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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명석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명석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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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세워진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희생자 위령탑'에는 희생자 524명의 이름이 박혀 있다.

창원특례시(시장 홍남표)와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회장 노치수)가 26일 오전 창원위령탑 제막식을 열었다. 유족들은 72년 만에 무덤도 없는 억울한 원혼들의 해원을 빌었다.

위령탑은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1기)는 한국전쟁 전후 경찰과 군인이 영장도 없이 구금시켰거나 불려갔던 창원지역 예비검속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1681명을 산골하거나 괭이바다에서 수장했다고 진실규명했다. 이승만 정부 때 벌어진 민간인 학살이다.

일부에서는 당시 창원지역에서 희생된 민간인이 2300명, 이 가운데 괭이바다에 수장된 희생자만 717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 명단이 위령탑 뒤편 명석비에 새겨졌다.

진실화해위는 위령사업을 권고했고, 창원유족회가 창원시와 경남도의 지원을 받아 이번에 위령탑을 세웠다. 위령탑 건립은 허성무 전 창원시장 때 진행됐다. 이날 제막식은 경남도, 창원시, 창원시의회,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열렸다.

제막식에서는 홍남표 창원시장과 노치수 회장,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문순규 창원시의회 부의장, 김영만 경남평화회의 상임대표를 비롯한 유족들이 위령탑을 감싸고 있던 천을 거둬냈다. 이어 합동추모제, 추모식이 차례로 열렸다.

창원유족회는 축문을 통해 "이승만 정부 하에서 참혹하게 학살당한 영령들이시여. 언젠가는 영령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을 사회와 역사가 반드시 증명하는 날이 꼭 올 것이라 확신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그토록 잔인한 여름, 위정자들의 정권 야욕에 희생양이 되어 젊은 나이에 희망찬 꿈을 한번 펼쳐 보지 못하고 무참히 짓밟힌 영령들이여. 임들이 오랏줄에 묶여 산골에서, 벌판에서, 바다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한 원통하고 억울한 통한의 소리를 우리들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또 "아내는 청춘에 홀로되고, 자식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아온 그 세월 어연 72년, 금수보다 못한 정권은 님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유족들에게 연좌제로 죄인을 만들고 모든 사회활동에 제약을 주는 등 폭정을 일삼았다"면서 "우리는 님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일치단결하여 당당히 진실규명에 나설 것이고, 일부 성과도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노치수 회장은 인사말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에서 붉은 딱지를 붙여 끌고 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셨는지, 무덤도 없는 영혼들이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느 지하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계시는 학살희생자들의 영혼을 이곳 바닷가에 모시게 됨을 유족의 한 사람으로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령탑 뒤쪽의 명석비에 새겨진 500명이 넘는 명단에는 독립운동가도, 농촌활동가도, 학교 선생도, 순수농민도 또한 미군폭격에 의한 희생자도, 인민군에 의해 학살당한 희생자도 새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제막식. 노치수 창원유족회장.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제막식. 노치수 창원유족회장.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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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제막식. 홍남표 창원특례시장의 추모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제막식. 홍남표 창원특례시장의 추모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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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추모사(서면)를 통해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오셨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이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우리 마음에 새기고 민족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는 소중한 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홍남표 시장은 추모사에서 "오늘은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날이다"며 "이런 날 바라보는 마산 바다는 늘 보던 바다와는 빛깔부터가 달라 보인다. 그러므로 이제는 상처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2기) 위원장은 "마산창원진해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이나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이 적법한 절차없이 희생되었고, 수차례에 걸쳐 바다에 수장되기도 했다"면서 "진실화해위도 각고의 노력으로 이 명석비에 새겨진 이름 외에 더 많은 희생자들을 추가로 확인하는 진실규명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만 경남평화회의 상임대표는 "사람들이 그냥 '한국전쟁 전후'라고 하는 그날 대한민국 수많은 산골짝에서 또는 바다에서 100만이 넘는 죄 없는 이들이 그렇게 골로 가고 물알(물 아래)로 가버렸다"라며 "이 잔학한 대학살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졌고 그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이승만이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죄인들은 활개치고 다닐 때, 죽임을 당한 죄 없는 이들은 원혼이 되어 구천을 맴돌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72년이 지난 오늘, 바로 이곳에 그날 억울하게 가신 님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위령탑이 세워졌다"라면서 "이제 이곳은 구천을 헤매던 억울한 영령들의 평온한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후대들에겐 역사의 진실을 깨닫는 교육의 장이 되고, 이 불행한 역사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순례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제막식.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제막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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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청껏 불러보고 싶은 그리운 나의 아버지께"

창원유족회 이현묘 회원은 "목청껏 불러보고 싶은 그리운 나의 아버지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읽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날이었을 겁니다. 우리 앞집 정숙이는 저랑 같이 달리기를 해서 겨우 3등을 하였는데, 본부석에서 달려 나온 정숙이 아버지는 정숙이를 안고 볼을 부비며 정말 장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1등을 한 저에게는 본부석에서 달려 나오는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척 서운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온 저는 엄마께 '왜 나는 아버지가 없어? 그리고 돈도 없고. 우린 왜 이래'라며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달래면서 '니 아버지가 장롱위에 놓인 빨간 상자의 열쇠를 가지고 가셨단다. 아버지만 오시면 우리도 저 상자를 열어서 안에 있는 돈도 쓰고, 운동회 때도 아버지와 함께 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날 이후로 먼 산모퉁이에 누군가가 보이면 혹시 우리 아버지인가 하는 생각에 그 모퉁이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세월이 흘러 저도 어느덧 두 아들의 엄마가 됐어요. 어느 날 엄마께서 장롱 위에 놓인 빨간 상자를 꺼내어 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고, 그 속에는 아버지께서 결혼할 때 엄마께 보낸 아버지의 사성과 예장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뭐야?'하며 엄마께 물었고, 엄마는 '하도 짧게 너의 아버지와 살아서 이제는 얼굴도 기억 못 할 것 같다. 나중에 저세상에서 만나면 서로 알아볼 수 있게 이 물건들을 내가 죽으면 내 가슴에 덮어다오'라고 말하셨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가슴이 먹먹하여 한참 동안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엄마는 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아버지! 엄마의 부탁대로 해 드렸는데, 하늘에서 엄마를 만나셨나요? 엄마는 아버지가 안 계신 자리 메우고 사시느라 고생 정말 많이 하셨으니까 따뜻하게 한번 안아 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아버지! 정말 사무치게 불러 봅니다. 사랑합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제막식.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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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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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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