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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太平(천하태평)'

홍성 사운고택 꽃담 무늬다. 정치를 잘 하여 온 세상이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말이다. 보통 꽃담무늬가 개인적인 욕망이나 바람, 기원을 나타내는 무늬가 대부분이나 이집 꽃담은 대국적(大局的)이다. 우리 사회의 천하태평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안의 내력을 알고 난 뒤에 대국적이라 판단했다.
  
베풂을 전통으로 여기는 집안답게 온 세상이 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집안의 의지를 온 세상에 알리려는 듯 대문에서 제일 잘 보이는 사랑채벽체 정면에 새겼다.
▲ 천하태평 꽃담 베풂을 전통으로 여기는 집안답게 온 세상이 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집안의 의지를 온 세상에 알리려는 듯 대문에서 제일 잘 보이는 사랑채벽체 정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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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조씨의 홍성 입향기

사운고택은 양주조씨의 종가로 입향조는 조태벽(1645-1719)이다. 보령에서 들어왔다. 맨 처음 보령에 입향한 이는 조태벽의 고조부, 조람이다. 처가살이하면서 보령에 자리 잡았다. 조람의 아들은 호조판서를 지낸 조존성(1554-1628)이고 조존성의 아들 조계원(1592-1670)은 형조판서에 이르러 사직하고 보령에 은퇴하여 한가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아들 조진석(1610-1654)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환국(還國)한 뒤 이시해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병사하였다. 조진석의 삼남 조태벽은 아버지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자 낙향한 뒤, 보령 청라에서 현 사운고택이 있는 홍성 장곡면 산성리로 옮겨왔다. 청라는 오서산 남쪽에, 장곡은 북쪽에 있어 두 고을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조씨네 전통은 베풂과 배려
  
잘 된 집안의 위세라기보다는 잘 살아온 집안의 당당함이 보인다.
▲ 대문채 정경 잘 된 집안의 위세라기보다는 잘 살아온 집안의 당당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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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중 사운 조중세(1847~1898)는 1890년 말부터 2년간 문경 현감으로 있을 때 기근에 허덕이던 문경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홍주 본가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선행을 베풀어 그 고을의 귀감이 되었다. 고종 31년(1894), <승정원일기>에 '조중세는 미(米) 239두를 바쳐 군량미에 보태었다'는 기록도 있다.

연이은 적선은 후손에게로 이어졌다. 현재 고택을 돌보고 있는 조환웅 선생의 할아버지 조원대는 반계강습소를 설립해 지방교육에 힘썼고 1931년, 이순신장군 묘역 성역화사업에 성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현재 이순신 이름만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일본을 생각하면 일제강점기에 성금을 낸 것은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종손 할머니는 어려운 마을 분들에게 쌀을 퍼주고 산모라도 생기면 미역을 보내어 살뜰히 보살피는 선행을 베풀었다 한다. 동학농민혁명이나 한국전쟁 때 집안이 무탈한 것은 선대부터 쌓아온 적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명문종가가 갖춰야할 덕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베품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조가네 전통을 이어서 나가자"(용진가 일부)

조가네 전통은 베풂이라며 조환웅의 아버지, 조응식(1929-2010)은 <용진가> 노래비를 집 앞에 새겨 놓았다. 종손은 남에게 베풀고 배려한 어른들의 정신을 이어받자면 당연한 일이라며 이 집을 국가에 기증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방식이 다를 뿐 베풀고 배려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종손은 집은 국가의 도움을 받아 관리되고 있다면서 집을 늘 열어놓아 열린 마음으로 방문하는 사람 모두 환영한다고 했다. 이렇게 한다면 난 개인적으로 국가에 기증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지자체의 무관심으로 마당은 메말라 들뜨거나 지자체의 지나친 관심으로 자칫하면 여행지가 관광지가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꽃비 내리는 집
  
누마루 밑은 텅 비어있었으나 후대에 벽체를 만들어 꽃담을 조성했다. 누마루 정면에 ‘수루’ 편액이 걸려있고 귀처마 동쪽에 신위가 쓴 ‘우화정’ 글씨를 그대로 판각한 편액이 걸려있다.
▲ 사랑채 정경  누마루 밑은 텅 비어있었으나 후대에 벽체를 만들어 꽃담을 조성했다. 누마루 정면에 ‘수루’ 편액이 걸려있고 귀처마 동쪽에 신위가 쓴 ‘우화정’ 글씨를 그대로 판각한 편액이 걸려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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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고택은 우화정(雨花亭)이라 불린다. 꽃비가 내리는 집이라니 이름도 예쁘다. 뜰 앞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이 꽃비 되어 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사운고택을 찾은 날, 꽃비 대신 500년 느티나무가 떨군 갈색 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 집이 생기기 전부터 가을이 되면 해온 던 일이다.

고택은 언제 지어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입향조의 생존연대를 감안하면 300여 년 전에 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집 앞 안산에 250년 전 집을 지을 때 기와를 굽던 가마터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집채는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기의 굴뚝을 세우고 굽은 소나무를 심어 밑그림을 그리고 세심하게 고막이꽃담까지 쌓아 안채마당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 안채 정경 두 기의 굴뚝을 세우고 굽은 소나무를 심어 밑그림을 그리고 세심하게 고막이꽃담까지 쌓아 안채마당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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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채-사랑채-안채의 중심축에서 벗어나 동쪽에 별도로 마련한 별당이다. 소나무 숲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았다.
▲ 안사랑채 정경  대문채-사랑채-안채의 중심축에서 벗어나 동쪽에 별도로 마련한 별당이다. 소나무 숲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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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굵직한 소나무 숲 아래 솟을대문이 의젓하다. 대문채-사랑채-안채가 남북으로 축을 이루고 주축을 벗어나 동쪽에 별당으로 안사랑채가 있다. 다른 집과 달리 안사랑채가 중요한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보면 사랑마당, 안채마당, 안사랑채마당으로 나뉜다.

