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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슈룹>이란 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다. 처음에 드라마 제목이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슈룹'은 순우리말로 '우산'이란 뜻이었다. 중전인 엄마가 대군들의 우산이 되어준다는 의미로 그런 드라마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궁궐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많은 음모와 시기, 질투가 난무한다. 대군들이라고 그 많은 어려움에서 비켜설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음모의 한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해 훨씬 더 고군분투해야 한다. 김혜수가 중전의 역할로 나오는데 카리스마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조선판 대치동 이야긴 줄 알았더니
 
tvN <슈룹>의 한 장면.
 tvN <슈룹>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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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니 관전 포인트가 대치동보다 치열한 '왕실교육', 궁중 사모들의 '왕세자 경쟁'이다. 대치동 학원가나 1:1 수업, 족집게 과외 등의 치열함이 왕실에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야말로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잘 시키고 있는지 돌아본다. 확신할 수 없다. 공부가 싫다는 아이에 맞춰 최소한의 학원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조차도 싫어한다. 하루에도 한숨을 몇 번씩 쉰다. 난 그런 아이를 보며 함께 한숨을 쉬기도 하고, 어떨 땐 아이가 보는 유튜브를 같이 보며 깔깔 웃기도 한다. 중심을 못 잡겠다.

'흥! 엄마가 뭐 슈퍼우먼이야? 어떻게 우산처럼 아이의 어려움을 다 막아줘? 어떻게 맞는 교육을 딱딱 시켜?'

괜한 자격지심에 <슈룹>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인이 드라마 <슈룹>에서 중전 역할을 맡은 김혜수에게 오은영 박사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응? 그 드라마는 조선판 대치동 교육 얘기 아니었어?'

궁금한 마음에 못 봤던 회부터 다시 챙겨보았다. 이 관점으로 드라마를 보니 놓쳤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몸이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계성대군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고 보호해주는 중전. 다른 이들이 별로 기대하지 않는 성남대군을 믿어주는 중전.

세자를 뽑는 경합이 치러질 때 후궁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제 자식 밀어주기에 힘을 쏟지만 중전은 음모로부터 아들을 지키는 일만으로도 바쁘다. 오히려 중전의 곁을 보필하는 상궁들이 대군들의 경합 우승을 위해 다른 후궁들처럼 편법을 쓰지 않아도 되냐며 걱정한다. 그러나 중전은 자신만의 소신대로 아이들을 돕는다.
 
<슈룹> 중전(김혜수 역)의 네 아들.
 <슈룹> 중전(김혜수 역)의 네 아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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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나니 난 적어도 후궁들처럼 자식을 통해 내 꿈을 이루려 한다거나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달달 볶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나도 아이를 믿어주는 괜찮은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목에 힘이 들어갔다.

다음 날, 점심때쯤 아이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나에게 왔다.

"엄마, 우리 반 아무개 엄마가 나에게 카톡을 남겼어.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내 전화로 연락하셨는데? 전화 좀 달라고 하셔."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의 핸드폰을 휙 빼앗아 카톡 내용을 봤다. 아이의 실수로 아이 친구의 부모님께 사과한 적이 몇 번 있다. 또 그런 일이 아닌가 싶어 먼저 아이를 잡는다.

"너 또 무슨 잘못 한 거 아니야? 잘 생각해 봐. 아무개 엄마가 갑자기 왜 나를 찾겠어?"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 학교 엄마들과 거의 교류가 없는 편이다. 토요일 점심, 게다가 코로나로 격리하고 있는 딸과 나에게 전화를 부탁하는 거라면 분명 우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아이도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서요. 주말이라 담임 선생님과 통화가 안 되네요. 혹시 격리하는 절차나 제출해야 할 서류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 머쓱해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의 눈에는 서운함이 가득하다. 힘이 들어갔던 목에 스르륵 힘이 빠졌다. 내 소신대로 교육한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내 감정에 따라 하고 있었다.

아이의 모든 어려움을 엄마인 내가 다 막아줄 순 없지만 든든한 버팀목은 될 수 있다. 아이가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는 있다. 사실 그 힘은 엄마가 자녀를 믿어주는 데서 나올 것이다. <슈룹>에서 김혜수가 그랬듯. 다시 결심. 먼저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긍정적으로 반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엄마도 성장하는 시간
 
드라마 <슈룹>의 한 장면.
 드라마 <슈룹>의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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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다가 학교 가니까 애들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
"아, 학원 가기 싫다. 엄마, 나 배가 좀 아픈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격리가 끝나고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온 딸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진다. '일주일이나 학원을 빠져놓고 학원을 안 가다니. 너무 하는 거 아니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학교에 가니 힘들지? 우리 딸 고생 많았네" 하고 말했다. 학원은 집에서 조금 쉬다가 시간을 늦춰서 가보자고 했다. 아이의 불평이 누그러졌다.

글을 정리하려고 드라마 <슈룹> 공식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 보니 예전엔 보고도 그냥 넘겼던 마지막 관전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자녀가 자란 만큼의 엄마의 성장.'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인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내가 자라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가 없었으면 나의 치졸함과 나의 가식을 대면하는 일도, 내 바닥을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으니 이젠 자랄 일만 남았다.

처음 이 드라마의 제목을 보고 엄마가 아이의 우산이 되어 모든 걸 막아주라고 하는 것 같아 싫었는데, 생각해 보니 우산도 모든 비를 막진 못한다. 그러나 우산이 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되고 든든하다. 

기왕에 아이에게 우산이 되어 줄거라면 아주 튼튼한 장우산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내 역할은 때때로 거센 바람과 비가 들이칠 수도 있는 우산이라는 것을, 모든 걸 막아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란 것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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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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