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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ẹ yêu con trai nhất trên đời."(메 이우 꼰 짜이 녓 쩬 됴이)
엄마는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해


결혼이주배경 가정에게 가장 무겁고도 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 바로 '언어'다. 한국으로 이주해 한국어를 배우는 노력은 평생에 걸쳐 계속되지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유지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결혼이주여성들은 말한다.

그렇기에 낯선 땅에서 자녀를 길러낸 이주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사회의 편견과 선, 가정에서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견디며 하루하루 자녀를 보호하고 사랑해온 기록과 다르지 않다.

충북 옥천 지역에 터전을 튼 결혼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간 자녀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도 함께.

※이 기사에선 본문의 일부를 싣습니다. 결혼이주여성 엄마들이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등 기사 전문은 <월간 옥이네>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아무리 말해도 내 마음은 다 말해지지 않을까요?
- Trần Thị Ngát(쨘 티 응앗, 장다영)씨, 베트남 출생, 2006년 이주

 
쨘 티 응앗씨
 쨘 티 응앗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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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베트남어 가르치고 싶었죠. 근데 실제로 그렇게 하진 못했어요. 첫째 낳았을 땐(2007년 무렵) 옥천에 결혼이주여성이나 다문화 가정 지금만큼 많지 않았어요. 협의회(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가 생기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이 목소리도 내고 다문화 인식도 변하고 있다지만, 그땐 지금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우리 아들이 다문화(가정)라는 게 밝혀져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베트남어 가르치면 한국어 늦게 배운다' 이런 말까지 들리니까 포기한 거죠. '조금 더 크면 가르치자'고 생각하다가 중요한 시기가 지나갔죠."

'두 언어를 동시에 가르치면 한국어가 늦는다더라' 같은 말들은 매일 밤 잠자리에 누운 쨘 티 응앗씨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자신의 욕심으로 섣불리 베트남어를 가르쳤다가 혹여나 자녀가 피해를 입을까 불안했다.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문화라는 말은 올바르게 자리잡지 못한 채 사회를 떠돌았다. 편견의 언어와 시선이 견고하던 때였다.

"아이들 키울 때 엄마한테 한국어만 쓰라고 하는 집 많았어요. 남편도 그렇고 시어머니도 그렇고. 자식이 한국어 늦게 배울까 봐 그런 거겠죠. 근데 그거 엄마가 한국말 얼만큼 할 수 있는지 생각 안 하고 그러는 거죠. 엄마는 베트남어로 말하고, 밖에서는 한국어 듣고 쓰고 그러면 아이들 자연스럽게 두 가지 언어 받아들일 수 있는 건데, '왜 베트남어 하냐' 그러면서 별로 안 좋게 보는 거죠."

이같은 부정적인 인식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첫째의 이중언어 교육 시기를 놓쳐버린 것 같다며 쨘 티 응앗씨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조금 더 크면 가르쳐야지' 마음속으로 되뇌던 다짐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바빠진 생활 탓에 쌍둥이인 둘째와 셋째를 출산했을 땐 베트남어를 가르칠 시간이 더 부족해진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진 쨘 티 응앗씨는 주변에서 이중언어 교육이나 교재 등을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인구는 줄고 다문화 가정은 점점 늘어간다는데,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데 왜 엄마 나라 언어를 가르치는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 걸까.

"애들 어느 정도 키워놓고부터는 회사 생활하고, 집에 와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하고 할 일 계속해서 더 많아지죠. 사는 게 바쁘니까 가르칠 환경이 더 안 되죠. 아이들이랑 같이 이중언어나 다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평일이나 주말 오후에 시간 내야 하는데 업무 특성상 잔업하거나 특근하고. 그럼 시간 낼 수가 없죠. 베트남어 동화책 한 권 읽어주고 싶어도 구하기도 어렵고, 집에 오면 아이들 이미 잘 준비하니까 시간 안 되는 거예요.

어쨌든 먹고 살려면 일 빠지면 안 되잖아요. 옥천은 농촌이니까 면에 농사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럼 더 힘들죠. 농사엔 주말도 없으니까. 그리고 면에는 베트남어 교실이나 아이들이랑 가서 얘기할 수 있는 곳 읍보다 더 없으니까."

어느덧 둘째와 셋째는 학령기에 진입했고, 첫째는 고등학교 입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이주민 부모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국면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쨘 티 응앗씨의 시름도 날로 깊어간다. 자녀의 진학과 진로를 결정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할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첫째가 곧 고등학교에 가는데, 이과나 문과 이런 말을 저는 잘 모르니까요. 한국사는 더 모르고요. 한국인 이모부가 저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죠. 입시 고민 잘 들어주고, 방법도 아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보다 믿고 의지할 사람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미안하고 마음 아플 때 있죠. 엄마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저도 깊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려워요."

쨘 티 응앗씨는 세 자녀가 외할아버지·할머니에게 어느정도 친밀감을 느끼는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엄마 나라 친척과의 유대감 문제도 털어놓았다.

"저희 어머니 한국에 와계시는데도 아이들과 대화 잘 안 되죠. 얼굴 보고 간단한 인사 몇 마디나 하고...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 잘하는 이모하고는 친하게 지내는데, 한국말 못하는 할머니는 가까이 살았어도 친해지기 어렵죠. 그것만 봐도 가족 간에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죠. 우리 애들 베트남 음식도 좋아하고, 놀러 가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베트남어 못하니까 엄마 없이는 외할머니집 안 갈 거라고 하죠."