꽃담 교과서, 사운고택 꽃담

사운고택은 굴뚝에서 고막이, 벽체, 담, 합각까지 무늬를 베풀 수 있는 면에 모두 꽃담을 연출하였다. 꽃담 교과서 같다. 여러 종류 꽃담을 선보인 대신 꽃담은 과장하지 않고 절제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꽃담은 굴뚝꽃담이다. 대문채와 사랑채, 안사랑채에 굴뚝이 있지만 사랑채굴뚝 무늬는 밋밋하고 대문채굴뚝은 줄무늬에 반원무늬를 몇 개 첨가하는데 그쳤다.
  
대문채굴뚝 무늬바탕에 동그라미무늬와 수복문 막새기와로 장식하여 집안 어른을 대접했다.
▲ 안사랑채 굴뚝꽃담  대문채굴뚝 무늬바탕에 동그라미무늬와 수복문 막새기와로 장식하여 집안 어른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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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랑채 굴뚝꽃담이 도드라진다. 안사랑채는 노모나 맏종부가 안살림을 차종부에게 넘겨주고 거처하는 곳이다. 어른이 거처하는 곳답게 안사랑채굴뚝은 대문채굴뚝무늬 바탕에 수복문(壽福文)을 새긴 막새기와와 동그라미무늬로 장식했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애정을 담아 세심한 손길로 치레한 꽃담이 고막이꽃담이다. 고택의 경우 주로 안채 영역에 나타난다. 먼저 다락방 아래 하인방(下引枋)을 싸 바른 긴 장방형 고막이는 제일 큰 돌을 중간에, 작은 돌을 맨 아래에, 중간 크기의 돌은 맨 위에 배열하여 파격적으로 돌을 쌓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멋있다.
  
안방 맞은편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는 사랑채후면의 고막이까지 세심하게 꽃담을 쌓았다.
▲ 사랑채후면 고막이꽃담 안방 맞은편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는 사랑채후면의 고막이까지 세심하게 꽃담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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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후면 고막이에는 기와로 줄무늬를 낸 후 가운데는 수키와를 엎치고 눕혀 마치 물결이 이는 모양인 수파문(水波紋)을 새겼다. 안채마루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사랑채 후면의 고막이까지 꼼꼼하게 꽃담을 구현한 것이다.

합각꽃담은 안채와 안사랑채에 나타나는데 모두 기본 모양은 같다. 다만 안사랑채 합각면의 밑변에 가로줄이 하나 더 있는 점만 다르다. 꽃담은 평기와를 수직으로 세워 꽃대를 만들고 좌우에 암키와로 꽃잎을 연출하였다. 마치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모양을 표현하려는 듯 꽃봉오리 주변에 기와조각으로 줄무늬를 내었다.
  
사랑채합각은 담백하게 일자무늬를 낸 반면 안채와 안사랑채 합각은 꽃문양을 넣어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 안채 합각꽃담 사랑채합각은 담백하게 일자무늬를 낸 반면 안채와 안사랑채 합각은 꽃문양을 넣어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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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후원 뒷담에 뒷동산으로 통하는 협문이 있다. 협문 양쪽에 국화문에 쌍희자를 새긴 꽃담이 있다.
▲ 담장꽃담 안채후원 뒷담에 뒷동산으로 통하는 협문이 있다. 협문 양쪽에 국화문에 쌍희자를 새긴 꽃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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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꽃담은 안채와 안사랑채 뒷담에 있다. 네모와 마름모형으로 공간을 한정하고 그 안에 쌍희(囍)자를 새기고 주변은 국화꽃잎으로 장식하였다. '囍'는 두 배로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고 늦서리에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문은 길상, 상서, 장수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사운고택 꽃담의 하이라이트는 벽체꽃담이다. 사랑채 누마루 아래공간을 둘러싼 화방벽꽃담이다. 누마루 밑을 벽으로 둘러쌓은 것은 흔치않은 것이다. <조응식가옥 기록화 보고서>에 따르면 누마루로서 기능이 떨어져 화방벽을 설치해 부엌공간을 확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화방벽 하부는 크기가 고른 호박돌을 가지런히 네 줄 쌓아올린 후 상부에 와편으로 "☵平☲太━下☷天☰" 문양을 새겼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곤이감(乾坤離坎), 사괘의 기하문과 천하태평(天下太平), 문자문을 교차하여 꾸민 것이다. 사시사철, 온천지가 태평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꽃비 내리는 집, 우화정에서 단잠(수 睡)을 자는 형국이야말로 천하태평 아니겠는가?
▲ ‘수루’와 천하태평꽃담 꽃비 내리는 집, 우화정에서 단잠(수 睡)을 자는 형국이야말로 천하태평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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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누마루방 안쪽에 조선후기의 서예가 신위(1769-1845)가 이곳에 머물며 쓴 우화정 현판이 걸려있고 누마루 정면 처마에 작고 소박한 수루(睡樓) 현판이 달려있다. 우화정과 수루가 있는 정경은 꽃비내리는 날 우화정에 누워 단잠을 자는 '천하태평'의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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