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설악산을 즐기는 관광객
 설악산을 즐기는 관광객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양양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배낭 하나 방에 던져 놓고 바다를 찾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바위들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백사장이다. 백사장 건너편에 있는 방파제에 사람들이 걷고 있다. 대어를 꿈꾸며 세월을 낚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도 관광객과 하나 되어 방파제를 걸어본다. 동해의 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들이마신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가을의 수평선이 아름답다. 호주에서와 다름없이 마음을 시원하게 감싸주는 바다를 바라본다.

아담한 백사장도 걸어본다.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와 함께 물장난이 한창이다. 백사장이 끝나는 곳까지 걸으니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군부대가 있어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호주 해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풍경이다. 출입을 제한하는 철조망을 보니 잊고 있었던 한국의 분단이 떠오른다.
 
관광지 해변에 설치된 철조망
 관광지 해변에 설치된 철조망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남북문제라고 생각한다.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한다면 모래 위에 세운 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평소 생각이다. 전쟁만은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많다. 동네를 둘러본다. 바닷가 동네다. 예상했던 대로 활어회 식당 두어 곳이 보인다. 호주에서 바닷가를 걷다 보면 가끔 생각나는 횟집이다. 조금 더 걸으니 도로 건너편에 소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큰 건물도 있다. 도로를 건너니 '오산리 선사 유적 박물관'이라고 쓰인 입구가 보인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사 유적지에 들어선다. 흔히 볼 수 없는 움막들이 시선을 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1982년부터 2007년에 걸쳐 발굴된 신석기 시대 움집터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움집에 들어가니 아늑하다. 이러한 집에서 한 가족이 생활했을 것이다. 혼자 지내고 있어서일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며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식 건물로 지은 박물관에도 들어가 본다. 입구에 입장료 가격이 붙어 있다. 직원이 다가와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노인에게는 무료라고 하면서 입장권을 내준다. 호주에서도 노인에게는 대중교통을 비롯해 관광지 입장료 등 많은 혜택을 준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버스나 전철도 적은 금액이지만 표를 구입해야 온종일 이용할 수 있다.

건물에 들어서니 신석기 시대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잘 꾸며놓았다. 이곳에서 발굴된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다. 신석기 시대의 삶을 현실감 있게 재현해 놓은 전시장이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유적지 중 하나라고 한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신석기 시대의 삶을 엿볼 기회를 누린다. 행운이다.
 
선사 유적 박물관 입구
 선사 유적 박물관 입구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출 시각에 한발 늦었다. 시간을 잘못 기억한 것이다. 막 떠오른 태양에 모습을 드러낸 정원을 둘러본다. 소나무가 많은 정원이다. 유난히 굽어진 소나무가 시선을 끈다. 시골에서 농사일로 일생을 보낸 허리 굽은 할머니가 연상된다. 이렇게 90도 이상 굽은 소나무는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할머니가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듯이.

오늘은 바다를 떠나 설악산으로 가는 날이다. 서울에서 숙소까지 찾아온 지인들을 만났다. 점심시간이다. 지인은 단골집이 있다며 활어회 식당이 줄지어 있는 바닷가로 안내한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식당 입구에 그득하다. 호주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풍경이다. 호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멍게도 풍성하다. 오랜만에 멍게 향에 취하며 해산물을 즐긴다. 호주에서 파는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소주도 곁들인다.

푸짐한 식사 후에 근처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 하조대를 찾았다. 양양 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정자에 올라서니 애국가 화면에 나왔다는 200년 된 소나무가 바위 틈바구니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다. 기암괴석 그리고 울창한 송림과 바다가 어울리는 절경이다.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를 찾아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조대 정자에서 바라본 소나무
 하조대 정자에서 바라본 소나무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하조대의 절경을 뒤로 하고 지인의 자동차에 오른다. 설악산국립공원에 있는 오색 약수터가 다음 목적지다. 오색 약수터에 도착하니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려면 열흘 정도 더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성급한 등산객으로 붐비는 설악산이다.

조금 늦은 오후다. 그러나 설악산 계곡을 보고 싶다. 서둘러 숙소를 나와 식당과 선물 가게가 줄지어 있는 골목에 들어선다. 조금 걸으니 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호주에서 이런 계곡을 보았을까. 호주의 제주도라고 할 수 있는 타즈마니아(Tasmania)섬에서 비슷한 계곡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숲이 울창한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다.

숙소에는 온천물이 나오는 목욕탕과 찜질방이 있다. 난생처음 찜질방에 들어가 보았다. 각기 다른 온도와 효능이 있다는 작은 방이 즐비하다. 가장 낮은 온도 표시가 되어 있는 방에 들어갔다. 그래도 조금 있으니 땀이 온몸을 적신다. 오래 있기가 힘들다. 찜질방을 나와 대중목욕탕에 들어갔다. 탕에 들어가 피로를 푼다. 호주에서 누리지 못하던 목욕탕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설악산을 찾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르고 있다. 화려한 단색이 돋보이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청바지에 평범한 셔츠를 입고 등산객과 함께 산을 오른다. 산 입구에 있는 출렁다리에 올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카메라에 담는다.

조금 더 산속으로 들어가니 선녀탕이라 이름 지어진 장소가 나온다. 흐르는 물이 파놓은 웅덩이에 수정같이 투명한 물이 잠시 머물러 있는 곳이다. 한여름에는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오도록 유혹할 것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높은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계곡을 계속 올라간다. 문득 시드니에서 가까운 관광지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이 떠오른다. 높고 낮은 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국립공원이다. 블루마운틴이 가슴을 풀어헤치는 시원함을 선사한다면, 설악산은 아기자기한 풍경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물이 가파르게 흐르는 다리 위에서 단풍으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주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맑은 물이 곱게 떨어지는 용소폭포도 카메라에 담고 하산한다. 올라왔던 길이지만 내려가며 만나는 풍경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설악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떨어지는 용소폭포
 설악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떨어지는 용소폭포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설악산 풍경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설악산 풍경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식당이 즐비한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설악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산나물 비빔밥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산 내음과 물소리가 주위를 감도는 식당에 앉아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요즘 유행한다는 한 달 살기를 이러한 곳에서 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한국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비빔밥을 먹으며 호주에서의 삶을 잠시 떠올린다. 호주에서 오래 살았다. 그래도 호주보다는 한국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지내는 삶은 어쩔 수 없다. 연어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듯이 사람도 회귀본능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으로 되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는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한다. 고국에 돌아갈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만,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준비라도 지금부터 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아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