나는 엄마고, 나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 있으니까
- Nguyễn Thị Bích Thảo(누웬 티 빛 타오, 안유정)씨, 베트남 출생, 2006년 이주

 
옥천 누웬 티 빛 타오씨와 아들 박성재씨
 옥천 누웬 티 빛 타오씨와 아들 박성재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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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을 낳았어요. 그땐 지금만큼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두 아이를 양육했어요. 두 가지 동시에 가르칠 방법을 잘 몰라서요. 그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한국말 늦다는 말이 있었어요. 정말 나 때문에 애들이 말이 늦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에 '가나다라' 노래나 동요 영상 같은 걸 찾아보고 혼자 연습해서 아이들에게 불러줬던 생각도 나요.

누웬 티 빛 타오씨는 한국으로 이주하기 전 베트남에서 3개월 정도 한국어를 익혔다. '안녕하세요', '식사하세요' 같은 단순한 말들이었지만, 생활에 의지가 됐다. 한국 이주 후에는 방문 선생님과 남편을 통해서, 청산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는 면사무소 한국어 교실을 찾아 한국어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낯선 땅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됐지만,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자녀를 양육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라 회상한다.

"지금은 그때랑 다르게 생각해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말을 시작할 때부터 엄마는 엄마의 언어로, 아빠는 아빠의 언어로 양육하고 소통하는 게 좋다고요. 그래야 사춘기나 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아이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얘기할 수 있어요. 사실 아이들이랑 남편이 학교 공부 얘기하면 저는 다 못 알아들을 때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애들도 학교 이야기는 점점 남편이랑만 하게 되고요. 학교 선생님과 얘기할 땐 남편이 상담하더라도 아이들한테 직접 듣고 싶은 얘기도 있는데 그럴 때 좀 속상하죠. 나는 엄마고, 나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 있으니까."

그는 자녀가 두 가지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언어의 벽을 허무는 색다른 교감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딸이 이중언어말하기대회에 나갔던 때의 행복했던 기억 덕분이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제가 권유했거든요. 엄마 나라 말 배우는 거니까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대회 준비할 때 저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그럼 제가 발음도 알려주고, 뜻도 알려줬어요. 내가 뭔갈 알려준다는 게 좋았어요. 딸이 베트남말 한다는 그 자체도 행복했고, 남편도 신기해하며 들었죠. 대회 날 딸이 발표하는 걸 듣는데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했어요.

둘째 키울 때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학교에서 다문화 수업 듣고 집에 왔는데,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xin chào(신 짜오)'는 격식을 차릴 때 쓰는 말이고, 가까운 사이는 그냥 'chào(짜오)'라고 인사하는 거라는 얘기를 저에게 했어요. 진짜 기뻤죠. 이런 거 사소해 보이나요? 아니에요. 계속되면 엄마랑 아이들 언어나 문화에 관한 대화 많아지잖아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엄마 나라 문화 얘기할 수 있고,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이 엄마 나라이기 때문에 베트남에 관심 있구나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고 흐뭇해지죠."

하지만 둘째의 다문화 수업도, 첫째의 이중언어 말하기도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미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한 자녀들이 낯선 언어와 문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웬 티 빛 타오씨가 청산으로 이주해 면사무소에서 또 방문교육으로 한국어를 배웠던 것처럼 친구들을 통해 주변에 이중언어 수업이 있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시간을 내 가르쳐보려고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문화 센터나 교육도서관이 모여있는 옥천읍 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면에서는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청산 말고 청성이나 안남에서는 수업있다는 말 듣기도 했는데, 하루하루 바쁜데 아이들 어떻게 거기까지 데려다주고 또 데려오겠어요. 어디에서는 하고, 하지 않고 이런 것보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곳을 거점 삼아) 어린이집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요."

누웬 티 빛 타오씨 옆에서 이야기를 곰곰이 경청하던 아들 박성재(14)씨도 이중언어 교육과 관련해 의견을 냈다. "자신을 키울 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인터뷰에 함께 왔다는 그다.

"베트남어 배울 기회는 거의 없었어요. 엄마도 한국어 할 수 있으니까 큰 문제 없다고 느꼈고요. 그런데 제가 베트남어를 할 줄 알았다면, 지금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나 역사 이야기도 그렇고, 학업에 관해서도 그렇고요. 엄마 통역 없이도 외갓집 식구들이랑 얘기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많은 문제가 해결됐을 것 같아요. 만약 베트남어 공부할 수 있으면 가서 배울 거예요. 엄마 나라니까."

마지막으로 누웬 티 빛 타오씨에게 자녀가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두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학교 공부나 진로에 관한 이야기요.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오늘은 뭘 배웠는지, 왜 어려웠는지 그런 거요. 그리고 두 번째는 베트남에 있는 우리 가족 얘기요. 이모와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못한 얘기 자랑스럽게 얘기해주고 싶고, 외할머니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지 그런 얘기 아이들과 오래오래 나누고 싶어요."

[다음기사]
"엄마 나라 말 쓰지 말라는 어른들… 하지만 전 포기 안 해요" http://omn.kr/21qq2

월간옥이네 통권 65호(2022년 11월호)
글‧사진 서효원, 번역 도움 Nguyễn Thị Thúy(한지영)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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