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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최현진 일병

공군 군번 18-7000XXXX. '-14도' 냉동고의 빨간색 숫자가 깜빡였다. 한 달에 한 번, 어머니 송수현 씨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의무사령부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한다. 고 최현진(공군병 787기) 일병이 2018년 11월 26일에 사망하고 1465일(2022년 11월 30일 기준)이 됐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군 상급자의 성폭력으로 사망한 고 이예람 중사 바로 옆에 최 일병이 안치되어 있었다. 왜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을까.
 
고 최현진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는 한 달에 한 번, 국군수도병원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사진: 정현환)
 고 최현진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는 한 달에 한 번, 국군수도병원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사진: 정현환)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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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에게 24가지 업무를 지시했던 공군 간부들

2018년 11월 26일, 만 22세 나이에 고 최현진 일병은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E동 생활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8년 12월 5일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헌병대대(현 군사경찰)에서 작성한 수사보고에 따르면, 망인은 자대 배치를 받고 총 24가지 업무를 했다. 

"간부들이 사망자에게 주인원 명부, TO/PS, 배속안, 화생방, 성폭력, 자살, 청렴, 신체검사, 체력검정 실시 현황 자료, 성과상여금 평가자료, 상병 진급자 건강검진 명단, 방독면 안경 보유 현황, 부모 초청 행사 출입자 현황, 장병 특별정신 교육, 정비기부 및 정비병 현황..."

이 중 대다수 업무는 징집된 군인이 해야 될 일이 아니라 '간부'가 직접 챙겨야 될 업무였다. 하지만 고 최현진 일병은 '총무'라는 직책을 받고, '진급자 건강검진 명단', '방독면 안경 보유 현황', '전시숙영계획' 등의 일을 혼자서 도맡았다.

이러한 상황에 최 일병은 주변 동료 병사 여러 명에게 육체적 심리적 고충을 호소했다. 동시에 공군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보고하며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묵살당했다. 부당한 업무지시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 문제를 제기했으나 해결되지 않았던 정황은 동료 병사의 진술서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고 최현진 일병이 사망한 이후 2018년 11월 19일 헌병대대 수사실에서 이뤄진 수사에서 전아무개 일병은, "그때도 주간기지방호 훈련이 끝난 후에 야근을 해야 한다고 저에게 토로하였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같은 조사에서 심아무개 일병은 "군수 업무 담당 중사가 자주 야근을 시켰다", "하기 싫다고 하면 '너는 거부권이 없다'(라고 했다)"라며 망인이 이 내용을 메일로 보냈다고 대답했다. 덧붙여 심아무개 일병은 최 일병이 "진짜 죽고 싶네용 ㅜㅜ"이라고 했다고 진술, 망인의 지속적인 야근에 대해 "다른 행정학교 동기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한 바 있다"라고 답변했다.
 
2018년 12월 5일에 작성된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헌병대대 수사보고서 일부(사진: 정현환)
 2018년 12월 5일에 작성된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헌병대대 수사보고서 일부(사진: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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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극단적 선택

고 최현진 일병의 지속적인 업무과다는 결국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2018년 12월 4일 헌병대에서 이뤄진 참고인 진술에서 심아무개 일병은, "故人(고인)인 최현진 일병이 사망 전 병사들 사이에서는 한 달 정도 전에 대대본부 간부들이 故人인 최현진 일병에게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심아무개 일병은 군사법경찰관 중사가 "평소 故人이 군생활로 인하여 특별히 힘들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었나요"라는 물음에 "윤아무개 일병으로부터 간부들 때문에 故人인 최현진 일병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故人의 사망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라는 질문엔, "제 생각에는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같은해 12월 5일 최 일병의 동기인 전아무개 일병도 "사무실에서의 트러블 때문에 힘들어했다", "업무적인 일이나 간부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였습니다"라고 답변했다. 
 
2018년 12월 5일에 작성된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헌병대대 수사보고서 일부
 2018년 12월 5일에 작성된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헌병대대 수사보고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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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책과 꾸짖음, 그리고 직무유기

업무과다와 스트레스는 잦은 질책과 꾸짖음 속에서 점점 더 심해졌다. 2018년 12월 4일 자 진술조서에서 권아무개는 "일주일에 10~15회 정도 질책하였다"라고 진술했다. 동료 병사 김아무개는 2018년 12월 12일 자 진술조서에서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Y가 망인이 고려대학교를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고려대 맞냐?"라고 비아냥거렸고, 망인이 실수를 할 때마다 "휴가를 자르겠다"라고 하며 압박했다고 답변했다.

과도한 업무, 근거와 기준에도 없는 빈번한 야근으로 인한 스트레스, 반복되는 질책과 꾸짖음으로 결국 망인은 2018년 후반기 스트레스 평정에서 "부대 내 상급자나 동료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하고 있음"이란 항목에 기입했다.

