다.

"아들, 이번 주말에 할아버지가 산소 같이 가자는데 같이 갈래?"
"산소? 누가 같이 가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랑 동생이랑 다 같이."
"자리도 좁은데 다 갈 필요가 있나. 내가 대표로 갈게. 엄마랑 동생은 집에 있으라 해."

 
할아버지 산소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늠름한 아들
▲ 할아버지 산소 할아버지 산소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늠름한 아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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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차 안에서 할머니의 질문 공세에 전 같으면 뚱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겠지만, 적당히 답변도 잘 하고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다. 차 앞 유리 뒤로 비친 다정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산소에 도착해서는 짐도 척척 들고, 높은 턱에 올라가기 힘들어하는 할머니 손도 잡아 주었다. 잡초를 제거하라는 말에 열심히 잡초를 제거하고, 비석도 물티슈로 깨끗이 닦았다.

듬직한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키만 불쑥 큰 줄 알았더니 그사이 마음은 더 많이 자랐구나. 벌초를 마치고 점심 식사 자리에서도 말도 잘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테스트 결과는 물론 합격이었다. 이제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려나.

사춘기가 끝났다는 증거
 
지인과 만나면 자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지인과의 만남 지인과 만나면 자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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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지인과의 모임이 있었다. 다들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어서 만나면 자연스레 아이들 이야기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춘기'라는 공통분모로 성토대회가 이어졌다.

사춘기에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만큼이나 그걸 온몸으로 받아내는 부모의 스트레스도 상상이었다. 세상 온순했던 아이가 한순간에 헐크로 돌변하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른 채 소용돌이 속으로 함께 빠져 들었다.

느낌 탓인지 표정들이 전보다 한결 밝았다. 근황을 묻다가 A가 중학교 3학년인 딸이 사춘기의 정점을 찍고 내려온 것 같다며 살 것 같다며 포문을 열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예민하게 밀어만 내더니 이제는 굳게 닫힌 문을 조금씩 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대화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마치 사면이 통유리인 방에 갇혀 저만 바라보다가 이제 조금씩 타인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이 무척 공감이 갔다. 그 뒤로 다른 지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나눴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도 그랬다. 전에는 나와 아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잔소리로만 여기고 밀어내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면이 보였다. 더 나아가 본인이 잘못한 점에 관해서도 수용하려 노력했다. 소위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 셀만은 '사회적 조망 수용'으로 설명했다. 사회적 조망 수용의 의미는 자신과 타인의 관점을 구별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건이나 사물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무엇보다도 같은 상황에 대해 다른 생각을 했다고 해서 틀렸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이 능력이 잘 발달하여야 나중에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단 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도 이 과정을 거치며 함께 성장했다. '아직 어린데 무얼 알겠어', '내가 하나라도 더 알려주어야 해', '말귀 좀 제발 알아들어라'라며 일방적으로 내 입장만 주입하려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아이도 나름의 속도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기다려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이제는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으니 잘 되라고 했던 아빠 마음도 조금은 이해해 주려무나.

얼마 전 길에서 엄마, 아빠의 양손을 꼭 붙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가를 본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조금만 걸어가도 안아달라, 업어달라 때 쓰는 탓에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훌쩍 커서 저만치 떨어져 걸어가는 아이를 보면 새삼 그 시절이 그립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친밀하게 가까운 시기는 금세 지나갔다. 그렇다면 서로 치고받았던 지금의 사춘기 시절도 지나면 그리운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그런데 요사이 다른 문 하나가 굳게 닫혔다. 바로 둘째의 방이다. 더군다나 부쩍 말투도 냉랭해지고, 짜증이 늘었다. 이 향기가 익숙한 것은 왜일까. 첫째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던 시기와 맞물려 슬슬 둘째의 사춘기가 시작되려나 보다.

벌써 몸 안의 세포가 위험을 감지하고 경계 태세를 갖췄다. 또다시 전쟁이란 말인가. 그래 한번 가보자. 다만 지난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이번엔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하는 거야. 나는 할 수 있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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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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