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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수당을 만든 사람", "우리를 위해 밥도 굶어준 사람", "배지 없이도 구의원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동네에서 아이스팩을 모으고, 중고생 100원 버스를 만들고, 은행ATM기 설치 서명을 받으며 당선된 진보당의 지방의원들. 그러나 당선의 기쁨도 잠시, "진보 지방의원은 뭐가 다른데?" 더 큰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배지를 달고 더 바쁘게 뛰고 있는 지방의원들의 분투기를 담습니다.[편집자말]
윤경선 수원 시의원은 2022 지방선거에 당선되며 3선 시의원이 됐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수원시의원을 시작했고, 2013년 소위 '통합진보당 내란사건'(대법원은 내란음모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내렸다)을 겪었다.

정치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지만, 정치를 바꿔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그의 진정성이 통한 것일까. 2018년, 2022년 시의원에 연이어 당선되며 수도권 진보정당 3선 시의원이 됐다. "정치를 바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초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윤경선 의원을 만났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노동자를 위한 삶'을 택한 윤경선 의원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노동자를 위한 삶'을 택한 윤경선 의원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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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인공처럼 '노동자를 위한 삶' 선택하다

윤경선 의원은 대학에서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읽으며, 책 속 주인공들처럼 노동운동으로 세상을 바꿀 꿈을 키웠다. 대학시절 구로공단 인근에서 야학교사를 시작하며 노동자들을 만났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일하러 온 어린 노동자들이 눈에 밟혔다고. 결국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해 선생님이 됐지만, 안정된 교사의 삶 대신 다시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다. 소위 '위장취업'을 하며 수원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루이제 린저의 <다니엘라>다. 대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여주인공이 탄광촌의 학교 교사행을 자처해 행복을 찾는 이야기다. 가톨릭 세례명도 직물공장 여공들을 위해 헌신했던 여성 성인(聖人) '마리아 디로사'로 정했다. 

정치를 시작한 이유도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간명한 꿈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는 윤경선 의원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는 윤경선 의원
ⓒ 윤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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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니 그게 좋아요. 요즘엔 만나는 분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세상을 바꾸는 게 제 꿈입니다. 이걸 옛날로 치면 역모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진짜로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 진보당에 있는 겁니다."

그는 정치가 바뀌어야 사람들의 불행이 사라진다며 "정치가 제일 늦게 바뀌더라고요. 결국 '민'의 힘이 더 커져야만 정치가 바뀌죠"라고 강조했다. 올해 3선 의원에 당선된 후 6월에는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적었다. 

"제 의정 활동의 목표는 민의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민의 힘이 커져야 진정한 민주주의, 민이 주인되는 정치가 가능해집니다."

민원은 제도의 빈구석을 채우는 정치 배움터

윤경선 의원은 지역에서 '민원왕'으로 불린다. 수많은 민원을 척척 해결해 1일 3민원은 기본이다. 그런데 정작 윤경선 의원은 "민원은 주민들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주민들의 삶과 사회를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민원을 통해 삶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법과 제도의 빈구석을 알게 된다는 것. 

"오래된 집이 다 무너져가는데 다시 지으려고 해도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민원을 받은 적이 있어요. 건축법상 허가를 받으려면 도로가 인접해있어야 하는데, 처음 지어질 때는 그런 규정이 없었으니 지금 길이 없는 거죠. 시에서는 예산이 없다고 길을 새로 내주지 않고요. 이렇게 법과 제도가 삶을 못 따라온다는 걸 알게 돼요."

수해 피해 농가들에게 보상을 해주지만 화훼 농가는 보상을 못 받는다는 것도, 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전동휠체어는 자동차처럼 연습공간이 필요한데 규정도 없고 대책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장애인 문제도, 그린벨트 문제도 그렇게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됐다.

결국 이 빈구석을 해결하는 것은 정치와 공공의 영역이다. 민원을 통해 주민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정치의 역할을 찾고, 영역을 넓혀가는 셈이다. '민원왕'의 비법도 다른 데 있지 않다. "민원도 결국 사람이 해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황희 정승이 될 때가 가끔 있어요. 주민의 말이 옳고, 반면 공무원들의 입장도 나름 옳아요. 그렇게 '공감'한 후에 방법을 찾는 거죠. 결국 주민분이 어떤 절실한 마음에서 민원을 주시고 어떤 해결책을 원하시는지 깊이 이해하고, 반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뭐가 필요할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민들은 제가 마음을 잘 읽는다고들 하세요."

'내란사건'의 주홍글씨를 딛고, 더 단단해진 정치인

윤경선 의원은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의 소위 '내란사건'(이석기 의원은 대법원에서 내란음모에 대해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의 여파를 직접 받아야 했다. 당시 수원에서 지역정치를 계속해 온 윤경선 의원에게도 영락없이 주홍글씨 낙인이 찍혔다. 윤경선 의원은 그 당시를 '정치를 하며 가장 괴로웠던 순간'으로 회상했다. 

