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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섬의 인연

섬에 내리자 제일 먼저 달이 맞는다. '자월도 달바위 선착장'을 알리는 초승달 모양의 입간판이다. 섬과 선착장 이름에 '달'이 들어간다. 하물며 간판 디자인도 달을 본떴다. 이 섬과 달의 인연이 보통을 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달의 색깔이 이상하다. 자월, 자줏빛 달이라. 그런 달, 본 적이 있던가.
 
섬과 선착장 이름에 '달'이 들어간다. 선착장 입간판도 달 모양을 본떴다.
▲ 자월도 달바위 선착장  섬과 선착장 이름에 '달'이 들어간다. 선착장 입간판도 달 모양을 본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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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옆에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바위가 있었다. 열녀 바위라 했다. 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급기야 바다로 몸을 던진 어느 아낙의 이야기가 어렸다. 후세들은 바위 위에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어부 상(像)을 세워 넋을 달랜다. 어부의 표정엔 굳은 의지가 충만했지만 끝내 돌아오진 못했다. 바위 밑 파도는 여전히 거칠다.

섬에 내리자마자 산엘 오른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국사봉이다. '제일 높은'이라고는 했지만 해발은 165m, 거리는 2km가 채 안 된다. 산행이라 하기에도 다소 민망한 크기다. 하지만 그곳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장쾌하다. 남쪽으론 덕적군도가 점점이 떠 있고, 동쪽엔 영흥도 화력발전소가 연기를 내뿜는다. 저 멀리 송도국제도시의 스카이라인까지 손에 잡힐 듯 지척이다.
 
국사봉은 해발 160미터 남짓이지만 그 위에서 둘러보는 광경은 장쾌하다. 멀리 승봉도의 실루엣이 펼쳐저 있다.
▲ 국사봉 정상에서 국사봉은 해발 160미터 남짓이지만 그 위에서 둘러보는 광경은 장쾌하다. 멀리 승봉도의 실루엣이 펼쳐저 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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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정상 바로 아래 커다란 금속탱크 3기가 세워져 있다. 섬 곳곳의 관정에서 끌어올린 물을 저장해 두는 물탱크다. 섬사람들에겐 생명수와 같다. 정기적인 검사와 소독도 철저히 한다. 그래서 이 동네 어느 집에 가건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좋다. 그 물로 낯을 씻으면 피부마저 말끔해진다. 정수기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물탱크를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하늬께 해변이 나온다. 그 이름처럼 바람이 세차다. 해변과 어류정 선착장 사이에 작고 예쁜 섬 하나가 떠있다. 목섬이다. 해변 언덕에서 섬까지 구름다리라 부르는 나무데크를 놨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언덕을 지나 섬에 다녀오는 코스도 제법 아기자기하다. 만조 때는 물 위를 걷는 스릴도 있다.
 
하늬께 해변과 어류골 선착장 사이에 있다. 언덕에서 섬까지 구름다리라 부르는 나무데크를 놨다.
▲ 자월도 목섬 하늬께 해변과 어류골 선착장 사이에 있다. 언덕에서 섬까지 구름다리라 부르는 나무데크를 놨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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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1리는 섬의 중심지다. 면사무소, 지서가 있고 농협 마트도 문을 열었다. 작은 섬이라 식당이 통 눈에 뜨이지 않는다. 마을 어귀의 미란네 식당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 날은 병어가 좋다고 했다. 조림 하나 시켰는데, 밑반찬만 10가지가 넘는다. 심지어 양념게장, 코다리 조림까지 있다. 마침 그 날 식당 집 김장하는 날이라 자연산 생굴과 절인 배추까지 내 주었다. 그거 먹으며 눌러 살고 싶었다.

이 섬의 해수욕장은 두 곳, 장골과 큰말이다. 둘이라지만 커다란 하나나 매한가지다. 머물며 해수욕하기엔 장골이 쫌 낫다. 화장실과 샤워장 등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 놨다. 장담컨대 여기처럼 안전한 해수욕장은 또 없다. 파출소와 소방서가 해변에서 20초 거리니. 그 앞엔 독바위 섬이 있다. 물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사유지인 듯 오가는 이는 없었다.

