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5 13:18최종 업데이트 22.12.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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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하나의 대상이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지각될 수 있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그렇다'. 물리적 세계는, 인간의 기대와 달리,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는다. 인지과정이라는 매개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이며 그 결과는 얼마든지 각색될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물 자체 (Ding an sich, Noumenon)'를 말할 때, 인간의 인식은 결코 사물 (또는 사건) 자체의 본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물 자체'가 지각의 대상 (또는 원인)은 맞지만 그 대상이 지각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물 자체가 아니며 현상(Phenomenon)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철학자의 사변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물리학자에게 색깔은 그저 빛의 파장과 굴절일 뿐이다. 생리학자에게는 망막 세포에 선택적으로 수용되는 빛의 다양성일 뿐이다. 결국 물질이 가진 고유의 성질에도 불구, 그 특성은 지각하는 인간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수용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누리꾼들을 흰금파(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와 파검파(파란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갈라 온갖 사회서비스망과 술자리를 달궜던 드레스 논쟁. ⓒ 온라인캡처

 
2015년 초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드레스 색깔 논쟁을 기억하는가. 전 세계 누리꾼들을 흰금파(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와 파검파(파란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갈라 온갖 사회서비스망과 술자리를 달궜던 사건(?)이었다.

원래의 드레스 색깔은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라는 실물이 공개되면서 파검파의 승리로 논란이 종결되는 듯했지만 흰금파의 반론도 설득력이 있다. 촬영 시 조명, 카메라의 조건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의 망막 체질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일 수 있으니 드레스 논쟁은 무승부로 판정하는 게 공평해 보인다.


결론은 무승부! 다만 조건은 있다. 수용자의 인지 문제 차원에서는 일방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생산자의 의도나 그의 결과물을 보면 분명 한 쪽이 맞다. 그래서 드레스의 '원래' 색깔은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드레스의 생산자, 판매자가 그렇게 종결지었기 때문이다.

<토이스토리3> 환청 논란

최근 프랑스의 사회서비스망에서는 때 아닌 환청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3>의 한 장면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원래 대사가 뭔지 벌어지는 갑론을박이다. 영화 대사를 글로 본다면 전혀 논쟁거리도 안 돼 보이지만, 청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형 켄에게 화가 난 바비가 옷을 찢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본 켄이 내뱉은 한마디. "Oh Barbie!" 분명 영화의 원래 시나리오에도 그렇게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용 전개의 문맥상 봐도 그게 맞아 보인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다르게 듣고 있다. " Oh, f**k!"
 

<토이스토리3> 포스터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한번 들어보시라. 당신은 분명 '바비파'와 '퍼크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상대파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 비디오에는 이미 수많은 댓글이 달렸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언어학에서 말하는 음운론 또는 음성학적 차원에서 'Barbie'와 'f**k'은 전혀 비슷한 발음이 아니다. 한국인에게는 두 단어 모두 2음절로 들릴 수 있지만 영어권과 불어권 사용자들에게는 음절 수마저 다르다. 'Barbie'는 2음절이지만 'f**k'은 1음절 단어다. 어떻게 이토록 다른 발음이 혼동될 수 있을까? 프랑스 언론에서는 이제 환청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환청을 포함해 앞서 말한 환시, 환미, 환촉, 환후는 모두 환각(hallucination)에 포함된다. 환각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이 뇌에서 종합돼 대상으로 인지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성질이 아닌 다른 성질로 변질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 결과 하나의 사물 또는 사건이 다른 사물 또는 사건으로 인식되거나 아예 없는 사물 또는 사건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있는 사물 또는 사건이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현상도 이에 포함돼야 한다.

환시가 빛을 수용하는 개인의 망막 체질이 달라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환청도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폭이 달라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소리가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는 것을 꼭 환청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다. 들리는 사람마다 barbie가 맞을 수도f**k가 맞을 수도 있다.
 

<토이스토리3> 중 인형 켄에게 화가 난 바비가 옷을 찢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본 켄이 내뱉은 한마디. "Oh Barbie!"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다르게 듣고 있다. " Oh, f**k!" ⓒ LeHuffPost 영상캡처

 
이것은 어떻게 유희가 되었나

꼭 환각이 아닐지라도 수용자는 다르게 지각할 수 있다. 원래의 대상이 지각되는 과정에서 매개가 되는 모든 변수들이 올바른 지각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각의 결과는 많은 변수를 통해 왜곡 수용될 수도, 복수의 반응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의 대상은 하나였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르노 자르드리(Renau Jardri)에 따르면 환청의 기계적 원인은 인지체계의 불안정 때문이지만 그 정신적 원인은 듣고자 하는 소리가 실제 음향적 소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은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논쟁이 벌어질 때, 지각의 수용자가 아닌 생산자가 입장을 밝히면 모든 논란은 쉽게 종결된다. '드레스 논쟁'은 생산자, 판매자가 사회서비스망을 통해 '원래의 색깔은 이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모든 논란이 종결됐다. <토이스토리3>의 제작 관계자도 '원래의 대사가 이것이었다'고 밝히면 모든 논란은 종결될 것이다.

하지만 해당 애니메이션 관계자는 굳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당 논쟁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유희를 위한 논쟁일 뿐이다. 사실 드레스 논쟁도 마찬가지였다. 판매자가 꼭 본래 색깔이 무엇인지 밝혀야할 사회적 의무는 없었다. 실제 드레스 제조사가 색깔을 밝히는 과정도 유희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논쟁들은 진짜 논쟁이 아니다. 논쟁을 본뜬 게임일 뿐이었다. 논쟁의 가세자들은 소통의 수단으로, 유희의 수단으로 이를 즐겼을 뿐이다. "Oh Barbie!"를 "Oh F**k!"으로 들었다고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인들은 이 논쟁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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