"저희 동네 한 아파트 커뮤니티에 '통합진보당 윤경선이를 어떻게 해버리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어요. 그런 글도 상처였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느냐'는 댓글 달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게 더 슬펐던 때죠."

윤경선 의원은 주변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가까웠던 사람들이 자신을 멀리하는 걸 보면서, '이 나라에는 인권이 없구나'라고 느꼈다고. 그렇지만 "내가 이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다시 다졌다. 

"제가 정치인이 아니었으면 (낙인이)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겠죠. 하지만 구속된 분들도 많았고 더 힘든 사람들도 많았어요. 극도로 힘든 상황이 오니, 역설적으로 버틸 힘이 되더라고요.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게 만드는 세상, 분단된 세상의 문제점이 이런 거라면 이 잘못된 세상을 꼭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죠."
 
정치인으로서 쉽지 않은 시기를 겪었지만, 정면으로 맞섰던 윤경선 의원
 정치인으로서 쉽지 않은 시기를 겪었지만, 정면으로 맞섰던 윤경선 의원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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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선 의원은 이 파고에, 정면으로 맞섰다.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결국 2018년 시의원에 다시 당선됐다. 자신을 외면하던 이들을 직접 찾아가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때 성당에서 알고 지내던 교우님이 제 이야기를 안 좋게 하고 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로서는 큰 용기를 내서, 직접 만나서 말씀드렸죠. '자매님, 그렇게 이야기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그분을 2018년 선거 때 다시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이사를 갔지만, 찍을 수 있었으면 윤경선 의원을 찍었을 거다'."

그렇게 정치인으로서 뚝심을 지키는 동안 변함없이 곁에서 지지해준 이들도 있었고. 뒤늦게야 진심을 알아준 이들도 있었다. 

"얼마 전 15년쯤 알고 지낸 보수정당 지지자분이, '이제는 내가 윤경선 의원의 진심과 마음을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윤경선은 물로 바위를 뚫는 사람이다' 이런 칭찬을 주민분에게 듣기도 했고요. 참 행복했어요. 결국 진심이 통하는 게 인생에서 행복의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를 지탱한 힘, "내가 하루 7명을 살릴 수 있다면"

윤경선 의원은 자신이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MBTI검사를 해보면 I, 내향성이 90%가 넘게 나와요. 생일선물로 나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하루를 받고 싶은 그런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는 것도 안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 꿈은 현모양처였을 정도죠. 종종 그렇게 말해요. '저 같은 사람이 정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웃음)."

우여곡절과 어려움 끝에 더욱 단단한 정치인이 된,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순수한 꿈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윤경선 의원은 힘듦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를 '정치인으로서의 소명,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힘들 때 이런 생각을 해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겠지,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산재로 죽는 사람이 일곱 명이라는데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세상이 단 하루라도 당겨진다면 일곱 명을 더 살릴 수 있는 거다. 아니 최소한 세 시간을 당기면 한 명을 살리는 거다. 나의 고생도 결국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손빨래 노동으로 하루를 돌아보며 

윤경선 의원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삐 움직인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5분 발언 등 의정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청소 봉사, 매년 하는 김장, 민원 현장까지 수원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몸으로 하는 노동을 좋아한다는 윤경선 의원.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김장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몸으로 하는 노동을 좋아한다는 윤경선 의원.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김장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 수원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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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쁜 와중에, 윤 의원은 플라스틱 안 쓰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등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중이다. 

"우리 삶에서 '습(習)'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습관화되어 내 것이 되고, 행동이 구체화 되어야 해요. 생각도 중요하지만, 관념으로는 절대 세상을 못 바꾸죠"

특히 세탁기 대신 '손빨래'를 하며 하루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습관이 됐다.

"한 2~3년 됐어요. 거창하게 지구를 위한 무엇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실천이에요. 손빨래는 세제나 물 낭비를 줄이기도 하지만, 제가 몸으로 노동하는 걸 좋아하는데, 따로 할 시간은 없다 보니 즐거운 노동 시간이에요. 딸들 옷을 빨면서 '아 바지 밑단이 더러워졌는데 어디 험한 곳을 다녀왔구나', '오늘은 먼지 많은 곳에서 알바를 했나보다' 이런 생각을 해요. 오늘 만난 주민들 사연, 제가 했어야 하는 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명상 같은 시간도 갖게 되죠. 때가 지워지고 깨끗해지는 빨래를 보면 기분도 좋고,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이렇게 매일 손빨래를 하며 자신의 정치 소명을 깨끗이 간직하는 윤경선 의원은, 지금 행복하다. 
 
주민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을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윤경선 의원
 주민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을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윤경선 의원
ⓒ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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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진보당은 지방자치위원회(위원장 장진숙)를 두고,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연재기획은 지방자치위원회 편집팀에서 공동 취재해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진보당, #지방자치, #지방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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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서민의 정당 진보당 공동대표, 지방자치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진보당 지방자치위원회에서는 지역정치,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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