마을 곳곳엔 붉은 색이 넘쳤다. 계절을 잊은 붉은 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다. 어느 집 안마당엔 새빨간 장미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나그네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동네 화단을 가득 채우고도 있었다. 제각각 피었고, 그 품종도 다 다르겠지만 색은 모두 같은 계열이다. 자월의 이름을 지키려는 자연의 노고처럼 여겨졌다.

달과 만나는 순간
 
이 섬의 태양은 섬과 섬 사이로 떨어졌다.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의연한 모습을 지켰다.
▲ 자월도 노을 이 섬의 태양은 섬과 섬 사이로 떨어졌다.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의연한 모습을 지켰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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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해가 저무는 시간. 큰말 해변 방파제를 지나 두멍부리 해안으로 향한다. 물 괴는 땅이라는 이곳이 노을감상의 명소란다. 서서히 태양이 바다로, 아니 섬과 섬 사이로 떨어져 들어간다. 소이작도와 대이작도 사이쯤인 것 같다. 석양은 붉고 길게 바닷물을 물들였다.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태양은 그 기세를 잃지 않고 의연했다.
 
해가 진 자리에 달이 떠올랐다. 해가 사라지자 달은 붉은 빛으로 변했다.
▲ 자월도 밤하늘(권산호 제공) 해가 진 자리에 달이 떠올랐다. 해가 사라지자 달은 붉은 빛으로 변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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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이 제법 매서웠지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이 섬의 달을 보기 위해서였다. 달과의 만남은 사실 이 섬에 온 목적이기도 했다. 잠시 한 눈 판 순간 밀려든 시커먼 어둠이 밤하늘을 집어삼켰다. 그 절망의 암흑을 뚫고 동쪽 먼 바다에 바짝 붙어 한 점 불꽃이 둥실 떠올랐다. 그랬다. 그건 불꽃이었다. 누가 대포알이라도 쏘아올렸나, 하지만 그건 달이었다.

먼 옛날 한 선비가 누명을 쓰고 이 섬으로 귀향 왔다. 섬에 든 첫날 밤 둥그렇게 뜬 달을 보니 서러운 마음이 더 했다. 울컥, 가슴 속에 맺혔던 한을 쏟아 냈다. 달은 그 절절한 하소연을 듣기라도 한 듯, 제 색을 조금씩 바꾸었다. 마침내 달은 선비의 붉은 눈시울을 닮은 짙은 자줏빛으로 변했다. 이 섬에 오기 전에 들은 자월의 전설이다.

그런데 전설은 그저 전설이 아니었다. 자월이란 이름이 그저 붙여진 게 아니었던 거였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 순간 눈에 든 달은 그 옛날 선비의 심정을 달래준 그 달이 분명했다. 초승달이되 늘 보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보다 훨씬 길고 가늘었다. 색은 오렌지 빛보단 붉고 핏빛보단 옅었다. 혹 자신을 정신없이 올려보는 이의 심정도 알아주는 걸까. 그러면 오죽 좋을까.
 
초승달이었지만 훨씬 더 길고 가늘었다. 오렌지색보다 짙고 핏빛보다 옅었다. 싸구려 카메라를 이리 원망해본적이 없다.
▲ 자월의 자월 초승달이었지만 훨씬 더 길고 가늘었다. 오렌지색보다 짙고 핏빛보다 옅었다. 싸구려 카메라를 이리 원망해본적이 없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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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의 깊은 산마루에 천문공원을 짓는다고 한다. 그 이름도 '달빛바람 천문공원'이다. 이런저런 어려움은 있지만 내년 상반기쯤엔 1단계 시설이 문을 열 수도 있을 것이라 한다. 3만3천㎡의 땅에 천문대와 여러 편의시설을 들일 계획이란다. 섬사람들은 이곳이 장차 수도권 최고의 천문대가 될 것임을, 그래서 소득증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소식에 참말 좋았다가, 그 옆에 드론실증센터까지 짓는다는 소식엔 걱정이 깊어졌다. 행여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릴까, 드론 따위가 함부로 저 신비로운 달을 건드리지나 않을까, 그래서 이 아름다운 섬이 다치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정말 간절히 바라건대 그것이 무엇이건 쓸 데 없이 크고 웅장하고 번잡스럽지 않기를, 그저 이 섬처럼 소박하고 여유로우며, 아름답고 의젓하기를.

자월엔 붉은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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