결국 고 최현진 일병의 동료 병사였던 권아무개와 김아무개의 진술, 망인이 본인이 스트레스 상황을 직접 기록한 내용 등을 보면, 평소 망인이 부대 상급자에게 지속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당시 공군 부대 관계자들은 망인의 '스트레스 평정 결과'를 공유했음에도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당시 공군 관계자들의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지휘감독 소홀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직권 남용은 인정,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그 결과 고 최현진 일병은 2018년 11월 25일 09시 25분경, 자신의 아이패드(Ipad)에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유서를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어머니 송수현씨는 남편과 함께 한 걸음에 부대로 달려왔다.

유족은 경황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직위와 계급, 성명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군 관계자 여럿을 만났다. 유족에 따르면, 고 최현진 일병 부대 관계자는 유족에게 몇 가지 서류를 건네며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 문서가 어떤 내용인지 아무런 안내와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당시에 유족은 군에서 하라는 대로 따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서명을 하던 고 최 일병의 아버지는 서류 중간에 끼어 있는 '화장(火葬) 동의서'를 발견했다. 망인의 어머니 송수현씨는 그때 그 순간을 회상하며, "설명 한 마디 없이 날림으로 사인만 받아 가려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며 당시의 감정을 표현했다. 유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군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송씨는 지금까지 부대 관계자 어느 누구도 사과한 적이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군은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매장과 화장을 서둘렀다. 왜 그럴까. 일단 화장을 하게 되면 매장과 다르게 나중에 다시 부검을 할 수 없다. 경황이 없던 유족이 나중에 진상규명을 요청하더라도 이를 입증할 시신이라는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에 군 입장에서는 화장이 매장보다 더 유리하다.

어머니 송씨는 군 수사결과에서 드러난 아들 동료들의 진술을 토대로 2019년 2월 부대 장교 Y 소위를 직권남용과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부사관 K 중사는 직권남용으로, 고 최현진 일병의 3개월 선임 K 상병은 모욕죄로 고소했다. 고등군사법원 2심에서 Y 소위는 직권남용으로만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Y 소위는 곧바로 항고했으나 대법원에서 기각, 그대로 벌금이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유족은 '화장(火葬) 동의서'를 받아가려 했던 J 원사가 기소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됐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어머니 송씨는 군 사법부가 J 원사의 기소를 누락했다는 판단에 2021년 11월에 J 원사를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로 고소했다.
 
공군본부 보통감찰부 2022년 5월 10일 2021년 진정 제18호엔 공군 간부가 명확한 설명 없이 유가족의 서명을 받으려고 한 행위가 직권 남용임이 적혀있다.
 공군본부 보통감찰부 2022년 5월 10일 2021년 진정 제18호엔 공군 간부가 명확한 설명 없이 유가족의 서명을 받으려고 한 행위가 직권 남용임이 적혀있다.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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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1년 11월 22일 공군본부 보통검찰부는 J 원사를 불기소 처분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의자가 항고인에게 명확한 설명 없이 매·화장 보고서 상의 '화장에 동의함' 란에 유가족의 서명을 받으려고 한 행위는 직권을 남용한 행위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화장이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첫 번째 이유와 "현재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두 번째 이유로 "증거불충분하여 혐의 없다"는 통보였다. 

이에 2022년 4월 고 최현진 일병의 어머니 송씨는 "검사가 고소 사건이나 고발 사건에 대하여 독단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그 결정에 불복하는 고소"인 재정신청을 했다. 하지만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제1부는 2022년 5월 13일에 유족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군 검사가 불기소 처분할 때와 같은 이유였다. 송씨는 이에 불복하여 2022년 5월 25일에 곧바로 즉시항고를 제기했다.

"군 의무복무 중에 숨진 청년을 예우하라"

현행법상 '직권남용 미수'는 처벌조항이 거의 없다. 따라서 고 최현진 일병 사망 이후, 군 스스로가 실시한 수사에서 공군 간부의 과오가 있음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어머니 송수현씨는 아들 고 최현진 일병이 죽고 1465일이 됐지만 현재까지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 송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군 수사에서 '부대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간부를 고소했고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때문에 지금, 어머니 송씨는 아들의 죽음과 연관된 공군의 부조리를 알리려고 여전히 시위 중이다. 때로는 국회 앞으로, 때로는 국방부로 발걸음을 옮긴다. 

송씨는 햇수로 4년째 "데려갈 땐 '대한의 아들'이라고 하더니, 죽고 나니 나몰라 한다"라고 외치며,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과 연대하고 있다. 유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군의 잘못된 관행과 태도,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다. "군 의무복무 도중에 숨진 청년을 예우하라"는 외침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군과 국방부, 보훈처 앞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고 최현진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가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과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제공: 송수현 씨)
 고 최현진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가 다른 군 사망사고 유족과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제공: 송수현 씨)
ⓒ 송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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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군, #제20 전투비행단, #군 사망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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